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가 유별하던 시절의 ㄱ자형 예배당

전라북도김제군금산리에가면기억자(ㄱ)예배당이있습니다.

금산교회입니다.

기독교가우리문화에토착화하는과정을살펴볼수있는중요한자료입니다.

이예배당은1908년에지었는데한수(漢水)이남에서원형이가장잘보존되어

1997년10월전북문화제제136호로지정되기도했습니다.

말을타고전주와정읍을오가며전도하던미국인테이트(한국명최의덕)선교사가

전주와정읍의중간지점이며마방이있던이곳귿산리에머물면서유창한한국말로

‘예수믿으세요’라며전도하였습니다.

그리고마을의유지인조덕삼,박화서,왕순칠,강평국,이자익등이예수를믿게되고

1905년에교회가세워졌습니다.

금산교회는신자수가많아지며1908년에다섯칸짜리예배당을다시지으며

남녀칠세부동석이란유교문화의관습을해치지않으려는방안으로

남자석과여자석을구분하여기억(ㄱ)자형으로지었습니다.

이것은기독교가가지고있는서양문화가동양의문화곧유교문화와대립하지않고

우리토양에맞게토착화되는증거를보여주는중요한의미가있는교회입니다.

교회의정면,남자들이예배드리는곳입니다.

여자쪽보다넓습니다.

여자쪽에서본

커튼을친모습입니다.

목사님은직각위치에서설교를하십니다.

다시커튼을져치고…

우리는그때처럼남녀유별하여예배를드립니다.

목조건물의생생한아름다움

그때의것인지는모르지만…

옛날지은기억자교회와새로지은현대식교회그리고종탑

이교회에는전설같은아름다운이야기가있습니다.

6세때부모를잃고소학교도제대로다니지못한이자익은

고향남해를떠나무작정걸어금산까지오게됩니다.

그곳에서조덕삼을만나고그의마방의마부가되었을때는17세

조덕삼은부자였으며그마을의유지였습니다.

조덕삼은이자익의영특함을알고아들과함께공부를하게합니다.

신앙생활도함께시작했습니다.

교회의신자수가늘면서장로를세워야하는데후보가2명이올랐습니다.

조덕삼과이자익

조덕삼은주인이고이자익은그집의머슴입니다.

지금으로말하면갑과을이지요.

결과는이자익이뽑혔습니다.

난리가났겠지요.

뽑힌지나,탈락된자나,뽑은자나…..

머슴은어리떨떨황송했을태고,주인은체면이말이아니었고

그마을에서조덕삼의은덕으로먹고사는뽑은자들은아차!했겠지요.

그러나조덕삼이술렁이는성도들을향해

‘우리금산교회성도들은참으로훌륭한일을해냈습니다.

저희집에서일하는이자익은저보다신앙의열의가대단합니다,

그를뽑아주셔서참으로감사합니다.’

20살이나더나이가많고쥔장이었던조덕삼은3년뒤에장노가되었고

조덕삼장로님은이자익을신학교육까지공부시켜서이교회의2대목사로

섬겼으며교회의부지와건물을헌납하기도했습니다.

집에서는머슴인이자익이조덕삼을주인으로섬겼고

교회에서는장로인조덕삼이이자익을목사님으로섬겼고…

이렇게아름다운신앙의이야기가100년이나이어지는교회입니다.

비가그친예배당뜰에가을이아직남아있었습니다.

이꽃이진짜’들국화’같습니다.

흰구름이떠도는가을언덕에

한떨기들국화가피고있는데

그누구를남몰래사모하기에

오늘도가련하게구름만돈다.

속으로응얼거려봅니다.

이슬이고인한송이패랭이꽃때문에

용케버티고있던감성이폭팔했습니다.

‘어머나!!!’

아이들처럼눈싸움하듯낙엽싸움을했습니다.

하나씩집어가세요.

아직떫으니두었다잡수세요.^^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