寒岡(한강) 鄭逑(정구)선생 묘역

소재지 : 경상북도 성주군 금산리 산 57-17

20171027_143558[묘역 출입구와 안내판 전경]

20171027_143618-1[묘역 안내문 글 내용]

20171027_143618-2[묘역 안내문 영문 글 내용]

20171027_143817[묘역 입구쪽 노거수]

鄭逑(정구, 1543년 ~ 1620년) 자 道可(도가), 可父(가보).
호 寒岡(한강), 檜淵野人(회연야인). 본관 淸州(청주). 시호 文穆(문목)

조선 중기의 문신, 성리학자, 철학자, 역사학자,
작가, 서예가, 의학자이자 임진왜란기의 의병장이다.

20171027_143843[鄭瑋(정위) 墓(묘) 전경]

한강선생 묘역을 가려면, 맨 처음 만나는 묘소는
한강 정구의 9대손인 참봉 鄭瑋(정위) 墓(묘)

20171027_143922[참봉 鄭瑋(정위) 墓(묘)와 묘비]

20171027_144015[鄭昌址(정창지) 墓(묘)]

참봉 정위 묘를 지나면 나란히 앞뒤로 자리하고 있는 묘가 보인다.

앞쪽 묘와 묘비는 정구 선생의 증손인 鄭昌址(정창지) 墓(묘)
뒤쪽에 보이는 묘가 寒岡(한강) 鄭逑(정구) 墓域(묘역) 이다.

20171027_144037[寒岡(한강) 鄭逑(정구) 墓域(묘역) 전경]

일곱살 때부터 논어와 대학의
대의를 깨우쳐 신동으로 소문이 자자하였다.

명종 10년(1555) 무렵에는 5촌 이모부인 吳健(오건)에게
역학을 배웠는데 시간이 되지 않아 乾(건), 坤(곤) 두 卦(괘)만
배우고도 나머지 괘는 스스로 유추해 스스로 깨달았다 한다.

20171027_144049[寒岡(한강) 鄭逑(정구) 墓域(묘역)]

1563년에 李滉(이황)의 문하에 찾아가 스승으로 글을 배웠고,
1566년에 曺植(조식)을 찾아 뵙고 스승으로 삼아 그의 문하에도 출입하며 글을 배웠다.
또한 얼마 뒤에는 대곡 成運(성운)을 찾아가 그의 문하에서도 수학하였다.

당대의 삼현인 퇴계, 남명, 대곡한테서 학문을 익혔지만
끝내 벼슬로 출세하는 길을 외면하고 과거를 보지 않았다.

20171027_144123[寒岡(한강) 鄭逑(정구) 墓(묘)와 墓碑(묘비)]

이후 관직에 나갈 뜻 없이 공부에만 전념하였으나
과거를 보라는 주변의 권고로 1563년 鄕試(향시)에 응시하여
합격했으나 이후 문과를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학문 연구에 전념하였다.

20171027_144133[墓碑(묘비) 앞면]

20171027_144159[墓碑(묘비) 뒤면]

20171027_144217[묘 후경 전경]

학덕으로 명성이 알려지면서 선조 6년(1573) 조식 문하의
동문이자 스승 조식의 외손녀사위인 金宇?(김우옹)에 의해
遺逸(유일)로 천거되어 禮賓寺參奉(예빈시 참봉)이 되었다.

1574년 1월 다시 김우옹이 그를 추천하였으나 사양하였다.
이후 류성룡 등도 그를 천거하였고 이황, 조식의 문도들의
거듭된 권고로 관직에 나가게 된다.

20171027_144223[묘뒤에서 담은 안산 전경]

그 뒤 1591년 12월 通川郡守(통천군수)로 부임했다가
선조 25년(1592) 4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군수로 재직하면서
창의문을 돌려 의병을 거병하여 통천 지역과 강원도 북부지역까지
쳐들어온 일본군과 상대하였다.

20171027_144556[다시 담아 보는 묘 입구쪽 노거수]

이어 강원도의 험준한 산맥을 이용하여 일본군을 몰살시키거나
타격을 주어 일본군이 개마고원 이북으로 상륙하는 것을 막아냈다.

한강선생을 모신 檜淵書院(회연서원)을 둘러보시려면 요기 클릭
한강선생이 한시로 읊은 武屹九曲(무흘구곡)을 둘러보시려면 요기 클릭

20171027_145838[성균관 전의 白性基(백성기) 행적비 와 노거수]

묘역 아래쪽 입구 에는 성균관 전의 白性基(백성기) 행적비,
효도권장비, 심신수련장 팻말이 나란히 세워져 있었다.

 

2 Comments

  1. 데레사

    2017년 11월 16일 at 8:06 오전

    옛날 선비들이 그리워요.
    요즘은 아무리 나라를 위해 일했어도 정권이
    바뀌면 추앙은 커녕…
    시대도 부럽고 사람도 그립네요.

    • 초아

      2017년 11월 16일 at 9:08 오후

      옛 선조님들을 닮았으면 좋으련만..
      나라를 위해 세운 공은 무시하고
      허물만 부풀러 몰아치는 요즘 세태가
      정말 너무 싫어요.
      배척만 할게 아니라 인정해 주는 긍정의 미도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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