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사적 제457호 月精橋(월정교)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교동 274

20190124_123159[교촌마을쪽에서 담은 月精橋(월정교) 전경]

월성 서쪽 끝에 위치하며 남천을 가로지르는 다리로
경덕왕 19년 2월 궁성 남쪽 문천에 월정교와 춘양교 두 다리를 놓았다고 한다.

20190124_124656[교촌마을 쪽 안내판 글 내용]

20190124_123310[교촌마을쪽 月精橋(월정교) 현판]

20190124_123227[교촌마을쪽에서 담은 月精橋(월정교)]

고려시대 문관 김극기가 월정교를 보고
“무지개 다리가 거꾸로 강물에 비친다”는 시를 남겼다.
이를 감안하면 다리는 아치형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경주시는 해외 사례 등을 검토해 일직선의 들보교로 복원하여,
고증을 무시한 채 마구잡이식으로 이루어졌다며 설왕설래 중이라 하네요.

20190124_123322[교촌마을쪽에서 월정교 내부 전경]

경상북도 경주시 교동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에 지어졌던 교량으로,
조선시대에 유실된 것을 2018년 4월 국내 최대 규모의 목조 교량으로 복원하였다.

20190124_123357[교촌마을쪽에서 월정교 내부 전경 2]

‘삼국사기’에 의하면 통일신라시대 경덕왕 19년(760년)
지어진 것으로 기록되고 있으며, 경주 월성과 남산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였다.

20190124_123442[월정교 내부에서 담은 우측 전경]

사진속에서는 잘 안 보이지만, 저 아랫쪽 강위에는 징검다리가 놓여있다.
저곳을 건너가 보고 싶었지만, 시간상 사진으로만 담고 통과…

20190124_123450[한가롭게 물위를 노니는 천둥오리]

20190124_123456[한가롭게 물위를 노니는 천둥오리 2]

20190124_123405[교촌마을쪽에서 담은 월정교 내부 전경]

또 한편으로는 월정교지는 발굴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다리 모습과
구조에 대한 고증연구를 거쳐, 2008년부터 2018년 까지 교각 및 누교와
다리 양쪽에 門樓(문루)를 갖춘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고도 한다.

20190124_123422[月精橋(월정교) 천정]

이 다리에 얽힌 얘기 한자락 하고 넘어가야죠.^^

‘원효대사는 월정교를 건너 요석궁에 들어갔다’
전하는 경주의 월정교지는 통일신라시대 월정교 옛터이다.

20190124_123516[월정교 내부에서 담은 좌측 전경]

원효대사는
‘誰許沒柯斧(수허몰가부)’
누가 자루 빠진 도끼를 주리요
‘我斫支天柱(아작지천주)’
내가 하늘을 떠받칠 기둥을 만들겠노라
고 노래를 부르고 다녔다고 한다.

20190124_123525[무리를 향해 가는 천둥오리]

20190124_123530[월정교 위에서 담은 천둥오리]

20190124_123606[월정교 내부에서 담은 반대쪽 앞 전경]

보통 사람들은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으나, 태종무열왕이
이 노래를 전해듣고 원효가 나라에 크게 쓰일 인재를 낳고자 함을 알고
과부였던 둘째 딸 瑤石公主(요석공주)와 원효를 이어주었다.

20190124_123613[월정교 내부에서 담은 반대쪽 앞 전경 2]

또 다른 설은 원효대사가 경주 남산으로부터 내려와
월정교[혹은 蚊川橋(문천교)]를 지나다가 자신을 찾고 있는
신하를 보고는 다리에서 떨어져 옷을 입은 채로 물에 빠지니,
신하는 월정교 바로 옆의 요석궁으로 원효대사를 인도하여
옷을 말리게 하였으므로, 자연스럽게 머물게 되었다.

20190124_123708[교촌마을 반대쪽에서 담은 월정교 전경]

이때 얻은 아들이 바로 薛聰(설총)이고,
이후 원효대사는 스스로를 小性居士(소성거사)라 하였다.

