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月淵亭(월연정)

소재지 : 경상남도 밀양시 용평동 2-1
경남 유형문화재 제243호
국가지정 명승 제87호

20180811_163404[밀양 월연정 입구 쪽 월연 터널 전경]

우측 월연정 안내판 사이의 도로 건너편에는
용평(백송) 터널이란 표시판이 세워져 있으며, 아래쪽에는
똥개란 영화 촬영지였다는 표시도 함께 되어 있네요.

영화를 감상하지 못하여 잘은 모르겠지만, 제목만 보고도
피식 웃음이 나오게 한다. ㅎㅎ

20180811_161715-2[월연 터널 안내글 내용]

이 좁고 긴 터널을 통과하려면 앞에서 오는 차가 없는지
살펴보고 지나가야 한다. 중간에서 만난다면 피할 수 있는 공간이 없기에
누군가 한쪽이 뒤로 되돌아가야 할 수밖에는 없다.

물론 저도 살펴본 후 가야지 했는데, 마침 앞서 달리는 차가 있기에
뒤따라 무사히 지나올 수 있었다. 터널을 빠져나오면 곧장 월연정 팻말이
좌측으로 보인다.
반대쪽에서 보면 터널 입구쪽 우측에 보이겠네요.

20180811_163343_HDR[월연정 초입의 안내도와 안내판 전경]

확실한 주소를 알려주지 않아서 일까?
네비양도 못 찾아 이리저리 안내만 열심히 하지만,…
결국 마을 주민에서 여쭈어 본 후에야 월연정 초입까지 무사히 도착.

20180811_161715-1[월연정 안내판]

page[월연정 안내판과 밀양 아리랑 길 안내도]

20180811_161732[월연정 초입 전경]

여기서 부터는 승용차로는 들어갈 수가 없다.
월연정 초입 작은 공터에 주차를 해 두고 걸어서
풍경을 감상하며 들어가는것도 운치가 있어서 좋아요.

anigif[월연정 가는 길 애니메이션 편집]

월연정은, 전라도 담양의 소쇄원과 비교되는 정자로, 월연대를 비롯하여
여러 건물들이 모여서 집합체를 이루기 때문에, 조선시대의 일반적인 정자
건축 양식과는 다른 독특한 조경 양식을 보이고 있다.

월연정 2[쌍경당과 제헌의 출입문 전경]

두 곳 다 문이 닫혀 있다.
먼 길을 달려왔지만, 이럴 땐 단절을 느낀다.
관리하시는 분들의 노고를 알기에 더 이상 서운해하진 말자
하면서도 서운하다.

20180811_161934[쌍경당 일각문]

조선 중종 때 이태 선생이 본래
月影寺(월영사)의 옛 터인 월영연에 지은 별장이다.

월연 이태 선생은 중종 5년(1510) 과거에 급제한 후
여러 벼슬을 거쳐 중종 14년(1519) 함경도 도사로 재직 중
기묘사화가 일어나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인 이곳에 은퇴하였다.

선생은 중종 15년(1520)에 이곳에 정자를
세우고 정당을 雙鏡堂(쌍경당)이라 이름 지었다.

20180811_163135[일각문 쪽에서 담은 雙鏡堂(쌍경당) 전경]

1985년 1월 14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43호로 지정되었다.
月影寺(월영사)가 있던 곳으로 月影淵(월영연)이라고 하였다.
월연정과 齊軒(제헌). 月淵臺(월연대) 등 3동이 전한다.

20180811_161909[齊軒(제현) 출입문과 안내판 전경]

20180811_161927_HDR-1[안내판 글 내용]

20180811_161927_HDR-2[안내판 영문 글 내용]

20180811_162013[제헌 높은 돌담과 월연대 가는 길]

쌍경당 과 제헌의 출입구인 일각문은 굳게 닫혀있어서 들어가 볼 수가 없었다.
아쉽긴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담너머로 보이는 풍경만 담고 제헌의 높은 돌담을 끼고
아래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닫힌 문을 뒤로하고 돌담을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슬며시 풀어져 버리는 서운했던 마음

20180811_162029[월연교 전경]

월연교 주변 전경이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듯하다.

20180811_162539[월연교]

이 돌다리를 건너야 월연대와 백송과 추화산
추화산성(경상남도 지정기념물 제 94호에 이를 수가 있다.

