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목화밭

20171206_133756a[목화]

목화 꽃의 열매가 영글면 꼬투리에
씨를 감싼 흰 솜털이 드러나는데 이것이 옷감의 재료가 된다.

20171206_133756[목화 2]

이제는 목화가 한물간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지금도 내복, 수건은 물론이고 그것 없이는 못 사는
돈(지폐)까지도 온통 목화 면으로 만든다.

20171206_133800a[목화 3]

목화 꽃말은 : ‘어머니의 사랑’이다.

20171206_133800[목화 4]

三憂堂(삼우당) 文益漸(문익점, 1329~1398) 선생이
고려 말 공민왕 12년(1363년)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다.

원나라는 고려를 속국으로 만들기 위해
고려의 왕을 갈아치우려 하였으나 문익점은
그에 응하지 않아 중국의 남쪽 지역으로 귀양을 가게 되었다.

귀양살이를 하는 중 목화를 알게 되었고 귀국할 때
금지 품목인 목화씨 몇 개를 따서 몰래 붓두껑에 넣어 가지고 왔다.

그 후 목화씨는 장인에게 부탁하여 재배에 성공하였다고 전해진다.

20171206_133746[목화밭]

그 무렵 우리나라는 면으로 짠 솜옷이 없었고
오직 보들보들한 바람에 쉽게 날리기 위한 갈대 이삭의
갓털(관모)을 솜 대신 썼다 한다.

20171206_133821[목화밭과 인흥 사지 석탑 전경]

씨를 덮고 있는 털을 솜으로 사용한다.
씨로는 기름을 짜기도 한다.
목화를 채취하고 남은 줄기는 겨울철 땔감으로
사용함으로써 버릴 것이 하나도 없는 중요한 작물이다.

 

2 Comments

  1. 데레사

    2017년 12월 15일 at 10:29 오후

    어릴적 목화밭에 가서 다 따고 남은걸 따와서 우리끼리
    씨도 빼고 물레질도 해서 실을 만들어서 양말도 짜고
    목도리도 짜고 했지요. 온전한건 어머니가 베를 짠다고 안주니까
    우리는 쉽게 말하자면 추수끝난 밭에 남은 이삭을 줏어서
    우리나름으로 뭘 만들곤 했지요.

    그리고 다래가 익어갈때 몰래 따먹다 들켜서 혼나던 일….
    지금도 생생합니다.
    목화밭 구경해 본게 수십년은 된것 같아요.

    • 초아

      2017년 12월 16일 at 5:51 오전

      전 시골에서 살지 않아 목화는 잘 모르지만,
      어릴적 어머니가 짜고 남은 실을 주어모아
      목도리도 짜고, 풀고 하였어요.
      새실로 몰래 짜보고 싶어서 어머니가 짜다가 둔
      털실을 건드렸다가 혼나기도..ㅎㅎ
      귀신같이 잘 알되요.
      한두바늘 뜨고 그대로 두면 모를줄 알았는데..ㅋㅋ
      나중엔 어머니가 새실을 슬쩍 모른척 놓고가기도 하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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