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기억 하나

‘대화까지는팔십리의밤길,고개를둘이나넘고개울을하나건너고벌판과산길을걸어야한다.

길은지금긴산허리에걸려있다.

밤중을지난무렵인지죽은듯이고요한속에서짐승같은달의숨소리가손에잡힐듯이들리며,

콩포기와옥수수잎새가한층달에푸르게젖었다.

산허리에는온통메밀밭이어서피기시작한꽃이소금을뿌린듯이흐뭇한달빛에숨이막힐지경이다.

붉은대궁이향기같이애잔하고나귀들의걸음도시원하다.

길이좁은까닭에세사람은나귀를타고외줄로늘어섰다.

방울소리가시원스럽게딸랑딸랑메밀밭께로흘러간다.’

허생원일행이평창장에서대화장으로가는장면이다.

조금이즈러진달이지만,달은부드러운빛을흐뭇하게흘리고있다.

곰보에다왼손잡이인허생원은또아득한옛날,물방앗간의정사를풀어놓는다.

조선달은이미귀에못이박히도록들은이이야기를묵묵히들어준다.

‘달밤에는그런이야기가격에맞거든.’

외줄로늘어서서걷는맨뒷쪽에동이가따라오고있다.

세상천지단하나밖에없는피붙이가…

그때그사람들어디서어떻게살고있는지…남한강을배경으로

20대초반쯤에여주에서이천까지걸었던일이있다.

이천에볼일이있었는데,일일찍끝내고

무르익는봄기운에못이겨여주신륵사까지간것이다.

그러다막차를놓쳐버린거지…

버스는여주를떠나이천을거치고광주를지나,

교문리망우리고개를넘어청량리까지가는거였다.

우리는청량리역에서또기차를타고인천으로…

어차피하루에끝나는여행길은아니었다.

일행중에이천에살고있는직원이있어서우리는이천에서하룻밤자기로했던거였다.

그러니그날의최종목적지는이천이었다.

그때는어디전화해서’차가져와~’하는때도아니었고

택시라는것도찝차를개조한듯한,모양도찝차를닮은’시발택시’가있었지만

그런지방읍소재지에있기나있었는지…

우리들은이미막차떠나고한적한차부에서서성거리며황당해했다.

(그때버스터미널을’차부’라고했다.)

그때이천서사는직원이그랬다.

자기들은이천서여주,광주를걸어다녔다고,

지금도여주에서이천까지몇키로나되는지알수없지만,

우리는거리같은것은생각도안해보고걷기로했다.

신륵사에서…

달이밝았다.

이즈러진달도아니고보름달인듯싶었다.

하늘은깨끗하고짙은바닷색이었다.

달의교교로움이소름끼칠지경이었다.

달빛때문이었는지길이하얀색이었다.

나는오랬동안어떻게길이하얗게빛나고있었는지궁굼했었다.

여주이천이도자기의고장이니흙이점토여서일까?

아니면마사토이기때문이어서였을까?

아직도그해답은찾지못했지만우리는그길을타박타박끝없이걸었었다.

그하얀길은

산허리를뱀처럼유연하게넘어가기도하고

골짜기시내를따라노래를웅얼거리게도했다.

달은높이떠서속속들이비춰주었다.

그리고

길가잔솔밭사이사이로붉게피었던산철죽!

난,지금도그날의달빛과하얀길과산철죽을잊을수가없다.

지금도눈감고그날을기억하노라면여지없이그장면이생생하게떠오른다.

언제이천에도착했는지,

어떤이야기들를하면서걸었는지,

무슨노래를불렀었는지하나도기억할수없는데말이다.

때때로이런아름다운기억들이단조롭고지루한내삶에작은위안이되는것을느낀다.

이런추억이아무에게나있는것이아니라서

신의은총처럼내게주어진것에대해서감사한마음을가진다.

오늘

한낮의지루함에못이겨펼쳐본오랜사진첩에서또그날을끄집어냈다.

시간은쉬지않고가지만정지된그날의사진들로인해나는타임머쉰을탄다.

내아름다웠던시절,5월처럼내몸에서도싱그런냄새가나던시절,

그시절로돌아갔었다.

허생원이지치지않고물방앗간이야기를하는것은그날이그에게

평생잊지못할추억이며

장똘뱅이신세를싫어하지않고도리어즐기기까지하게하는원동력이었던것처럼

나에게도끄집어낼수있는추억이있어서살아가는데힘이되는것이다.

그러나

그시절엔꺼리낌없을것이라고앞만보고달렸었는데

내앞에태클걸놈은없을거라고생각했는데

세상은만만한것이아니라서

나란사람그만속절없게된거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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