鮑石亭址(포석정지)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배동 454-3

[鮑石亭址(포석정지) 출입구 전경]

대한민국 사적 제1호인 포석정은 신라 시대에 유상곡수의
연회를 행하던 곳으로 신라 宮苑(궁원) 기술의 독특한 면모를 보여 주고 있다.
최근엔 연회를 행하던 장소보다 의식이 행해졌던 곳이라는 설이 더 힘을 받고 있다.

20190124_144249[안내판과 출입구 전경]

20190124_144308[경주 포석정지 안내 글 내용]

20190124_144313[경주 포석정지 안내도]

20190124_144318[경주 포석정지 영문 중국어 안내 글 내용]

20190124_144339[바깥 담에 붙어 있는 鮑石亭址(포석정지) 사진]

20190124_144351[鮑石亭址(포석정지) 표석비]

20190124_144409[출입구에서 담은 鮑石亭址(포석정지) 전경]

경주시 배동에 있는 신라의 별궁이 있던 자리에 건물은 없어지고 석조구조물만 남아 있다.

20190124_144419[안쪽 담에 붙어 있는 鮑石亭址(포석정지) 사진]

20190124_144436[鮑石亭址(포석정지) 주변 노거수]

자연환경을 최대로 활용하고 주위의 아름다운 경관에 인공적인
기술을 가미하여 이룩한 조화미는 신라 苑技術(궁원기술)의 독특한
면모를 보여 주고 있다고 평가된다.

20190124_144442[鮑石亭址(포석정지) 주변 풍경]

신라천년의 종말을 내린 슬픈 자취가 기록되었으니 55대 경애왕때 일이다.
후백제의 견훤은 신라를 침범하여 지금 영천까지 쳐들어 왔다.
견훤이 쳐들어온다는 정보를 받은 경애왕은 고려의 왕건에게 도움을 청해놓고
이 곳 포석정에서 술잔치를 베풀었다 한다.

20190124_144449[鮑石亭址(포석정지) 전경]

포석정 터 앞에 서니 만감이 교차한다.
유흥을 즐기다가 나라가 망했다는 경애왕의 슬픈 전설이 깃든 곳

지금은 물 없이 말라 그 형체만 있다.
많은 이들이 이곳을 찾지만, 세월의 흐름 앞에서 옛날의 일들을 다 알지 못하니
애달프다., 사라져간 옛일을 그 몇 사람이나 진정으로 슬퍼해 줄까.

20190124_144514[경주 포석정지 안내판 글 내용]

20190124_144524[鮑石亭址(포석정지)]

왕과 왕비를 위시하여 신하들은 곡수에 술잔을 띄워놓고 노래와 춤을 즐겼다.
이 기회를 노린 견훤이 불시에 쳐들어오니 왕은 왕비와 같이 숨어 버렸고
신하들은 붙잡혀 종이 되더라도 목숨만 살려달라고 빌었으나 견훤의 손에
모두 죽음을 당하고 말았다

왕궁을 차지한 견훤은 왕을 잡아오게 하여 스스로 죽게 하고 마음대로 횡포를 부렸다.

20190124_144530[鮑石亭址(포석정지)]

견훤의 군사들은 재물을 약탈하고 여자와 남자들은 종으로 잡아가니
그 영화롭던 신라의 서울은 수라장으로 변했고, 찬란하던 거리는 피로 물들었다.

20190124_144540[鮑石亭址(포석정지)]

견훤은 김부(경순왕)를 왕위에 앉혀놓고 왕의 아우 효렴과
재상 영경등을 인질로 데려가니 신라는 다시 일어설 기력을 잃고
그 후 10년도 못되어 고려에 항복하고 말았으니 신라 천년의 종말을
이곳 포석정에서 내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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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석정 둘레 옆 앞쪽에 세워져 있는 이 돌은 무엇을 의미하여
어떤 용도로 쓰여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범상치 않은듯 보여 담아올려봅니다.

20190124_144620[鮑石亭址(포석정지)]

포석정의 명칭은 이곳에서 ‘鮑石(포석)’이라는 명문이 새긴 기와가
발견되었으며, 여기에 있던 정자를 일컬어 포석정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20190124_144630[鮑石亭址(포석정지)]

통일신라 시대에 만들어진 이곳은 왕의 별장과 같은 곳으로,
신라 멸망의 한이 서린 비극의 장소로 더 많이 알려졌지요

20190124_144644[鮑石亭址(포석정지)]

작은 공원처럼 꾸며진 현재의 포석정터지에는
유상 곡수연을 즐기던 전복 모양의 돌홈(곡수거)만 남아 있다.

20190124_144656[鮑石亭址(포석정지)]

유상 곡수연이란 수로를 굴곡지게 하여 흐르는 물 위에 술잔을 띄우고,
그 술잔이 자기 앞에 올 때 시를 한 수 읊는 놀이로, 그런 목적으로 만든 도랑을
曲水渠(곡수거)라 한다.

20190124_144710[鮑石亭址(포석정지)]

이 놀이의 유래는 천년 전 중국에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중국에도 남아 있는 유적이 거의 없어, 이곳 포석정의 곡수거가
매우 중요한 연구자료가 되고 있다.

20190124_144714[鮑石亭址(포석정지)]

곡수거는 가장 긴 세로축이 10.3m, 가로축이 약 5m 크기로,
깊이 50㎝ 가량 되는 도랑이 나 있다. 모두 63개의 석재로 조립되었다.

20190124_144719[鮑石亭址(포석정지) 주변 풍경]

포석계곡에서는 맑은 계곡물이 흐르고 있고, 주위에는
수백 년 된 느티나무와 소나무, 대나무 숲이 남산의 기암들과
어울려 아름다운 경관을 이루고 있다.

20190124_144908[鮑石亭址(포석정지)]

술잔이 수로를 한 바퀴 도는 동안 시를 지어야 하고,
시를 제대로 짓기 위해 7~8분이 필요한데 물이 굽이굽이
돌지 않고 그대로 흘러가면 2~3분 만에 돌아오므로 시를 짓기 위한
시간을 벌기 위해 물이 굽이굽이 돌도록 설계한 것이라 하네요

20190124_144848[鮑石亭址(포석정지) 전경]

서거정의 십이영가에도 나오는 포석정에 대한
시 한수를 소개하며 포석정 소개를 마칠까합니다.

十二詠歌(십이영가) / 서거정

포석정 앞에 말을 세울 때
생각에 잠겨 옛일을 돌이켜보네
유상 곡수하던 터는 아직 남았건만
취한 춤 미친 노래 부르던 일은 이미 옳지 못하네

함부로 음탕하고 어찌 나라가 망하지 않을쏜가
강개한 심정을 어찌 견딜까
가며가며 오릉의 길 읊조리며 지나노니
금성의 돌무지가 모두 떨어져버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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