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달래를 杜鵑花(두견화)라고도 하고 참꽃이라고도 한다.
두견화라는 것은 중국 이름으로 두견새가 울 때에 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답사길에 수줍게 수풀사이에 핀 참꽃(진달래)를 만났습니다.
참꽃(진달래)를 만나면 난 언제나
김소월의 ‘진달래꽃’ 시가 떠오릅니다.
나보기가 역겨워 떠나는 님일지라도
영변의 약산 진달래 꽃을 따다가 가시는 님의 발길마다
뿌려놓겠다는 가시는 걸음걸음 꽃잎을 밟고 가시라는 것은
어쩌면 자신의 마음을 깔아드린지도 모르지요.
진달래꽃 / 김소월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우리다
寧邊(영변)에 藥山(약산)
진달레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오랜 세월을 두고 우리 겨레와 애환을 함께 하며 살아온 한국의 꽃
사람들은 흔히 진달래와 철쭉을 헷갈려 하는데,
진달래는 꽃이 잎보다 먼저 피고 철쭉은 잎이 난 다음 꽃이 핍니다.
옛날 민간에서는 진달래꽃은 먹을 수 있는 꽃이라
참꽃이라 부르고, 철쭉은 독이 있어 개꽃이라 불렀답니다.
조상들은 진달래로 술, 떡, 화전 등 다양한 음식을 만들었습니다.
조선시대 최한기가 편찬한 ‘농정회요’에는 꿀과 밤으로 소를 만들고,
찹쌀가루를 반죽하여 기름에 지진 다음 진달래, 장미, 국화 등을
고명으로 얹어 먹는 방법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진달래는 꽃, 잎, 뿌리, 줄기 등 모든 부위가 약으로도 쓰였습니다.
꽃이나 뿌리는 햇볕에 말려 월경불순, 타박상, 토혈, 코피 등을
치료할 때 사용했고, 진달래 잎은 여름철에 따서 그늘에 말린 후
주로 천식이나 폐경에 약으로 활용했습니다.
진달래, 두견화에는 전해내려오는 고사가 있다.
중국 촉나라 망제가 쫓겨나 이리저리 떠돌면서
나라를 그리워하다가 죽었답니다.
그 넋이 두견새(표준국명은 두견)가 되어
밤새 목에 피가 나도록 울었다고 합니다.
이때 두견새가 토한 피가 진달래 꽃잎을 붉게 물들여서
진달래는 두견화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합니다.
두견은 또한 조선시대에 이름난 술로 통하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은 진달래꽃 술을 두견주라고 부르며 즐겨 마셨다 합니다.
당진 지역에는 이 두견주와 관련된 전설이 있습니다.
고려의 개국 공신 복지겸이 병이 들어 몸져눕게 되었는데
어떤 명약을 써도 차도가 없었답니다.
효성이 지극한 딸은 매일 아버지를 위해 기도를 드렸지요.
드디어 산신령에게 병 나을 방도를 듣게 되는데, 바로 진달래와
찹쌀로 빚은 술을 마시면 씻은 듯이 낫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복지겸은 두견주를 마시고 병이 나았고,
이때부터 이 지역에서는 두견주를 빚어 마셨다고 전해집니다.
꽃말 : 절제, 청렴, 사랑의즐거움
오래된 전설은 아니지만, 여기에 얽힌 초아의 아찔했던 추억 얘기도 있습니다.
풋풋하고 싱싱했던 한 때 산악회에 가입하여 전국의 산을 누비고 다닐때의 일입니다..
창녕인가? 지역의 기억은 희미해졌지만, 봄날 산행을 하며
온 산에 지천으로 펴있던 진달래(참꽃)과 이르게 핀 철축을 만났지요.
그때 앞서 걷던 친구가 어릴적 추억을 떠올리며 꽃잎을 따서 한입 가득 먹었어요.
“그만 먹어, 너무 많이 먹어도 탈난다.” 하고 말렸지만,
입술이 시뻘겋도록 따먹고는 쓰러졌지요.
진달래(참꽃) 만 먹었다면 탈이 없었을텐데
가끔씩 섞여 피어있는 독이 있다는 철축꽃도 같이 먹었나봅니다.
119에 신고, 핼기가와서 병원으로….
응급조치를 받고 안정을 한 후 퇴원하였지만,
두고두고 그 친구는 우리들에게 주목 대상이 되었다.^^
진달래와 철쭉은 그 피는 시기가 다르다.
즉 진달래가 먼저 피어서 질 무렵에 철쭉이 피는 것이다.
그래서 경상남도 밀양지방에서는 진달래꽃이 진 다음에
연달아서 핀다고 하여 산철쭉을 연달래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한다.
그러나 늦게까지 피는 진달래(참꽃)과 이르게 피는 철죽이
함께 피기도 하니 이웃님들도 옛추억을 떠올리며 꽃잎을 따 먹을때
조심하셔요. 진달래(참꽃)과 철죽을 구분하여 드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