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에 걸려온 전화

4월에걸려온전화

정일근

사춘기시절등교길에서만나서로얼굴붉히던고계집애

예년에비해일찍벗꽃이피었다고전화를했습니다.

일찍핀벗꽃처럼저도혼자가되어

우리가좋아했던나이쯤되는아들아이와살고있는

아내앞에서도내팔짱을끼며,우리는친구지

사랑은없고우정만남은친구지,깔깔웃던여자친구가

꽃이좋으니한번다녀가라고전화를했습니다.

한때는화끈거리던낯붉힘도말갛게지워지고

첫사랑의두근거리던시간도사라지고

그녀나나나같은세상을살고있다생각했는데

우리생애사월꽃잔치몇번이나남았을까헤아려보다

자꾸만눈물이났습니다.

그눈물을감추려고괜히바쁘다며

꽃은질때가아름다우니그때가겠다고말했지만

친구는너울지,너울지하면서놀리다

저도울고말았습니다.

4월이가버렸습니다.

천둥치고,바람불고,비오고…

변덕을무척이나떨어대더니세월에못이겨가버렸습니다.

4월의마지막날광화문에서만나점심먹고,

덕수궁이든경복궁이든들어가4월의꽃나무아래서수다나떨자고사촌들과약속했었습니다.

주말에다비까지오고보니광화문은한산하기짝이없더군요.

마치촬영한지오래된세트장같더란말이지요.

세종대왕님도.이충무공께서도소품처럼보이더란말이지요.

그나마연두색으로변해가는은행나무때문에살아있는도시같더군요.

우리사촌들은한할머니를공동분모로하고있습니다.

우리외할머니의손녀딸이란!

우리외할머니의자식4명이같은해에똑같이딸들을낳았네요.ㅎ

그래서동갑쟁이사촌이4명입니다.

돌아가며한번씩점식을내며일년에4번쯤만나고…

집안에길흉사있으면또만나고…

어쩌면먼데사는친형제보다더자주만나게됩니다.

무엇보다우리들에게는한고장에서유년시절을보낸탓에수다거리가무궁무진한거지요.

‘우리생애사월의꽃잔치몇번이나남았을까?’

이사촌들의모임은언제까지이어질까.

위엣분들다가시고이제는그자리를우리들이차지하고있는데

언제쯤이자리를내어주게될까!

그런데우리들의수다는자꾸만자꾸만유년의시절로돌아가고…

우리중두명은가마타고족두리쓰고,

가마속에요강도집어넣고시집갔던이야기로치달았습니다.

어쩌면이나이쯤의여자들은불투명한미래보다는

거침없었던옛날의기억들이더힘이되는가봅니다.

과거란.

‘오래된미래’라는말이있듯이…

사촌들과헤어져여전히쏟아지는빗속을걸으며

유난히아픈날이많았던사월을너그럽게보내기로합니다.

보내지않으면안가는사월은아니지만…

붇잡아도가는사월이라면

내가보내준다고생각하면기분이좋아질것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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