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희랍어 시간 – 우리 사이에 칼이 있었네

[책표지]

눈과입의변화,호기심이작동한다.
어떤애잔한일이일어날까?
빛이만나는찰나의순간을맛보고싶다.

[한남자와한여자의이야기]

다만,한남자와한여자의기척이만나는이야기?

단서의기척은무슨의미일까?

고개를갸우뚱거린다.

[우리사이에칼이있었네]

소설의첫장과둘째장이다.

의미심장한화두랄까?

보르헤스의묘비명이첫줄을장식한다.

보르헤스는아르헨티나의시인이자단편소설작가이다.

그는39세때의크리스마스이브날,계단창문에머리를부딪치는사고로심하게다쳤고

이에따른패혈증의후유증으로그후말을못하게되었다.

그때부터그에게내재되어있던강렬한창작력을불러일으켜환상적사실주의의단편소설을쏟아냈다고한다.

또한,그의아버지의유전질환을물려받아1920년부터점차시력이약해졌고,

1950년대에는전혀앞을보지못하게되었다고한다.

그러나보르헤스는"20세기의도서관","사상의디자이너"라는별명을가질만큼

비상한기억력으로1980년대까지왕성한활동을하였다고한다.

이런보르헤스의실어증및실명에서힌트를얻었을까?

"희랍어시간"은말을잃어가는한여자의침묵과눈을잃어가는한남자의빛이만나는이야기이다.

그것도침묵과빛이만나는찰나의이야기로엮의짧은장편소설이다.

그럼,첫줄"우리사이에칼이있었네"는무슨의미일까?

작가는만년의보르헤스와세계사이에길게가로놓였던"실명(失明)"이라고썼다.

보르헤스의무덤에새워진묘비에는흥미로운비문이적혀있다.이비문을새긴사람은아르헨티나의에두아르도론가토(EduardoLongato)로알려져있는데,이글은북구의고대언어와보르헤스의문학을아는극소수의사람만이이해할수있는것이다.묘비에적힌시구는13세기노르웨이사가(saga)인폴숭가사가의27장에서인용한“HanntekrsverthitGramok/leggrimethaltheirabert”라는글이다.이것은“그는그람이라는칼을집어두사람사이에놓았다”라는뜻이다.보르헤스는이글을『모래의책』에수록된「울리카」의헌사(獻辭)로사용하는데,이시구는주인공지구르트가브륀힐트와사흘밤동안침대를함께쓰던대목을지칭한다.지구르트는브륀힐트를건드리지않기위해두사람사이에칼을놓는다.그리고이시구아래에는“울리카에서하비에르오타롤라까지”라는말이새겨져있는데,이이름들역시「울리카」에나온다.그들은보르헤스작품속에서유일한러브스토리의주인공들이다.

「울리카」에서화자인하비에르오타롤라는조용하고신비스런울리카를만나자자기가사랑에빠지게될것을즉각적으로예감하면서이렇게말한다.“나는내옆에또다른사람이있기를원치않았을것이다”그녀역시그에게관심이있는것같았다.이런것은“나이가지긋하게먹은독신남자에게자청해서주겠다는여자의사랑은기대치않은선물과진배없다”라는말에서쉽게간파될수있다.하비에르오타롤라는지난날의잃어버린사랑을회상하면서,그녀가어떤조건을붙이더라도받아들이겠다고마음먹는다.그들은서로를지구르트와브륀힐트라고부른다.이작품은헌사로“그는그람이라는칼을집어두사람사이에놓았다”라는말을하고있지만,그들은그날밤절대로따로자지않는다.보르헤스는이대목을이렇게묘사한다.“어둠속으로백년만에처음으로사랑이흘러들었고,나는처음이자마지막으로울리카의이미지를갖게되었다”<출처:보르헤스와성(性)의문제/송병선>

이렇게칼은단절의의미한다.

"희랍어시간"에서는이단절을소통으로전환하는이야기일것이다.

작가도이칼을지극히조용하고사적인고백으로받아들였다.

남자와여자사이에가로놓인칼(실명과실어)을넘어서서만나는찰나의아름다움을어서보고싶었다.

보르헤스의소설에서도그칼을넘어서지않았는가?

그런데,처음책을받았을때쉽게읽을것같았던글이잘읽어지지않는다.

