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미술관(간송 조선회화 명품전) 3

소재지 : 대구광역시 수성구 삼덕동 374

20180619_144446a[馬上聽鶯(마상청앵 : 말 위에서 꾀꼬리 소리를 듣다.) / 김홍도 / 보물 1970호]

단원 김홍도는 진경풍속화풍의 대미를 난만하게 장식한
화가로 이 馬上聽鶯(마생청앵)이 그런 그림 중의 대표작이다.

신록이 짙어가고, 뭇 꽃들이 피어나는 늦봄.
어느 화창한 날에 젊은 선비가 봄기운을 이기지 못해 문득 말에 올라
봄을 찾아 나섰다가 길가 버드나무 위에 꾀꼬리 한 쌍이 和答(화답)하며
노니는 것에 넋을 빼앗긴 채 말위에 앉아 바라보는 장면을 사생해 낸 그림이다.

20180619_144505a[영상으로 편집한 馬上聽鶯(마상청앵)]

전시회에 가시면 보실수 있답니다.
말이 천천히 고개를 돌리고 꼬리를 흔드는 사이 매화 꽃에 앉아있던
꾀꼬리는 하늘향해 훨훨 나르고, 마상위의 선비는 꽃과 꾀꼬리를 보느라
정신을 놓은듯한 장면이 화려하게 눈앞에 연출됩니다.

잠시 머물며 변하는 모습을 즐감해 보셔도 좋을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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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속의 선비’ 이이남 작품은 놓치고 담아오지 못하였습니다.
담아온 작품들도 반사된 빛 때문에 소개할 수 없어서 소개하지 못하고
삭제한 작품들도 많이 있습니다만, 최대한 소개해 드리려 노력하였습니다.

소개한 내용을 글들은 인터넷 여기저기에서 모셔온 글들이거나,
작품아래에 써놓은 글들을 옮겨 적은 것입니다.
감안하시고 봐주셔요.

20180619_144030[蜀棧圖圈(촉잔도권) / 심사정]

촉은 지금의 四川省(사천성)에 해당되는 지역인데,
사방이 산악으로 둘러싸여 있어 예로부터 길이 험하고
풍광이 뛰어나기로 유명하다.시인 李白(이백)은 ‘촉으로 향하는 길은 하늘을 오르기보다 힘들다’
말했으며, 당 玄宗(현종)은 피란길에 보았던 그 아름다움을 못 잊어
당대 제일 명화가인 李思訓(이사훈)과 吳道玄(오도현)에게 그려 오게 했다.

20180619_144004[蜀棧圖圈(촉잔도권) / 심사정]

조선남종화의 대가인 玄齋(현재) 沈師正(심사정)도 촉도를 그렸다.
처음부터 등장하는 험준한 산들은 촉도의 관문을 의미하는데
앞으로 전개될 수많은 奇巖高峰(기암고봉)들의 시작에 불과하다.워낙 길게 이어지는 그림이라 중간 중간에 각각의 요소로
풍경을 마무리 지으며 다음의 풍경과 구별하여 자칫 지루해
질 수 있는 화면 구성을 자연스럽게 이어주고 있다.

8미터가 넘는 장대한 화면의 끝에는 권말 상단에
‘무자년 중추 李唐(이당)의 蜀棧(촉잔)을 방한다.’라는 관서를 남겼다.

심사정이 62세 때인 영조 44년(1768) 8월에
송대의 대화가인 李唐(이당)의 필법에 따라 그렸음을 말하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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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9_144552a[果老倒騎(과로도기 : 장과 노인이 거꾸로 타다) / 김홍도]

당나라 때 신선 張果(장과)가 나귀를 거꾸로 타고 가면서 무슨 책을 열심히
읽고 있는 모습을 묘사한 신선도이다. 豹菴(표암) 강세황이 그림 상단에 붙인
評語(평어)를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果(과)라는 늙은이 종이 당나귀를 거꾸로 타고, 손에는 한 권 책을 들었는데,
눈빛이 글줄 사이로 곧게 쏟아진다. 이는 士能(사능)에게 가장 得意作(득의작)이라
할 수 있으니 중화에서 그것을 구한다 해도 쉽게 얻을 수는 없으리라.
표암이 평한다.

