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좌진 장군 생가지

충남홍성군갈산면행산리330-1

충청남도기념물제76호인

김좌진장군생가지

생가의정면

과거생가지뒤편에는일본이우리나라정기의맥을끊는다며

담장뒤에서가운데로뚝잘라도로를내었던것을

홍성군이그길을메꾸고백야공원을만들었다고합니다.

‘백야’란뜻은

‘우리백의민족은심신을단련하여다단해져야

일본을이길수있다.’라는의미

장군의집안은대대로나라가위급할때떨쳐일어났던

조선의명문가이고혁명가집안이라고합니다.

1889년(고종26년)김형규의둘째아들로태어났으며

3살때부친이돌아가시고할머니와어머니의손에서자랐으며

용맹하고총명했다고합니다.

어릴때부터말타기병정놀이를즐겨했던꼬마대장

아침에할머니가새옷을입혀내보내면

저녁에들어올때는가난한친구에게옷을벗어주고알몸으로돌아오기도하구요.

툇마루에앉아해설사의이야기를열심히듣는여행객들

해설하시는분은나이가지긋하신할아버지셨는데

방금논이나밭에서일하시다가오신듯했습니다.

목소리도우렁차시고하나라도더알게하려고열심히설명하셨습니다.

또열심히듣구요.

생가와조금떨어저기념관이있습니다.

6살때할머니에게99칸의집과3천석의전답

노비30명의엄청난재산을상속받습니다.

그리고15살때

30명의노비들앞에서노비문서를불태우고전답을주어내보냅니다.

소작농들에게는소작하고있던전답을무상으로나눠줍니다.

1907년18살에

99칸집에호명학교를세우고신학문을교육하기시작했고

1916년에는광복단에가담하여독립투쟁를시작합니다.

마침내청산리전투에서대승하지만

1930년1월공산당원이었던박상실에게피살당합니다.

김좌진장군은반공주의자였습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가국무위원으로임명하였으나취임하지않고

오로지독립군양성에만전념하였다고합니다.

이국수사발은지금의국그릇보다훨신큰데

장군께서는대식가라서저큰그릇으로국수를다섯그릇을잡수셨다네요.

말술을잡수시고

갈비를한짝을잡수시구요.

해설자의허풍같기도하지만아드님이신김두한전국회의원이나

그의딸김을동국회의원의덩치를보면심한거짖말은아닌것같습니다.

이렇게뒷담에찔레꽃이흐드러지게피었을때갔었는데

이제서올립니다.

광복절의의미를되새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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