密陽(밀양) 茶竹里(다죽리) 孫氏古家(손씨고가)

소재지 : 경상남도 밀양시 산외면 다죽리
경남문화재자료 제111호

20180811_135107[다죽리 손씨고가 앞 손숙 고향집 대문 전경]

다죽리 손씨 고가로 가는 길 골목길에서 무언가
예사롭지 않은 커다란 솟을 대문과 대문 앞 넓은 공터가 보여
잠시 차를 세우고 살펴보았으나, 어떤 집인지 알 수는 없었다.

20180811_135125[대문 앞쪽 뜰 활짝 핀 백일홍]

그래도 사연이 있을 것 같아서 잠시 둘러보았지만,
안내판도 닫힌 대문도 말이 없고, 대문 앞 공터 옆으로
백일홍만 만발하여 나그네의 마음을 달래주는듯하였다.

20180811_135135_HDR[활짝 핀 백일홍 2]

배롱나무에게 물어볼까?
잠시 꽃에 머물다가 날아가는 나비에게 물어볼까?

20180811_135206_HDR[활짝 핀 백일홍 전경]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몇 장의 사진을 담고는
뒤쪽 골목 끝에 있는 처음의 목적지인 다죽리 손씨 고가로 향했다.

돌아와서 정리하려 자료를 찾다가 알게 되었다.
바로 연극인 손숙 장관이 태어나 유년시절을 보냈던 고향집이라 한다.

20180811_135222[손숙 생가 쪽에서 담은 다죽리 손씨고가 전경]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조건을 갖춘 마을로 옛 이름은 茶院(차원)이라 한다.
차원茶院(차원)이라고 한 것은 차 나무가 많았기 때문에 붙여진 지명이며,
현재 600년 된 차 나무가 이 마을 안쪽 혜산서원 내에 있다고 한다.

20180811_134546_HDR[고택 앞 골목길 옆 돌탑(?) 전경]

손씨고택으로 대문 앞쪽 골목길에는
돌탑이 세워져 있는데 다른 지방과 달라 이색적이다.

성황당은 아닌 듯…
그러나 무슨 사연으로 돌로 쌓았을까?
어떤 사연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한 컷 담았습니다.

20180811_134551a[안내판 글 내용]

20180811_134537[다죽리 손씨고가 솟을대문 전경]

고택의 대문이 닫혀 있는듯하여 실망.
다른 곳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 하고 찾아보았지만, 없다.
아쉬움에 행여나 하고 대문을 밀어 보았더니,
삐~~삐꺼덕 소리를 하며 열렸다.

오늘 횅제했네!~

20180811_134733[대문 쪽에서 담은 다죽리 손씨고가 전경]

산외면 다죽리 죽서마을에 있는 一直(일직) 孫氏(손씨)들의 많은 고택 가운데
孫兵使古宅(손병사고택)’으로 통하는 이 집은 영조년간(1724-1776)에 兵使(병사)
孫鎭民(손진민)이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며, 그 아들인 병사(兵使) 손상용(孫相龍)이
택지를 확장하고 건물을 증축함으로써 지금과 같은 저택이 조성되었다 한다.

20180811_134654a[竹溪書堂(죽계서당) 현판]

사랑채에 걸린 ‘竹溪書堂(죽계서당)’ 현판

20180811_134631[竹溪書堂(죽계서당) 전경]

건물의 배치는 담장과 중문을 경계로 안채와 사랑채를 나누고 있는데
남녀의 생활공간을 구분했음을 알 수 있는데 영남 지방 상류층 고가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양식이다.

사랑채는 정면 4칸, 측면 1.5칸의 홑처마 팔작지붕이다.

20180811_134700[竹溪書堂(죽계서당)]

사랑채에는 竹溪書堂(죽계서당)과 慕蓮齋(모연재)등의 현판이 걸려 있다.

20180811_134714[慕蓮齋(모연재)]

竹溪書堂(죽계서당)과 慕蓮齋(모연재)라는 현판이
걸려 있어 서당과 문중의 재실로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20180811_134624[사랑채와 안채의 경계선 담 전경]

손씨고택은 배산임수도 좋아 집터도 명당자리라 한다.
그 예로 후손들이 대대로 立身揚名(입신양명) 했다고 하니
집안의 모습들이 어떠한지 더욱 궁금하다.

손진민 부자 외에도 孫綏遠(손수원). 孫亮錫(손량석).
孫珪憲(손규헌) 등 조선 후기에 이르기까지 장수를 배출한 명문가였다.