20180619_144605a[武夷歸圖(무이귀도 : 무이산으로 노 저어 돌아가다.) / 김홍도 / 보물 1971호]

武夷山(무이산) 계곡을 노 저어 돌아오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무이산 기암 절벽을 굽이쳐 흐르는 냇물의 물살이 사납다.
사공은 돛을 내려 속도를 조절하고, 앞에 있는 사공은 장대로
계곡을 밀면서 배가 부딪치지 않도록 방향을 잡는다.

총각머리 아이들은 갑판을 움겨쥐고 굳은 자세로 앉아  두려움에 질려있다.
그러나 도포에 복건 쓴 뜸집 앞의 朱子(주자)는 미동의 기색도 없이 태연히
절경을 감상하고 있다.

武夷山(무이산)은 중국의 福建省(복건성)에 있는 명산으로
36奉(봉)과 37巖(암)의 기암절벽이 빼어나게 솟고 굽이쳐 흐르는
아홉 구비의 계곡이 특히 유명하여 武夷九曲(무이구곡)’이라는
이름을 얻은 복건 제일의 명승이다.

20180619_144611a[西湖放鶴(서호방학 : 서호에서 두루미를 풀어놓다) / 김홍도]

이 그림의 주인공인 북송의 임포(967~1028)는 서호의 고산에
오두막을 짓고 은거한 뒤 20년간이나 市井(시정)에는 발길 한번 주지
않았는데, 오직 매화를 심고 학을 기르며 서호의 산사를 유람할 뿐이었다.매화가 탐스럽게 피어난 초가집 마당에서 임포가 막 학을 날리고 있다.
안개 자욱한 깊은 골짜기를 건넌 백학은 흰 매화 곁을 지나 푸른 하늘로 솟아오른다.

화면을 거의 공백으로 남겨 詩情(시정)과
상상력을 강조하는 김홍도의 후기 화풍이 잘 나타나있다.

화제는 ‘西湖放鶴(서호방학)’이고 관서는 丹邱(단구)이다.

20180619_144621a[五柳歸庄(오류귀장) / 김홍도]

五柳先生(오류선생)이 시골집으로
돌아온다는 隱居(은거)의 이야기를 화제로 삼았다.
오류선생은 ‘歸去來辭(귀거래사)’의 명문으로 유명한 陶淵明(도연명)의 호이다.

집 주변에 버드나무 다섯 그루가 있었기 때문에 스스로
오류선생이라 자호하였다. 흔히 도연명으로 더 알려져 있지만,
연명은 字(자)이고 潛(잠)이 본명이며, 挺節先生(정절선생)이라 존칭되기도 한다.​

20180619_144636a[仙童煎藥(선동전약 : 선동이 약을 달이다.) / 李寅文(이인문)]

더벅머리를 하고 복스럽게 생긴 미소년이 차 끓이는 화로 옆에
쭈그려 앉아서 부채로 숯불을 일궈내고 있다. 다로 위에는 차 전전자가 있고
仙經(선경)이라 생각되는 두루마리 뭉치가 놓여 있으며 두 뿔이 장대한 숫사슴
한 마리가 무릎 꿇고 앉아서 차 달이는 장면을 무심히 바라본다.

소나무 뒤에서는 폭포가 떨어지고 있으며 그 곁으로는 절벽이 병풍처럼 가로막았다.
장송의 큰 둥치 아래에는 연자빛 영지가 무더기로 돋아나 있어 신선세계임을 암시한다.

