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사흘,일주일…,그러다가21일용맹정진도전
캄캄한산길눈에불켠동물앞뒤동행“관세음보살”
밤이깊어지고세상이잠을자면묘향대는홀로깨어납니다.
“세상이잠을자는데나홀로깨어있구나!”
경허선사의말처럼수행자는이렇게홀로깨어나어둠을밝힙니다.호림스님과저는밤이깊어지자법당에함께누웠습니다.그런데잠결에밖으로부터목탁소리가들려왔습니다.새벽3시가된것입니다.어느새일어난스님이절을돌면서도량석을시작한것입니다.도량석은목탁을치고염불을하면서깊이잠든만물을깨우는의식입니다.
스님의예불은긴시간동안계속되었지만어느한순간도간절함을잊지않았습니다.수행의성패는‘간절切절’자한자에달려있다는어느선사의말이다시생각났습니다.
예불이끝난뒤묘향대뒤큰암벽아래서솟아나는샘가에오니앙징맞게생긴다람쥐한마리가스님이호박죽을끓이려고호박을쓰고그의몫으로남겨둔호박속을먹고있었습니다.사람이다가가자흘긋한번쳐다보고는다시금맛있는식사를계속했습니다.
겨울이되면묘향대는고립무원이됩니다.한번눈이쌓이면길과길아닌곳의구분은사라지고어디가어디인지분간할수도없을만큼온통하얀눈뿐입니다.그래서한발을잘못디디면천길낭떠러지로떨어지기일쑤여서이곳에함부로접근할수없습니다.스님은저다람쥐와벗해서한겨울을지나곤했을테지요.
안타까운세인들의마음을느꼈음인지호림스님이무심히툭한마디를던졌습니다.
“그걸짊어지고살아갈것같으면중노릇그만해야지!”
그런결기가없다면애초이런심산의독살이(혼자사는것)를결행할수없었을지모릅니다.호림스님은화엄사에서살던1978년묘향대의그스님에게쌀반가마씩을두번져날라준적이있다고했습니다.묘향대는대찰화엄사에소속된말사입니다.그때보았던그스님의처절한수행상을수십년간뇌리에간직해오다가호림스님도3년전여기에왔을것입니다.
나이50이되어한창때는지났음에도오히려지금은무거운짐을지고도아무리경사진길을오르면서도숨을가쁘게몰아쉬지않고태연하게대화를나누면서오를수있다니이정도면득력(수행으로힘을얻음)을했다고도볼수있는게아닐까싶습니다.
하긴묘향대는불가에서뿐아니라선가에서도가장존경을받는인물중의한분인개운조사가250년전수행했던곳이기도합니다.묘향대를그때개운조사가만들었다는얘기도있습니다.기(氣)수련을하는이들사이에선개운조사가아직도묘향대인근금강굴에생존해있다는소문이떠돌기도합니다.
각절에서보는능엄경주석서도대부분개운조사가저술한것입니다.능엄경은선가에서가장아끼는보물중의보물같은책으로서수행중일어나는온갖경계와장애를어떻게극복하고견성성불에이를수있는지상세하게서술해놓은책입니다.
호림스님도이곳에와서염불과주력(주문을욈)만했다고했지만그의책상엔능엄경이펼쳐져있었습니다.
호림스님은3년전이곳에와처음으로용맹정진을제대로해보았다고합니다.용맹정진이란한숨도잠을자지않고,등을방바닥에붙이지않고수행하는것입니다.그는묘향대에들어오기전엔졸려서단하루도용맹정진할수없었다고합니다.처음엔1박2일,다음엔2박3일.일주일….그렇게하다보니21일동안용맹정진을한번해보고싶었다고합니다.일반사찰가운데도해인사선방등은안거때마다7일씩용맹정진을하지요.또철산스님이선원장으로있는문경대승사에선안거때마다21일씩용맹정진을하기도하는데,21일간단한숨도자지않고정진하는것은인간의한계를뛰어넘는극한시험이아닐수없습니다.
