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無量寺(무량사)

소재지 : 충청남도 부여군 외산면 만수리 116

20190105_143845[무량사 안내판과 입구쪽 전경]

며칠전 부터 답답한지 어딜 갈까? 하다가 몸이 개운치 않으면 주저 앉고 하였다.
그제도 약속은 하였지만, 지켜질지는 건강이 허락해 주어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ㅠ.ㅠ
그랬는데, 느지막이 아침을 먹고는 출발하자 한다.
어디로?
금오신화를 쓰신 생육신의 한 분인 무량사 김시습 浮屠(부도)에 가고 싶다
하기에, 서둘러 준비해서 준비라야 별다른것도 없지만, 문단속과
까스불, 난방 불 외출로 돌려놓고 부여로 출발.

20190105_143856[무량사 안내 글 내용]

20190105_143902[무량사 안내도]

20190105_143906[무량사 영문, 일어 안내글 내용]

20190105_133904[만수산 무량사 일주문 전경]

20190105_133920-1-vert[무량사 종합 안내도]

20190105_134011a-vert[萬壽山無量寺(만수산 무량사) 일주문]

이곳으로 들어오기전에 관람권을 끊어야 한다.
그러나, 우린 둘다 경노… 무료라 하네요.
이럴땐 좋지만, 결코 나이드는게 좋지 많은 않다.

20190105_134026[일주문 지나 담아 본 무량사 가는 길 전경]

20190105_134148[극락교 전경]

속세의 묵은 때를 깨끗이 씻고 건너야 하는 곳이라 한다.
며칠 전 내린 눈이 녹지 않고 응달진 곳에는 아직도 남아 있다.

20190105_134315[천왕문 과 주변 전경]

20190105_134507[무량사 단간지주 전경]

충청남도 유형 문화재 제57호, 고래시대 초기
당간 지주는 사찰 입구에 설치하는 것으로 幢(당)이라는 깃발을 걸기 위해
세운 장대인 당간을 지탱하는 돌기둥이다. 마주보는 기둥의 안쪽 면에는 당간을
고정시키기 위해 두 개의 구멍을 각각 뚫어 놓았다.

기둥을 받치는 바닥에 원형의 초석을 마련하였고, 돌기둥의 바깥 면을 둥글고
도드라지게 만들었다. 전체적으로 아무런 장식이 없는 소박하고 단아한 모습이다.
고려 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된다.

20190105_134434[무량사 소개 글]

20190105_134421a-vert[天王門(천왕문) / 일제강점기의 목조 건축물]

천왕문에는 대개 사천왕상이 있다.
사천왕은 천상계 사천왕천의 동. 서. 남. 북 네 곳을 관장한다고 믿었던
고대 인도의 신화적인 존재다. 사천왕은 수미산 기슭을 지키면서 그곳 중생들이 바른
가르침에 따라 올바르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살피고, 그들을 바른 길로 인도한다는 천왕들이다.

20190105_134605[四天王像(사천왕상)]

동방은 持國天(지국천)으로 손에 칼을 들고 있으며,
서방은 多聞天(다문천)으로 손에 비파를 들고 있다 합니다.
위 사진을 보시면 칼을 들고 있는 동방의 지국천과
비파를 들고 있는 서방의 다문천을 구별하실 수 있으시겠죠.

20190105_134600[四天王像(사천왕상)]

남방은 增長天(증장천)으로 오른손엔 용을 움켜쥐고있다 하며,
북방은 廣目天(광목천)으로 탑을 들고 있다 합니다.
사진을 자세히 보셔요. 안쪽 탑을 손에 들고 있는 사천왕이 서방의 광목천이겠죠.

이런 신앙은 ‘Rigveda(리그베다)’ 등 인도의 옛 문헌에 나타나 있다.(인터넷 검색 인용)

20190105_134629[천왕문에서 담은 무량사 오층석탑과 석등, 극락전 전경]

무량사는 신라시대에 범일국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나 자세한 연혁은 알 수 없다.

조선 세조 때 김시습이 은둔생활을 하다가 죽은 곳으로 유명하며,
임진왜란 때 병화를 입어 사찰 전체가 불타버린 뒤 조선 인조 때에 중건하였는데,
극락전도 이때 중건되었다.