글은 다음과 같다.
‘너와 사슴이 다 함께 잠들면, 약 달이는 불길이 시간을 넘기라’

20180619_144650a[牧羊吹簫(목양취소 : 양 치며 단소 불다) / 李寅文(이인문)]

간재 홍의영이 쓴 관서에는 ‘네가 바로 황초평의 후신이 아닌가’
라 하였다. 황초평은 15세의 양치기 소년이었는데 금화산에서 신선도를
닦아 40년이 지나도 여전히 15세 때의 모습이었다고 한다.소년은 바위에 걸터 앉아 웃통을 벗어 붙인 천연스런 모습으로
단소를 불고 소를 끌고 나온 또 다른 소년은 낚싯대를 드리웠다.

이 장면은 당시 흔히 보이는 전원풍경을 담아낸 듯 하여 신선도라기보다는
오히려 풍속화에 가깝다. 도석인물화 소재를 주변 일상 풍광에 걸맞게 표현해
낼 수 있었던 것이 진경시대의 문화 분위기이다.

20180619_144654a[山村雪霽(산촌설제 : 산촌에 눈 개다) / 李寅文(이인문)]

김홍도와 동갑으로 절친하게 지냈던 화원화가 이인문이 눈이 막 그친
산골 마을의 정경을 그렸다. 눈이 그친 후 스산함이 감도는 겨울철 산촌의
분위기를 잘 전달하고 있다.화면 우측 구석에 나귀 탄 선비와 뒤를 따르는 동자를 숨기듯 그려 넣어
시정을 고조시켰다. 화면 상단에 쓴 시는 당나라 시인 두보의
초당즉사에서 한 구절을 옮겨 온 것이다.

황량한 마을 동짓달, 한 그루 나무 서 있는 곳이 이 늙은이의 집이로다

20180619_144658a[山村雨餘(산촌우여 : 산촌에 비 그치다) / 李寅文(이인문)]

산과 숲에 둘러싸인 마을에 비가 내리고 난 후의 정경이다.
물기를 머금은 나무와 수풀의 묘사, 습한 대기의 느낌까지 잡아낸 능숙한 선염,
아스라한 원경에 대비시킨 근경의 나무 묘사에서 화가의 탄탄한 기량을 볼 수 있다.나귀 탄 선비와 동자를 그렸는데 작은 크기에도 그 동작과 형상을
정확히 묘사하였다. 김홍도와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솜씨이다.
기원 유한지가 원나라 문인담소가 지은 시의 일부를 옮겨 놓았다.

‘초옥에 비 남으니 구름기운 깊어가고, 문 열자 좋은 산 많은 것이 싫지 않구나’

20180619_144722a[秋收打作(추수타작 : 가을걷이 타작) / 金得臣(김득신)]

느티나무 잎에 갈물이 들어가는 가을 벼 타작 소리가 요란하다.
큰 통나무를 뉘어놓고 볏단을 내리치는데 이미 쌓인 낟알이 몇 섬은 된다.
낟알들을 쓸어 모으는 손길도 분주하고 그 중 한 구석으로 날아온 것을
쪼아 먹는 닭들도 있다.긴 지팡이를 짚고 선 中老(중노)의 한 선비가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농부들의 모습이 같은 것이 하나도 없다. 머리모양만 보더라도 맨상투,
댕기머리, 끈으로 묶은 머리, 고깔머리, 삿갓 등 참으로 다양하다.

20180619_144727a[春山歸牛(춘산귀우 : 봄 산에 소 몰고 돌아가다.) / 金得臣(김득신)]

두 마리의 소와 주인들이 땔감을 만들어 새날 도성 안의
땔감 파는 상점에 팔고 높은 고개 넘어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니다.

하루 일을 무사히 마치고 끝낸 것이 자랑스러운지 두 마리 소는
모두 고개를 쳐들고 의기양양한 모습이고, 주인들도 밝은 모습으로
소들을 앞세워 기운을 돋아주고 있다.

소의 뿔을 굽히거나 곧게 뻗게하거나 사람은 삿갓을 씌우기도 하는 등
변화를 주었으며 소 엉덩이에 붙은 거름덩어리까지 놓지지 않았다.