더구나아무도감시하거나경책하는이없는이곳에서장기간잠을안자고수행하는것은보통일이아니었을것입니다.그는21일용맹정진에도전해21일은다하지못하고15일을했다고합니다.비록21일은채우지못했지만그때부터자신이생겨천수다라니(천수경주문)를외기시작했다고합니다.처음엔하루에108번을낭독하기도어렵더랍니다.그런속도로매일왼다면백만독을할려면10년이걸리겠더랍니다.그렇게10년을할작정으로했는데,차츰속도가붙더니백일만에만독을하고,그다음엔더욱속도가붙어서백일만에십만독을할수있었다고합니다.그후엔더욱더가속도가붙어서백일만에백만독을할수있었다고합니다.
선가에선참선외엔아무것도하지마라고하기도하지만,옛부터선사들도천수주력으로득력을한경우가많습니다.경허의맞제자로천진자비보살이었던수월선사도,용성선사도,숭산선사도천수주력을통해득력을했지요.수월선사는천수주력을통해세가지능력을얻었다고합니다.
어떤것을들어도잊지않는불망념지不忘念智와,손으로만지기만하면병자를낫게하는치유력과,수마를완전히극복해전혀잠을자지않고도살아갈수있는능력이었습니다.
호림스님도몇년전신비한체험을했다고합니다.2년전12월18일이은사스님의생신이어서구례쪽으로내려갔는데눈이많이내려눈이허리까지찼다고합니다.문수암에내려갔다가올라오는데갑자기눈이더많이내려가슴까지차더랍니다.그10분의1만눈이와도이런고지대에선길과길아닌곳이도저히분별이안돼나다닐수없는일이지요.다음해그보다훨씬적은20센티미터의눈만내렸는데도절밖으로한발짝도나설수없더랍니다.그런데당시엔그토록눈이많이싸였는데도길이훤하게보이더라는것입니다.수행에집중하면그런경계가보이기도합니다.
“그들이아니었으면너무캄캄해서묘향대에못올뻔했어요.그들이눈에서후레시를켜주어길이보여서잘왔지요.그들이내길안내자였어요.나무관세음보살!”
같은상황이라도그상황을어떻게맞느냐하는것은그상황을맞는마음가짐에있습니다.누군가는그동물을나를잡아먹으려는원수로지금까지도끔찍하게여길수있었을것이지만,호림스님은그동물에게큰은혜를입었다고했습니다.
“모든것은마음이드러난것에불과하지요.”
그는객관적인상황조차도마음의현현이라고했습니다.그럴지도모릅니다.제가히말라야오지를함께여행했던달라이라마의제자청전스님으로부터한침대에서자면서들은얘기가생각났습니다.그는20년전인도히말라야로떠나기전전국의산천을만행했는데,그때만난구례의한노인으로부터들은얘기를전해주었습니다.노인은피리를아주잘불었는데,어느날추운겨울술에취해반야봉에서피리를불고있었답니다.그는추위도잊은채술에취하고피리소리에스스로취해지리산이되었더랍니다.그냥그렇게피리를불다쓰러져동사할수도있었답니다.그런데어느순간주위에서따스한기운이느껴져눈을떠보니호랑이수십마리가주위에자신을에워싸주고있더랍니다.
그렇게놀라운체험을한노인은죽기전에다시한번그런체험을하고싶어서다시술을마시고반야봉에올랐다고합니다.그때는아무런욕망없이무욕으로피리를불던예전과는달리무언가강렬한욕망이꿈틀댄모양입니다.한참피리를불고있는데,등에서미끈한게느껴져눈을떠보니,이번엔호랑이가아니라수많은뱀들이자신을둘러싸고있더랍니다.마음에따라미물도호응하는것일까요.
똑같은피리를불더라도,똑같이사나운동물을만나더라도사람들의대응하는태도는다릅니다.자신을내려치는도끼에독을내뿜는것이아니라향기를내어주는향나무도있으니까요.
티베트의달라이라마도적이야말로,또나를고통스럽게하는사람이야말로진정으로나의자비심을깨워주는스승이라고했습니다.
아침이밝아오자지리산전체를조망하는바위위에올라갔습니다.번뇌와세사와잡사에비유되는구름이지리산의바다를이루고있었습니다.무심의하늘과대비해번뇌와망상,증오와애착으로비유되곤하던그구름이운해를이루고있었습니다.거기에선내마음이끌고다니던그모든것이진리였고,어머니였고,바다였습니다.
조현종교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