경내에 들어서면 비교적 평탄하고 넓은 대지에 오층석탑(보물 제185호)을
중심으로 북쪽에 주불전인 극락전이 있고, 동쪽에 명부전, 서쪽에 영산전이 배치되어 있다.

20190105_140402a-vert[者積堂(자적당) 무량사 종무소 전경]

20190105_134718a-vert[범종각 전경]

20190105_134952[무량사 5층 석탑(보물 제185호)]

부여 무량사 오층 석탑은 극락전 앞에 있는 고려 전기의 석탑이다.
탑을 받치는 기단은 신라 양식의 탑이 2층인 것과 달리 단층이다.
탑신은 지붕돌과 몸돌을 한 층으로 하여 5층을 이루고 있다.

지붕돌의 처마 끝이 살짝 올라가 있는데, 이는 백제의 양식과 비슷하다.
이처럼 이 탑은 백제와 통일 신라의 석탑 양식이 조화를 이루도록 만든
고려 전기의 탑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1971년 해체 수리를 할 때 탑신에서 고려 시대 금동 아미타 삼존불상과
사리 장치, 금동 관음보살 좌상 등이 나왔다.(안내판 참조)

20190105_134817[石燈(석등) 보물 제233호]

석등은 통일 신라 말기에서 고려 초기 사이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등이다.
석등은 절의 탑이나 건물 앞에 세워 부처나 보살의 지혜가 밝다는 것을 나타낸다.

20190105_135006[무량사 극락전 표지석]

20190105_134901[無量寺(무량사) 極樂殿(극락전) 보물 제356호]

극락전은 극락 세계를 관장하는 아미타불을 모신 전각이다.
무량사의 중심 불전으로서 한국에는 흔치 않은 2층 불전인데,
외부에서는 2층으로 보이지만, 내부는 층 구분 없이 하나로 트여있다.

아래층의 규모는 앞면 5칸, 옆면 4칸이며, 1층 내부 기둥이 통기둥으로 올라가
2층의 외부 기둥이 되었다. 공포는 조선 시대의 다포 형식으로 조각과 장식이 화려하다.

불전 내부에는 가운데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양쪽에 관세음보살과 대제지보살을 모셨다.
주불인 아미타불은 극락전이 중건된 연대와 같은 인조 11년(1633)에 조성된 것이며
흙으로 빚은 소조불로는 최대의 규모를 자랑한다.

이 건물은 조신 중기의 건축 양식을 잘 보존하고 있어 건축적 가치가 높다.(안내판 글 옮겨 적음)

20190105_134852[冥府殿(명부전) 문화재 자료 제389호 전경]

20190105_134921a-vert[冥府殿(명부전) 문화재 자료 제389호]

20190105_134914[부여 무량사 명부전 안내글 내용]

20190105_135042[雨花宮(우화궁) 전경]

극락전 좌측에는 ‘雨花宮(우화궁)’이란 현판이 붙은
정면 5칸, 측면 1칸의 제법 규모가 있는 팔작지붕의 당우가 서 있다.

20190105_135220a-vert[雨花宮(우화궁)]

‘雨花(우화)’라는 말은 ‘法華經(법화경)’에 나오는 용어로,
‘부처님 계신 곳과 대중들 앞에 만다라 화 등의 꽃이 비처럼 쏟아졌다’
에서 유래 되었다 합니다.

우화궁 뒤편에는 김시습의 초상화를 모신 현판도 없는 영정각이 서 있습니다.

20190105_135255[원통전, 삼성각, 극락전 안내팻과 주변 전경]

20190105_135501a-vert[三聖閣(삼성각)]

山神(산신). 七星(칠성). 獨聖(독성)을 함께 봉안하고 있는 사찰 당우 중 하나.

20190105_135632a-vert[圓通殿(원통전)]

관세음보살을 모신 전각이라 합니다.

20190105_135655

‘수행전진중’ 이란 팻말이 세워져 있기에 올라가보진 않아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도 이곳에서 스님들이 수행을 하는 곳인가봅니다.

20190105_135810[설잠(김시습)스님영각]

‘김시습 초상’ 은 좌안7분면의 복부까지 내려오는 반신상으로,
밀화영의 끈이 달린 평량자형의 입을 쓰고 담홍색 포를 입고 있으며
공수자세를 취하고 있다.