20180619_144734a[盛夏織屨(성하직구 : 한여름의 짚신삼기) / 김득신]

한 여름 늦더위 속에 농가에서 祖子孫(조자손 : 할아버지, 아들, 손자)
3대가 모여서 짚신을 삼고 있는 정경이다. 짚신 삼는 장년 남자나 이를 훈수 두며
바라보고 있는 노인이 모두 웃통을 벗고 홑잠뱅이만 걸친채 정강이와 허벅지를 있는
대로 노출시키고 있는 것으로 보아 어지간히 더운 날씨인 듯하다.

곁에서 지켜보고 앉아있는 비쩍 마른 검정개도 혀를 빼어 물고
헉헉대고 있다. 이렇게 더운 날씨지만 일손을 놓을 수 없는게
농촌 살림이라 논일하기에는 너무 뜨거운 오후 시간에 틈을 내어
짚신삼기로 잠시 휴식을 취하는 모양이다.

노인의 등 뒤에는 키가 겨우 할아머지 앉은 키 만큼도 못자란
어린손자가 어깨에 손을 얹고 서서 역시 호기심 어린 눈매로 제아비
짚신 삼는 행동을 열심히 지켜보고 있다.

삼대가 단란하게 모여 앉아 짚신 삼는 한때를 화폭에 올린 그림이다.

20180619_144739a[野猫盜雛(야묘도추 : 들고양이 병아리를 훔치다) / 김득신]

어느 화창한 봄날 갑작스러운 소동이 일어났다.
검은 도둑고양이가 어미 닭과 함께 놀고 있던 병아리 한 마리를 물고 달아나고 있다.

이를 본 어미 닭은 날개를 퍼덕이며 고양이를 쫓아 가고,
다른 병아리들은 정신없이 도망가고 있다.

깜짝 놀란 주인은 “이놈 게 섰거라.”하며 소리치고 있는 것 같다.
고요했던 오후의 정적을 깨뜨리는 봄날의 소동을 재미있게 그렸다.

20180619_145411a[月下情人(월화정인) / 申潤福(신윤복)]

김홍도, 김득신과 더불어 조선시대의 3대 풍속화가로 알려진 신윤복은
그 활동에 대한 기록이 없어 작품들의 정확한 제작 시기를 알 수 없었다.
다만 일부 작품에 기록된 刊記(간기)를 통해 19세기 초에 활동한 것으로 짐작될 정도였다.

눈썹달이 침침하게 내리 비치고 있는 야밤중에
등불을 비춰 든 선비 차림의 젊은이가 쓰개치마를 둘러 쓴
여인과 담모퉁이를 돌아가고 있다.

이들이 어떤 사이이며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지만,
호젓한 곳에서 남의 눈을 피하여 은밀히 만나야 하는
사람들인 것만은 틀림이 없는 듯하다.

20180619_144843a[美人圖(미인도) / 申潤福(신윤복)]

옷주름과 노리개를 두 손으로 매만지며 생각에 잠긴 듯한
젊은 미인의 서 있는 모습을 약간 비껴선 위치에서 포착해 그린 것이다.

조선 후기 여인의 아름다운 자태와 순정이 신윤복 특유의 섬세하고
유려한 필선과 고운 색감, 정확한 묘사에 의해 사실적으로 표현되었다.

당시의 사치풍조를 대변해주는 큰 트레머리는 맑고 앳된 얼굴과
가냘프게 생긴 목과 어깨를 더욱 단아한 느낌이 들게 하며,
짧은 소매와 좁은 저고리는 부푼 치마폭과 대비효과를 이루면서
당시 여성한복의 유형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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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9_145047a[世外仙香(세외선향 : 세상 밖의 신선 향기) / 金正喜(김정희)]

芝草(지초)와 난초가 함께 향기를 토해내는
‘지란병분도’ 형식으로 그린 그림이다. 난초는 한 꽃대에 꽃이
무려 5~6송이나 달려있으니 한 꽃대에 많을 꽃을 단다는 蕙草(혜초)이다.세외선향이라는 제사의 글씨는 소위 西京(서경) 古法(고법)이라는
전한시대 古隸(고예) 기운이 짙은 추사체다.
서툰 듯 꾸밈없는 글씨가 탈속한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킨다.

