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峯(고봉) 奇大升(기대승) 神道碑(신도비)

소재지 : 광주광역시 광산구 광산동

20180601_095824_HDR[신도비 가는 길(철학자의 길)]

신도비 가는 길은 철학자의 길이기도 하고,
또 황룡강 누리길 가는 길과 도 이어져 있다.

20180601_095831a[탐방로 안내도]

20180601_100135a[황룡강 누리길 가는 길 안내도]

20180601_100144[백우정 전경]

백우정으로 올라가는 길은 황룡강 누리길이지만 철학자의 길이기도 하다.
현재 수리 중에 있다는 백우정에는 들리지 않고, 신도비로 향했다.

20180601_095901_HDR[기대승 선생 신도비 옆 전경]

고봉 기대승은 광주 출신으로 16세기 대표적인 성리학자이다.
그는 퇴계와 사단칠정을 비롯한 성리 논변을 통해 자신의 학문적
지평을 넓혔으며, 율곡의 성리학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합니다.

20180601_100041[가까이서 담은 신도비]

조선 최고의 사상 로맨스
퇴계와 고봉의 편지를 통한 사상 논쟁 처음 만나 편지왕래를 시작했을 때
그들의 나이차는 무려 스물여섯. 스승이셨던 퇴계와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학문 논쟁을 넘어 서로의 안부를 묻고, 정치의 처세. 나가고 물러남의 이야기
집안일까지 끈끈한 정을 이어갔다 합니다.

오늘날 진정한 토론과 교류에 관한 귀감이 되고 있다.

20180601_100028_HDR[가까이서 담은 신도비]

26년의 나이 차이에도, 학설의 다름에도 퇴계는
어린 후배를 존경했고 기대승은 스승 퇴계를 극진히 섬겼다.
고봉도 스승을 잃고 2년 후 귀향길에 고부에서 45세의 젊은 나이에
병으로 돌아가셨다.

20180601_095916[신도비 옆 비 전경]

고봉은 퇴계가 돌아가신 후 제문을 지어 올렸다.

‘근년 이래로 저는 전리에 엎드려 있어서 비록 학문을 연구하고 탐색하는
일에 힘을 다하지 못합니다만 때로는 한두 가지 새로운 견해가 있습니다.
그러나 묻거나 따져서 바로잡을 곳이 없으니 매양 옛날 선생께 왕복하며
사리의 옳고 그름을 밝히어 말하던 즐거움을 생각하면 더더욱 슬픔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스승의 빈자리가 컸다. 고봉은 다른 글에서

‘태산은 평평해질 수 있고 돌은 닳아 없어질 수 있지만
선생의 이름은 천지와 더불어 영원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합니다.

20180601_095947[문헌공 고봉기선생 신도비명 병서]

고봉 기대승의 시조 한 수를 소개합니다.

鴨鷗亭(압구정) / 고봉 기대승

荒榛蔓草蔽高丘(황진만초폐고구)
거친 숲에 엉킨 풀이 높은 언덕 뒤덮고
緬想當時辦勝遊(면상당시판승유)
당시를 생각하니 명승지임 알겠구나

人事百年能幾許(인사백년능기허)
백년도 못사는 인간사
滿江煙景入搔頭(만강연경입소두)
안개풍경 머리에 든다.

20180601_100004_HDR[신도비 옆 비와 신도비 전경]

鴨鷗亭(압구정)은 세조 때에 온갖
영화를 누렸던 칠삭둥이 韓明澮(한명회)의 호다.

압구정이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던 명승지였음을 회고하며,
단종을 몰아내는데 앞장섰던 그를 은근하게 질타하는
고봉 기대승의 詩調(시조)라 합니다.

 

2 Comments

  1. 데레사

    2018년 6월 13일 at 7:49 오전

    정말 백년을 못 사는 인간사인데
    어렵게 살지 말아야죠.
    오늘 결전의 날 누가될지 여기
    기대승의 시를 명심해 주었으면 합니다.

    • 초아

      2018년 6월 13일 at 8:08 오후

      천년만년 살것 같지만,
      오래산다해도 100년도 못 살잖아요.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나봅니다.
      하나를 가지면 둘 둘을 가지면 셋…
      끝없이 이어지니 거의 확정이 되어가네요.
      부디 뽑힌 사람들이 잘해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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