20180811_162055[월연교와 추화 산성 가는 길 안내 팻말]

20180811_162104[추화산 안내판 글 내용]

20180811_162128[좌측 옆에서 담은 월연대 전경]

20180811_162218a[月淵臺(월연대) 현판]

20180811_162206[月淵臺(월연대) 일각문]

높다란 곳에 위치하고 있기에 좁고 높은
돌계단을 올라야 월연대에 오를 수 있다.
사진을 담아보지만, 마음에 차지 않는다.

20180811_162230[月淵臺(월연대) 전경]

주변에서 제일 높은 언덕에 자리하고 있다.
월연대는 남동향으로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정사각형에
가까운 평면으로 사방을 돌아가며 대청으로 구성하고 중앙 1칸은
4면에 2짝 여닫이문을 둔 방으로 구획하여 정자의 기능을 살렸다.

20180811_162352[月淵臺(월연대)쪽에서 담은 출입구 일각문 전경]

좁은 공간은 정자의 전경을 담기도 힘드네요.
저 혼자 마음에 담고 돌아왔습니다.

20180811_162438[月淵臺(월연대)에서 내려다 본 풍경]

20180811_162448[월연정 안내판 글 내용]

20180811_162455[백송 팻말]

月淵臺(월연대)옆 아래쪽 바위 틈에 살아가는 백송이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는 귀한 소나무라 하는데,
바위 위를 오를 수 없어서… 눈앞에 두고도 백송을 만나지 못하였습니다…. ㅠ.ㅠ

20180811_162519[월연대쪽에서 담은 월연교 건너 제현 협문 전경]

20180811_162120[월연교 건너에서 담은 齊軒(제현) 전경]

20180811_162630[제헌과 쌍경당의 협문]

20180811_162758_HDR[협문과 齊軒(제헌) 전경]

20180811_162701[뒤쪽에서 담은 齊軒(제헌) 전경]

제헌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평면으로
왼쪽에서부터 대청. 방. 방. 대청 2칸으로 구성되어 있다.

20180811_162842a[雙鏡堂(쌍경당) 현판]

‘雙鏡堂(쌍경당)’이란 이름은
‘강물과 달이 함께 맑은 것이 마치 거울과 같다.’
라는 말에서 따 왔다 합니다.

20180811_162821[우측에서 담은 雙鏡堂(쌍경당)]

1592년 임진왜란 때 불에 타 영조 33년(1757)
6대손인 月菴(월암) 李之復(이지복)이 복원하였다.

고종 3년(1866) 11대손 李鐘庠(이종상)과 李鐘增(이종증)이
월연대를 중건하였고, 1956년 齊軒(제헌)을 세웠다.

20180811_162900_HDR[좌측에서 담은 雙鏡堂(쌍경당) 전경]

정면 5칸, 측면 2칸 5량 구조로 팔작지붕을 한 이익공계 동향집이다.
대청 2칸을 通間(통간) 하게 하였고 오른쪽으로 방을 2칸 다시 통간이
되게 하고 대청 쪽으로 4짝 분합문을 두었다.

다시 오른쪽에는 전면에 방, 후면에 아궁이를 두어 사철 기거할 수 있게 하였다.

20180811_163108_HDR[강 건너 풍경]

수려한 자연경관이 조화를 이룬 아름다운 별서로 평가된다.
특히 지형에 맞추어 각기 다른 평면을 지닌 건물과 주위에 희귀한
나무와 꽃, 水石(수석) 등이 아름답게 배치된 것은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조영한 별서의 건축적 특징을 잘 보여 준다.

20180811_163153[배롱나무와 오솔길]

봄은 봄꽃으로 여름은 짙푸른 녹음으로 가을은 울긋불긋 단풍길
흰 눈이 쌓인 겨울은 또 겨울대로의 운치가 월연정으로 오고 가는 길은
언제 가느냐에 따라 색색의 다른 계절의 옷으로 갈아입고 관광객들을
반겨줄 것 같다.

20180811_163226[월연정으로 오고 가는 오솔길]

담양의 소쇄원과 더불어 우리나라 전통 정원의 하나로
꼽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숨겨진 보물이다.

강변 풍경과 보름달이 떴을 때의 月柱景(월주경)은 특히 아름답다 한다.

 

1 Comment

  1. 데레사

    2018년 10월 2일 at 9:12 오전

    밀양은 대구에서 가까우니 자주 가실수 있어서 좋겠어요.
    아득한 시절, 영남루를 가본것 외는 등산으로 찾아갔던
    산들만 기억나는 밀양입니다.
    덕분에 구경 잘 합니다.
    밀양도 많이 변했을텐데 갈 기회가 없을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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