20180619_145058a[墨蘭(묵란) / 李昰應(이하응)]

흥선대원군이란 이름으로 더욱 익숙한
石坡(석파) 李昰應(이하응)의 난초 그림이다.

대원군이라는 왕실 출신의 신분적 배경과 19세기 후반
격동의 시대에 펼쳤던 정치적 이력으로 인해 정치가로서의 면모가
강했던 이하응은 타고난 예술가이기도 하다.

사군자 그림에서 탁월한 빛을 발했는데, 스승이었던
추사 김정희로부터 난초 그림에서 만큼은 최고라는 찬사를 받을 만큼
묵란화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합니다.

20180619_145053a[蘭以秋芳(난이추방 : 난이 가을을 맞아 더욱 향기롭다) / 李昰應(이하응)]

이 화첩은 이하응 30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구도나 형식이
스승인 추사 김정희의 ‘蘭盟帖(난맹첩)’과 비슷하다. 오른편 상단으로
벋은 긴 난엽이 여름의 왕성한 기운을 보여주는 듯하다.그래서인지 여름 동안 성장한 이후 가을을 맞이하여 깊은 향기를
피워내고 있는 듯 화면 상단에 ‘난이 가을을 맞아 더욱 향기롭다’
‘蘭以秋芳(난이추방)’라는 제사를 적었다.
인장은 ‘石坡(석파)’이다.

20180619_145132a[童子洗桐(동자세동 : 동자가 오동나무를 씻다) / 張承業(장승업)]

원나라 문인화가 예찬의 일화를 그린 고사인물도이다.
집에 찾아온 손님이 뱉은 침이 오동나무에 묻자 손님이 돌아간 후
오동나무를 깨끗하게 씻도록 했다는 일화이다.동자는 탁자를 딛고 올라 오동나무를 닦다가 예찬을 바라보고
예찬은 편상에 걸터앉아 이를 지켜보고 있다. 상상도이기는 하지만
갸름한 몸집과 강팍한 얼굴에서 예찬의 기벽한 성품이 보이고 판상에
놓인 책과 서화 두루마리, 다관은 예찬의 일상생활 모습을 말해준다.

20180619_145144a[松溪閑談(송계한담 : 시냇가 솔밭에서 한담을 나누다) / 金秀哲(한수철)]

솔숲 우거진 시냇가 언덕 위에 선비들 다섯이 모여 있다.
북산 김수철이 철종 10년(1859) 기미에 석관전사에서 그렸다고 하니
지금의 강북구 선관동 주변의 풍광을 그려낸 것으로 보인다.간결한 구도와 소박한 필치, 산뜻한 색채 감각으로 요약되는
김수철의 회화적 특징이 가장 잘 나타난 대표작이다.

20180619_145148a[江湖閒居(강호한거 : 강과 호수에 한가로이 살다) / 李漢喆(이한철)]

추사 김정희의 지도하에 남종문인화풍을 잘 소화한 화원화가
이한철의 산수화이다. 한 칸 초가집에 큰 창 하나가 언덕에 반쯤
가렸는데 방안에는 선비가 앉아 있다.왼쪽 사립뭄 밖 마당으로 지팡이를 짚은 선비가 시동을 데리고
초가집을 향해 걸어온다. 매화 꽃 향기를 같이 즐기기 위해 선비가
친구 집을 방문하는 정경일 듯하다.

집과 사람과 산과 물의 조화가 안정되어 강촌 모옥의 소슬한 운치가 있다.
‘喜園(희원)’이라 관서하였다.