작가의섬세한언어보다도,나의안경과나의머리,슬프고섬짓한상상이날압도했기때문이다.

그들의삶이내삶이아니었으면하는간절함이책의언어를흐리게했던것이다.

인간의실체가너무약하다.

2/3정도읽어도그찰나는나타나지않았다.

말을할수없고,눈은자꾸멀어가는데조바심이인다.

소설을읽는내내두남녀는언제어떻게통하나하는호기심이날시험했다.

[철자와음운그리고詩]

"숲"자가가지는의미의분석이이미지로그려진다.

이러한언어의유희가소설전체를시적이미지로꾸며준다.

그리고여자의실어증에그언어의조각이목에걸린다.

[사랑]

작가는인터뷰에서

사랑이란아마도가장보드라운맨살의접촉아니겠느냐?

남자와여자가대화로밤을보냈던것처럼

눈앞에암전이내려앉은남자를위해여자가남자의손바닥에손가락으로글을써말을전하는것처럼

손톱을바투깎아드러나는손톱밑의보드라운맨살

긁고글씨를써도상대에게상처를입히지않는맨살

그러한맨살로암전의상대에게,치명적인상처를입은남자에게부드럽게말을거는행위가

사랑의은유아니겠느냐?말한다.

사람의힘을지니지못한사람들은사랑받기위해자신을치장학로꾸밀것이다.

손톱을기르고매니큐어를바르듯,마음에꾸밈의칼을세울것이다.

대상앞에서마음의꾸밈과칼을버리고가장보드라운맨살로상대를더듬고어루만지는것,

그것이사랑…

[어둠속의대화]

남자는다쳐여자의부축을받으며남자의방으로들어왔다.

남자는누워서살아온얘기를한다.

여자는듣는다는기척으로몸을움직인다.

그렇게새벽녘이되었고남자는혼자말하기너무어렵고피곤했다.

"지금택시를부르겠어요?"

그가내민손을그녀의왼손으로받친다.

주저하는오른손의검지손가락으로그의손바닥위에쓴다.

"아니요,첫버스를타고갈래요."

[흑점]

여자가집에갔다가다시왔다.

여자가그의왼손을잡아펼친다.

그의손바닥에쓴다.

"안경점문열시간이예요."

"처방전은어디있어요?"

왼손을그녀의손에서빼내며,그는몸을일으킨다.

어둑한공기속에떠오른그녀의흰얼굴을향해다가간다.

견딜수없이떨리는왼팔을들어,처음으로그녀의어깨를안는다.

그녀의얼굴에서가장부드러운곳을찾기위해그는눈을감고뺨으로더듬는다.

소리없이먼곳에서흑점들이폭발한다.

맞닿은심장들,맞닿은입술들이영원히어긋난다.

[o]

여자가혀끝으로아랫입술을축인다.

끈질기게,더깊게숨을들이마셨다내쉰다.

마침내첫음절을발음하는순간,힘주어눈을감았다뜬다.

눈을뜨면모든것이사라져있을것을각오하듯이.

"희랍어시간"은

어둠밖으로나아갈수없는남자와

철자와음운의사이에서말을잃어가는여자가

서로보이지도않는몸짓으로

서로에게가녀린구원의빛을선사하는이야기이다.

그것은작은빛만으로도충분하다.

나도누군가에게작은빛이되고싶다.

어둠속에서말없이어깨를안아주는것의중요함을…

말을잃어버린여자는자신의의지로언어를되찾고싶어서사설학원에서희랍어를배운다.

그곳에서희랍어를가르치는남자를만나는데,그는유전적질병으로빛을잃어가면서

많은사람들을잃었고,옛애인에게부칠수없는편지를쓰면서괴로워했다.

그러다가외국에서의이방인에대한눈총을피해편한고국에돌아와서희랍어를가르친다.

그렇게만난그들의텅빈공간을메우는소통이시작된다.

그한줄기빛이그들을다시태어나게한다.

그작은빛의아름다움이소설의마지막을장식한다.

시어(詩語)같으면서난해했던글이그제야제모습을찾은듯하다.

작가의감수성에박수를보낸다.

SilentDream/TronSyversen

2011년12월,맹추위가연말을얼린다.

서로에게조그만빛이되어좀더따뜻한세상이길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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