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피고진 꽃에 대한 기억

 

 

​ 이른 아침 아들네 가는 전철 안

내 옆의 여자가

나직한 목소리로 자분자분

시를 읽고 있었다.

‘단추를 채워보니 알겠다….’

반복해서 읽는걸 보니 외우는 것 같다.

‘마루 끝에 ​쪼그리고 앉아……’

다른 시도 읽는다.

곁눈으로 쳐다 본다.

‘시를 좋아 하시는군요.’

말을 건다.

자기는 시를 쓰는 시인라네

‘전철에서 시인을 만나다니…..’

나는 작은 감탄사로 대응 한다.​

지금 그녀는 일 주일에 두번씩 ‘시 낭송’을 배우러 다닌다고 했다.

‘아니 ​시인이 시 낭송을 일부러 배워…?’ 속으로 ​생각했다.

의외로 재미있고 감정 전달이 빠르다고 한다.

나는 너무 감정을 넣어서 시를 낭송하는 그 모습을 너무 싫어하는 터라​

‘ 아! 그렇군요.’

그녀는 자기 이름을 ​가르쳐 주며

인터넷에 이름만 쳐도 자기가 나온다고 한다.

시인은 그만 두고

곁눈질로 보았던 시 두편을 찾아 본다.

다음과 같다.​

 

 

 

​봄날 피고진 꽃에 대한 기억

                                     – 신 동 호 –

나의 어머니에게도 추억이 있다는 걸

참으로 오래 되어서야 느꼈습니다

마당에 앉아 봄나물을 다듬으시면서

구슬픈 콧노래로 들려오는 하얀 찔레꽃

나의 어머니에게도 그리운 어머니가 계시다는 걸

참으로 뒤늦게야 알았습니다

잠시 고개를 갸우뚱하시며 부르는

찔레꽃 하얀 잎은 맛도 좋지

손은 나물을 다듬으시지만 마음은 저편

상고머리, 빛 바랜 사진 속의 어린 어머니

마루 끝에 쪼그려 앉아

어머니의 둥근 등을 바라보다 울었습니다

추억은 어머니에게도 소중하건만

자식들을 키우며 그 추억을 빼앗긴 건 아닌가 하고

마당의 봄 때문에 울었습니다

단추를 채우며

             천 양 희

단추를 채워보니 알겠다.

세상이 잘 채워지지 않는다는 걸

단추를 채우는 일이

단추만의 일이 아니라는 걸

단추를 채워보니 알겠다

잘못 채운 첫 단추, 첫 연애 첫 결혼 첫 실패

누구에겐가 잘못하고

절하는 밤

잘못 채운 단추가

잘못을 깨운다.

그래, 그래 산다는 건

옷에 매달린 단추의 구멍찾기 같은 것이야

단추를 채워보니 알겠다

단추도 잘못 채워지기 쉽다는 걸

옷 한 벌 입기도 힘들다는 걸

기타치며3.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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