20180619_145152a[石林江亭(석림강정 : 돌이 수풀을 이룬 강가 정자) / 田琦(전기)]

 추사 김정희의 문하에서 서화를 배웠던 中人(중인) 출신의
화가 古藍(고람) 전기가 원나라 화가 倪瓚(예찬, 1301~1374)의
‘소림모정’ 풍 그림을 재해석한 작품이다.훤칠한 키에 수려한 용모를 지녔던 고람은 사대부 문인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그윽한 정취와 고풍스런 아취를 표현한 산수화에서
이미 젊은 나이에 수준급 실력을 발휘했다.

전기는 이 그림에서 스승 추사의 ‘세한도’에 보이는 절제된 감성을
토대로 사의성 짙은 품격과 함께 적막하고 고아한 느낌을 잘 표혔했다.

20180619_145157a[片舟滌署(편주척서 : 조각배가 더위를 씻다) / 許維(허유) ]
조각배 한 척이 사공 하나를 태우고 유유히 떠간다.
비개인 여름날 강바람 시원한 강가의 정취를 묵법 위주로
그려낸 남종문인화풍의 그림이다.
여백을 경물보다 더 많이 하여 드넓은 물가의 풍정을 실감할 수 있다.작은 그림 안에 경물은 최소한으로 표현하면서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은 것을 더 많이 드러내는 이런 그림이
추사일파의 문인화가가 추구한 경지였다.

허유는 다음과 같이 적어 놓았다.
‘옛 법에도 있지 않고, 내 손에도 있지 않고,
또한 옛 법과 내 손 밖에도 있지 않다.’
인장은 ‘小癡(소치)’이다.

20180619_145205a[觀梅馴鶴(관매순학 : 매화를 감상하고 학을 길들이다) / 安中植(안중식)]

‘화정선생이 매화를 감상하고 학을 길들이는 그림’
이라는 제목을 써넣었다.

화정 임포는 항주 서호의 고산에 오두막을 짓고 평생
독신으로 살며 매화를 아내 삼고, 학을 자식 삼아 은거한 선비이다.

임포가 매화를 감상하는데 지나가던 학이 걸음을 멈춘 채 임포를 돌아보고 운다.
동자가 술 주전자를 들고 侍奉(시봉)하고 있는 것을 보면
梅花飮(매화음)을 차려 나온 모양이다.

‘1915(을묘년) 2월 상순, 심전 안중식 그리다’라는 관서가 있다.

20180704_140054[携妓東山(휴기동산 : 기녀를 데리고 동산에 오르다) / 趙錫晉(조석진)]

스승 장승업이 그랬듯이 중국 고사인물도를 즐겨 그렸다.
그림의 주인공인 謝安(사안, 320~385)은 동진 사람으로 회계의
동산에 은거하며 왕희지, 허후, 지둔과 교유하며 세상에 뜻을 두지 않았다.낚시와 산수유람으로 소일했는데 아량이 넓고 바른 생활을 하면서도
매번 유람할 때에는 기녀들과 함께 했다고 한다. 그림은 비파와 거문고를 든
두 명의 기녀와 함께 동산에 오르는 사안을 그린것이다.

중국화보 ‘詩中畵(시중화)’를 참고하여 그린 것이다.

20180704_140059[松管湛樂(송관담락 : 조송설과 관도승이 풍류를 즐기다) / 趙錫晉(조석진)]

원나라 서화가 부부인 송설 조맹부와 곤도승의 모습을 그림으로 옮겨놓았다.
조맹부는 송나라 종실로 시서화에 능한 통유였고 부인인 관도승은 묵죽과
매란을 잘 그렸다고 한다.특히 새로 돋아난 대나무를 그리는 것은 관도승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림에서 관도승은 대나무를 그리고 있고 그 뒤에서 남편인 조맹부가
이를 쳐다보고 있다. 남종화풍의 그림이 그려진 삽병과 종려나무, 태호석,
국화는 이 부부의 풍류를 드러내는데 부족함이 없다.