20190124_123733[교촌마을 반대쪽에서 담은 月精橋(월정교) 현판]

20190124_123721[교촌마을 반대쪽에서 담은 月精橋(월정교)]

‘삼국사기’에 의하면, 760년 景德王(경덕왕 19) 때에
‘궁궐 남쪽 蚊川(문천) 위에 日淨橋(일정교), 月淨橋(월정교)
두 다리를 놓았다.’는 기록이 있다.

20190124_123900[좌측에서 담은 월정교 전경]

春陽橋(춘양교)라고도 불리었던 일정교는
월정교의 동쪽으로 약 700m 상류에 위치해 있었다.

20190124_123758[형산강 팔경 안내도와 안내판 전경]

20190124_123809a[형산강 팔경 안내도와 안내 글 내용]

20190124_123918[좌측에서 담은 月精橋(월정교)]

춘양교는 日精橋(일정교), 효불효교, 칠성교 등으로 이름이 바뀌게 되는데…
각각 해와 달의 정령을 상징하는 일정교와 월정교로 이름이 정해진 것으로 여겨지며,
효불효교나 칠성교는 조선시대에 민간의 전설이 결부되면서 붙여진 이름으로 추정된다.

20190124_124124[우측에서 담은 月精橋(월정교) 전경]

月淨橋(월정교)는 조선시대에 와서 月精橋(월정교),
깨끗할 淨(정)이 정할 精(정)으로 표기되었다 합니다.

20190124_124256[교촌마을 반대쪽에서 담은 월정교 내부]

일정교지. 월정교지는 우리나라의 고대 교량의 축조방법과
토목기술을 보여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일정교는 경주 남산과 남쪽 외지를
연결하고, 월정교는 신라왕경 서쪽 지역의 주된 교통로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여,
신라왕경의 규모와 성격을 파악하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20190124_124305[교촌마을 반대쪽에서 담은 월정교 내부 전경]

요석궁은 월정교터를 건너면 나오는 마을터에 있었다고 하며,
조선시대 경주 최부자집터로 바뀐 뒤에 현재는 음식점 등이
위치하고 있다 한다.

20190124_124440[월정교 위에서 담은 교촌마을쪽 전경]

20190124_124508[월정교 위에서 담은 월성 발굴 현장 전경]

20190124_124546[월정교 2층 오르는 상향방향]

門樓(문루) 2층에는 출토된 유물과 교량의
건축 역사를 보여주는 디지털 전시관을 설치하며,
월정교의 역사와 복원과정 관련 영상도 상영한다 들었는데…
출입금지라 올라가보지 못하여 아쉬웠다.

20190124_124554[월정교 2층 오르는 하향방향]

20190124_124604[월정교에서 담은 교촌마을 앞쪽 전경]

20190124_124702[교촌 홍보관 전경]

월정교 아랫쪽 교촌마을 에는 자리하고 있는
교촌홍보관에도 들렸지만, 그곳 소개는 다음에 하겠습니다.

20190124_124730[다시 담아 본 교촌마을쪽 월정교 전경]

밤야경이 아름답다 하지만, 밤까지 기다릴 수도 없고 하여
월정교 전경을 다시 한번 더 담고 월정교 소개를 마치겠습니다.

 

2 Comments

  1. 데레사

    2019년 1월 25일 at 4:48 오후

    최부자집도 개방하고 있을텐데 가 보셨나요?
    어설픈 복원은 안하느니만 못할 때도
    많아요.
    경주가도 월정교는 아직 안 가봤어요.

    • 초아

      2019년 1월 25일 at 9:50 오후

      복지관 운동 후 곧장 출발해서 갔지만,
      돌아올 시간이 늦어질것 같아서..
      서두르느라 개방하고 있는 최부자집은 이번엔
      들리지 못하고 왔습니다.
      가까운 시일에 다시 가자하네요.
      그때 들려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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