20180811_134801[중문 쪽에서 담은 안채 전경]

1000천여 평이나 되는 손씨고택의 안마당은 넓다.
남향으로 정침이 있고 좌우에 곳간과 행랑방을 둔 별채가 있는데
정침은 7칸 2열의 팔작지붕으로 2칸 대청과 2칸 큰 방이 있고
좌우에 부엌과 건넌방이 있다.

오른쪽 텃밭에는 온갖 채소들만이 고택을 지키고 있었다.
아마도 누군가가 고택을 관리하며 텃밭을 가꾸는 것 같다.

20180811_134810[안채와 바깥마당과 사이의 나무 담]

바깥마당에서 안채가 곧장 보이지 않게
바깥마당과 안채 사이에 나무를 심어 담을 만들어 둔 것 같다.

20180811_134818[안채 전경]

안채의 구조는 7칸 2열의 八作(팔작) 지붕으로 가운데 2칸의
대청과 큰 방이 있으며, 왼쪽에 부엌과 오른쪽에 건넌방이 붙어 있다.

4단으로 쌓은 안채의 높은 基壇(기단)에는 돌계단이 3군데 설치돼 있다.
부엌은 따로 한 칸이 마련돼 있는데 이것은 사대부 집안의 살림살이를 짐작게 한다.

길게 다듬은 돌로 이루어진 안채 축대는 3곳으로
오르내리도록 돌층계를 설치하였으며, 부엌 안쪽 구조가 특이하다.

20180811_134827[동익랑]

안채 좌우에 고방과 동익랑이 자리하고 있다.

20180811_134841[고방]

세간이나 그 밖의 잡다한 물건을
보관하여 두는 곳으로 ‘광’또는 ‘고방’으로 불린다.

20180811_134852[다시 담아 본 안채 正寢(정침) 전경]

20180811_134947[안채와 경계인 중간 담 쪽에서 담은 사랑채와 앞쪽 향나무 전경]

향나무 고목 아래를 돌로 둘러쌓아 만들어진 造山(조산)은
옛 우리 정원 조경의 한 형태인데 樹石(수석)으로 잘 꾸며져 있어
조상들의 멋스러움에 반할 만하다.

향나무 한 그루가 사랑채보다 높이 뻗어
노거수의 자태가 사랑채와 어울려 고택의 멋을 풍겨주는 듯…

20180811_134934[고택 솟을대문과 행랑채 전경]

솟을 대문 좌우 양쪽 행랑방이 있다.

20180811_135306_HDR[고택 담 밖에서 담아 본 사랑채 전경]

20180811_135018[고택 솟을대문 쪽에서 담은 골목 전경]

사진 속 골목길의 돌담이 바로 연극인
손숙 장관님의 유년기를 보낸 고택 돌담입니다.

 

4 Comments

  1. 데레사

    2018년 8월 23일 at 8:31 오전

    손숙씨네 고향, 좋은 마을이네요.
    이 사람도 연극만 했으면 존경받았을텐데
    김대중 정권때 사흘 장관하면서 망신만
    했지요.

    이런 마을만보면 살고 싶어져요
    .

    • 초아

      2018년 8월 23일 at 7:21 오후

      예, 마을이 아담하고 깨끗한게 참 좋았어요.
      글세말입니다. 괜히 장관을 하셔서 3일장관으로
      오명만 남게 되어 후회가 많으셨을것 같습니다.
      전 잠시 머무는건 몰라도.. 거주하고 살라하면
      아마도 아니요. 할 것 같아요.

  2. 비풍초

    2018년 8월 23일 at 11:33 오후

    밀양에 일직 손씨? 검색해봤더니 일직이 안동 지방인 모양이네요.. 밀양에 밀양 손씨도 터를 잡고, 일직 손씨도 처를 잡고.. 제 처가는 안동 손씨인데 장손이 밀양에서 사는데요.. ㅎㅎ

    • 초아

      2018년 8월 24일 at 5:23 오전

      일직 손씨의 집성촌이 밀양에도 있었나봅니다.
      안내판에도 그렇게 적혀 있었기에 의심하지 않고
      소개 했는데, 아닌가요?
      하긴 어디 한 군데에서만 터를 잡고 살으셨겠어요.
      전국어디나 터를 잡고 모여서 살면 그게 바로 집성촌인거죠.
      혹 제가 잘못 알고 있다면 알려주셔요.
      고쳐놓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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