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운 가을빛 내려 앉은 4.19 국립묘지

지난달부터내가사는아파트단지에서떠나는버스로선이새로생겼습니다.

바로전철역이있고한쪽은거의막다른길이어서

구태여버스가필요없을것같은데말입니다.

늘버스가비어서다니고있었습니다.

나는버스탈일이없으니그버스가어디로가는지에도관심이없었는데

우연히그버스의종점이’4.19국립묘지’라는것을알았을때

그때부터그버스가꼭한번타야할버스가되었습니다.

그리고어제탔습니다.

50년전쯤인천에살던때우리형제들은새벽에집을떠나

서울가는기차를타고청량리인지도봉인지까지와서다시

수유리가는버스를타고백운대를오르곤했습니다.

그때수유리에서내려동네를지나밭길을한창걸어야’4.19묘지’가나왔지요.

우리는’4.19묘지’옆을지나산을오르고는했는데

지금은’4.19국립묘지’문앞까지집들이들어찼습니다.

그래도문을들어서니아늑하고조용하고평화로웠습니다.

김영삼대통령이전에는’4.19의거’라고불리우다.

김영삼대통령이취임하면서’4.19혁명’으로격상시키고

‘4.19묘지’를민주주의성지로가꾸도록하였으며

묘역을정비하고’4.19국립묘지’라고하였다는내용입니다.

김영삼대퉁령의기념식수.

제목이‘빈의자’입니다.

묘비에는대학생의이름이많았는데중학생도있었습니다.

아무도이날을함부로이야기하면안된다고생각합니다.

정치적으로이용해도안된다고생각합니다.

나는이’4.19정신’이야말로그어느것과비교할수없는

순수한정신이라고생각합니다.

만일순수하지않았다면

그렇게많은젊음이죽을수는없었으니까요.

그때는국민모두의피가끓었지요.

부정한사람은제외하고…

유영영안소에서내려다본묘역전경

기념관인데월요일은휴관이라서못들어갔습니다.

나는그때여고3학년이었는데

마산앞바다에서건져낸끔찍한모습의18살김주열과동갑이었습니다.

나는지금살아있어서그들의피값으로이룩한더나은나라에서

편안이산다는게참미안하고감사하고그렇습니다.

파노라마로찍어보았는데기술부족인것같습니다.

북한산의인수봉,백운대등산봉우리들이연달아펼쳐있습니다.

‘정의의불꽃’

4.19혁명의이념이지속되는모습

기념탑과연계하여결실의완성적의미라는뜻이라고합니다.

묘역을나오다되돌아본모습

고운가을빛이그들의영혼처럼짙게내려앉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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