20180619_145221[艁山樓觴月(조산루상월 : 조산루에서 달과 마시다) / 劉淑(유숙)]

1870년에 우선 이상적인 옛 거처인 조산루에서 문인
일곱 명과 이상적의 아들 이용림이 달 구경하고 술 마시고
시를 짓고 했던 모임을 화원화가 유숙이 그렸다.하지만 그림에서는 조산루도 보이지 않고 이들이 입고 있는 옷,
쌍상투 튼 시동 모습 또한 우리 것이 아니다. 모임은 실제 있었지만
그림은 오래 전 중국에서부터 내려온 서원아집도, 죽림칠현도 등의 특징을 가졌다.

그래서 그런지 세 그루의 소나무 옆에 대밭이 있다.
인원은 모두 여덟 명으로 이 날 모임에 참석한 숫자와 같다.
고종대 중인들 모임의 실상을 잘 보여주는 중요한 두루마리이다.

20180619_145229a[風雨竹(풍우죽 : 비바람 맞은 대) / 閔泳翊(민영익)]

화면 중단에 바위를 배치하고 그 주변에 대나무를 그려 넣은 죽석도이다.
바위는 갈필과 윤필, 담묵과 농묵을 적절히 섞어가며 입체감과 질량감을 살렸다.
그 상하로 줄기 몇 개를 담묵으로 그려 넣고 짙은 먹으로 댓잎을 베풀어 놓았다.바바람에 쏠린 댓잎은 지면을 향해 쏟아져 내린다.
군자의 기백은 살아있지만, 모진 세파를 만나 시달리는 대나무를 통해
이국땅에서 망명객으로 살아가는 자신의 처지와 회한을 표현한 듯하다.

20180619_145234a[露根墨蘭(노근묵란 : 뿌리가 드러난 난) / 민영익]

혼란과 격동의 시기 권력의 중심에
있었던 민영익은 일생은 파란만장했다.

명성황후의 친정조카로 20세 무렵 민씨세도의 중심에 섰으며,
갑신정변(1884)때는 개혁파의 공격을 받아 전신에 자상을 입고
죽음의 문턱까지 가는 위기도 겪었다.

회복한 후에도 국내외의 혼란한 상황속에서 홍콩과
상해를 전전하다가 결국 상해로 망명하여 일생을 마치게 되었다.
그러나, 영욕 교차하는 정치가로서의 삶과는 달리
예술가로서의 삶은 찬연했다 그중에서도 묵란화에 쏟은
애정은 남달랐다 한다.

20180619_145241a[石蘭(석란 : 돌과 난) / 金應元(김응원)]

김응원은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영향을 받아 난 그림으로 명성이
높았던 화가이다. 이 石蘭(석란)’에서도 이하응의 자취가 비쳐진다.화면 좌우로 절벽과 바위를 배치하고 그 바위틈에서 돋아난 무더기
난을 촘촘하게 그려 넣었다. 바위의 기세와 향배의 구성도 적절하고,
난 무더기의 배치와 조화도 흠 잡을 데가 없다.

군자의 고고한 기상을 느끼기에는 다소 부족하지만,
심산유곡의 그윽한 정취를 담아 내는 데에도 부족함이 없다.
필치가 가볍고 기교가 다소 과한 면이 없지 않지만,
근대기 최고의 묵란화가라는 명성에 걸맞는 대작이다.

거의 담아 온듯 하지만, 빠진 작품과 담아왔지만,
빛에 반사되어 작품이 많이 훼손된것은 올리지 않았습니다.

작품명과 작품해석을 최대한 담아 함께 소개하려 하였지만,
제 실력이 부족하여 작품명과 작품해석을 못하고 올린 작품도 많습니다.
나중에라도 알게되면 수정해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제가 아무리 잘 설명하고 자세히 담아왔다 한들
百聞不如一見(백문불여일견)이란 고사처럼 백번 듣는것보다
한 번 보는 것만 못하겠지만, 들리시지 못하시는 이웃님이시라며
제가 올린 포스팅으로 대리만족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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