玄濟明(현제명) 나무

소재지 : 대구광역시 중구 동산동(대구제일교회 100주년기념관 옆)

20180428_145608[100주년 기념관 옆 현제명 나무 전경]

대한민국의 음악가, 성악가(테너), 작곡가.
1902년 12월 8일 경상북도 대구시 남산동(現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 출신.
본관 延州(연주)이며 아호 玄石(현석)이다.

20180428_145600[100주년 기념관과 현제명 나무]

대구 대남국민학교와 계성학교를 다녔고,
대구에 있는 제일교회 성가대 활동을 통해 음악에 눈을 뜨고
계성학교, 평양 숭실전문학교를 졸업했다.

1923년에 졸업한 후 전라북도 전주에서 신흥학교의 음악 교사로 활동했다.

20170107_130944[2017년 10월에 담은 사진]

20170107_110438-`-vert[안내판 글 내용]

20170107_110438-4-verta[안내판 일본어와 한문 소개 글 내용]

20180428_145744[좌측에서 담은 玄濟明(현제명) 나무 전경]

1926년 미국으로 건너가 시카고에 있는 기독계 무디성경학교에서
음악 교육을 이수하고, 귀국한 뒤에는 조선음악가협회를 창설하고
연희전문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쳤다.

20180428_145627_HDR[우측에서 담은 玄濟明(현제명) 나무 전경]

그 후 조선총독부 학무국이 주관한 조선문예회 정회원으로
가입하다가, 독립 계몽단체인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체포되었다.

이 사건 이후 친일 성향 단체인 대동민우회의
정회원으로 가입하면서 친일반민족행위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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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해방 후에는 한국민주당에 가입해서
극우 보수파로 활동하여 반공, 반북 운동을 전개하였고
1946년에는 경성음악학교(서울대학교 음악대학의 전신)를
설립하여 교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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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한국음악가협회 위원장,
1954년 대한민국 예술원 영구종신회원에 선임되었다가
1960년 10월 16일 간경변으로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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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가극 ‘춘향전’ , ‘왕자 호동’ 등을 작곡하였다.
이팝나무 꽃말은 : 영원한 사랑, 자기 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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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는 희망의 나라로를 작곡한 사람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그가 친일 행적을 하였다는 사실이 드러나게 되면서 논란에 휩싸였다.
결국 친일인명사전의 인명부에도 현제명이라는 이름이 올라가게 되었다.

역대 음악가들 중 친일 행적이 드러나거나 논란이 된
유사 인물로는 애국가의 작곡가인 안익태와 홍난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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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인 대구 중구에는 ‘현제명 나무’라고,
이 사람의 이름을 딴 이팝나무가 있는데, 대구에서는
친일파인 이 사람의 이름을 딴 나무를 없애 버리자 하여 논란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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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옛날 가난했던 시절 지난해 쌀은 떨어지고 보리날 때까지
먹을것이 없어서 풀뿌리와  나무껍질로  연명한다는 초근목피의
보릿고개 시절에 하얀 꽃이 피면 쌀밥을 담아 놓은것 같다고 해서 이팝나무라
불렀다 하며, ‘입하’ 때 꽃이 피어 난다고 이팝나무로 부른다고도 한다.

외국 서양 사람들은 이나무를 마치 흰눈이 내린 것
같다고 해서 눈꽃나무 (snow flowering)라고 부른다 합니다.

이팝나무꽃이 잘 피면 풍년 들고 그렇지 못하면 흉년이 든다고도 했답니다.

20180428_150028[현제명 나무와 100주년기념관]

예전 2017년 10월에 담아온 현제명 나무 포스팅을 올 3월에 하였습니다.
그제 4월 28일 이팝나무꽃이 폈을것 같아서 시간을 내어 들렸더니
역시나!~ 활짝 개화를 하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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