얼굴과 의복은 옅은 살구색과 그보다 약간 짙은 색상의 미묘하고
절제된 조화로 묘사되고 있다. 양미간은 찌푸리고 있는 표정은
‘찌푸린 눈썹에 우수 띤 얼굴이라’고 묘사했던 서유영(1801-1873)의
초상화라는 인물사적 가치 위에 조선시대 야복초상화의 가작이란
점에서 중요성을 지닌다.(안내글 옮겨 적음)

20190105_135746[金時習(김시습) 肖像(초상) 전경]

20190105_135746a[金時習(김시습) 肖像(초상) 보물 제1479호]

무량사는 오랜 역사와 다수의 국가지정 문화재를 보유한 유서깊은 사찰이지만,
정작 무량사가 유명해지게 된 것은 세조 당시 생육신의 한 사람이었던 梅月堂(매월당)
金時習(김시습, 1435~1493)이 출가하여 ‘雪岑(설잠)’이라는 법명으로 유랑하다가
이곳으로와 기거하다가 입적한 사찰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부터였다고 합니다.

20190105_135843a-vert[靈山殿(영산전) 문화재 자료 제413호]

영산전은 靈駕山(영가산)에서 석가가 설법하던 ‘법화경’의 영산회상을 상징하는
건물로 일명 팔성전이라고도 부른다 합니다. 무량사 영산전은 1872년 비구니 원
열화상에 의하여 명부전과 함께 건축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합니다.

영산전 석가여래조상, 좌우로 5백나한상이 봉안되어있다.

20190105_135849[靈山殿(영산전) 내부 아난존자 석가모니불 가섭존자]

20190105_135854[靈山殿(영산전) 좌측 오백나한 전경]

20190105_135859[靈山殿(영산전) 우측 오백나한 전경]

20190105_135925[정면에서 담은 靈山殿(영산전) 전경]

20190105_140058[영산전에서 담은 양화정, 극락전 전경]

20190105_140120[영산전에서 담은 5층석탑과 석등 뒤쪽 명부전 전경]

20190105_140310[극락전 앞쪽에서 담은 천왕문과 종탑 전경]

20190105_140414[무량사를 나서며 담은 인증샷]

남편의 인증샷을 제가 남편 모르게 담아 보았습니다.^^

20190105_141137a-vert[光明門(광명문) 전경]

앞쪽에는 萬壽山無量寺(만수산 무량사)라 현판이 걸려있고,
뒤쪽에는 이렇게 光明門(광명문)이라 현판이 걸려 있다.

김시습선생의 부도를 보기 위해 들렸다가 무량사를 들렸지만,
무량사 일주문 밖 무진암쪽으로 오르는 둔덕에 있다 하기에 다시
걸음을 재촉하였습니다.

다음날 정리 되는 대로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4 Comments

  1. 데레사

    2019년 1월 8일 at 9:25 오전

    부여쪽으로 가니까 70세 이상은 보호자 한사람까지도 무료로
    해주는 곳이 많더라구요.
    우리는 나이 먹는게 싫지만 따라 간 딸은 자기도 무료라고 좋아서
    날뛰던데요. ㅎ

    무량사, 기억해 두겠습니다.

    • 초아

      2019년 1월 8일 at 8:48 오후

      어머, 그래요.
      보통은 70이상이면 한 사람만 되잖아요.
      보호자 한 사람까지도 무료로 해준다구요.
      처음 알았어요.
      함께 간 따님이 좋아라 하였겠네요. ㅎㅎ
      무료는 100원도 기분 좋죠.
      땅에 떨어진 100원 동전은 별로이면서..ㅋㅋ

  2. 김 수남

    2019년 1월 9일 at 2:20 오전

    초아언니! 너무 좋은 곳 다녀 오셨네요.김시습선생님을 직접 만난 듯 합니다. 덕분에 구경 잘 했습니다.감사합니다.새해에도 더욱 건강하셔서 전국 방방 곡곡 가시고 싶은 곳 누비시며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초아

      2019년 1월 9일 at 6:08 오전

      오랫만입니다.
      잊지 않고 들려주시고 댓글 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수남님도 새해에는 더욱더 하나님과 가까이 동행하시며
      하늘의 복 듬뿍 받으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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