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바다

내고향은인천앞바다의작은섬이다.

유년의시절을그섬에서보냈다.

내유년의기억은바다와갯벌과하늘과야트막한산들과잔디가예쁘게깔린무덤들이다.

하필이면왜무덤이냐고하겠지만학교에서집으로오는길

신작로를걸어와도그리멀지는않았는데우리들은조금더가깝게간다고,

학교뒷산,어느집안의묘가거의10기쯤남향으로옹기종기모여있는

그가운데를뚫고지나다녔다.

그무덤들은손질이어찌나잘돼있었는지우리들에게는무덤이라기보다는좋은놀이터였다.

가장위쪽에커타란묘가하나있고돌제단이있었다.

그묘를기점으로이등변삼각형의모습이로아래쪽으로무덤이있었다.

햇볕이좋은봄날이나가을날,

맨꼭대기제단앞에서부터맨아래까지구르고구르던생각이난다.

온몸에검불이붙은걸서로떼어두던일

사실가깝게간다는것은핑게이고한바탕놀다가가는것이목적이었던것이다.

조상님들이노하셨을까?

아니다즐거우셨을거다.

제단에이제는먹지도못할음식을차려놓고근엄한얼굴로절을하는것보다.

아이들의천진한웃음소리가더큰제사였을것이라는생각을지금도한다.

또다른놀이터는바닷가였다.

고운모래가끝없이깔려있고,

모래밭과갯벌사이에는크고작은조약돌이깔려있었다.

조금큰돌맹이를일으키면작은게들이화들짝도망을갔다.

그작은게를양은주전자에잡아넣으면’다그락다그락’소리가났었다.

갯벌에는수많은구멍이있었다.

민챙이가느리게느리게기어다녔다.

우리는바다에서수영을하기보다는이작은것들을잡으며즐거워했고

남자애들은대나무가지로만든엉성한낙싯대로망둥이를잡았다.

우리들에게바다는무섭기보다는커다란놀이터였을뿐이었다.

그렇다고바다를얕볼수는없다.

성난바다는모든걸집어삼킨다.

70년전전쟁이끝나기바로전겨울섣달,여객선한척이침몰했었다.

이섬에서인천으로가는뱃길은당진이나서산에서떠난여객선이이섬을지날때

작은거룻배를타고가서여객선에올라타는거였다.

그해풍랑이심해서며칠을배를띄우지못하다가마침내배가뜨던날

그동안배가못떠서사람들이많은데에다

전쟁의막바지,강제로징집되어전쟁터로가는젊은이들이탔다.

살아돌아올지혹은죽을지알수없는길을떠나는아들들의부모와친척들을

부두에남겨놓고작은거룻배를타고떠났다.

여객선은당진에서이미인원이초과되었는데또태웠다.

아마도일제는군인이급했을런지도모를일이다.

그래서무리하게실었는지도모를일이다.어쨋든

배웅하는사람들이뻔히지켜보는가운데서그배는침몰했다.

70년전의섣달어느날.

수영을해서살아난사람도있었지만육지에서가까움에도불구하고많이죽었다고한다.

죽어서해안으로떠밀려온시체들이장작쌓아놓은것같았다고한다.

할머니가그배에타셨다.

인천에사는작은아들네가시던중이셨다.

나보다두살아래인사촌동생의태어났다.

할머니는둘째며느리의산관을하시러인천에가셔야하는데배가안와서못가셨었다.

그러다배가왔으니할머니는기를쓰고타셨을것이다.

할머니는멀미를심하게하셔서배를타면선실에안들어가시고늘갑판에계셨다.

살아온사람의말로는그날도할머니는갑판에계셨다고한다.

배가기울며할머니는제일먼저바다에떨어지셨을것이다.

아버지는할머니의시신이라도찾으려고시신이란시신은다들춰보셨다고한다.

어느섬에시체가밀려왔다고하면작은목선을타고찾아다니시기도하셔지만

할머니의시신은끝내못찾았다.

먼바다로떠내려갔나보다고단념하실수밖에없었다.

내가두살때있었던일이다.

아버지는내가커서까지가끔우셨다.

‘넌할머니를꼭닮았어!’

할머니는내얼굴에당신모습을남겨놓으셨다.

우리형제들은일년에두어번씩그섬에간다.

아직도몇몇집안네가살고있기는하지만일부러찾아가지는않는다.

그냥그바닷가모래톱에앉아바다를바라보며어렸을때이야기

그리고할머니아버지엄마이야기를하다가온다.

다그리운시절그리운사람들이다.

동생과다시다녀왔다.

찾아갈바다가있다는것은좋은일일까!

나는좋다고생각한다.

바다는슬픔을주기도하지만그리운곳이기도하다.

나의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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