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의이름은정도전이『시경』에나오는“이미술에취하고이미덕에배부르니군자만년그대의큰복을도우리라”에서큰복을빈다는뜻의‘경복(景福)’이라는두글자를따서지은것이다.1412년태종은경복궁의연못을크게넓히고섬위에경회루를만들었다.이곳에서임금과신하가모여잔치를하거나외국에서오는사신들을대접하도록하였다.
태종의뒤를이은세종은주로경복궁에서지냈는데,경회루남측의궐내각사권역에집현전을짓고학자들을가까이하였다.또한경회루의남쪽에는시각을알려주는보루각을세웠으며,궁의서북모퉁이에는천문관측시설인간의대를마련해두었다.또한흠경각을짓고그안에시각과4계절을나타내는옥루기륜을설치하기도하였다.
경복궁은임진왜란(1592)으로인해창덕궁·창경궁과함께모두불에탄것을1867년에흥선대원군이다시세웠다.그러나1895년에궁궐안에서명성황후가시해되는사건이벌어지고,고종은러시아공관으로거처를옮기면서주인을잃은빈궁궐이되었다.1910년국권을잃게되자일본인들은건물을헐고,근정전앞에총독부청사를짓는등궁궐의대부분을훼손하면서궁궐의옛모습을모두잃게되었다.
일제강점기이후로궁궐안에남아있는주요건물은근정문·근정전·사정전·천추전·수정전·자경전·경회루·재수각·함화당·집경당·향원정·집옥재·협길당등이있다.
중국에서고대부터전해오던도성(都城)건물배치의기본형식을지킨궁궐로서,궁의왼쪽에는역대왕들과왕비의신위를모신종묘가있으며,오른쪽에는토지와곡식의신에게제사를지내는사직단이자리잡고있다.건물들의배치는국가의큰행사를치르거나왕이신하들의조례를받는근정전과왕이일반집무를보는사정전을비롯한정전과편전등이앞부분에있으며,뒷부분에는왕과왕비의거처인침전과휴식공간인후원이자리잡고있다.전조후침(前朝後寢)의격식인데,이러한형식은이궁이조선의법궁으로서특히엄격한규범을나타내고자했던것으로풀이된다.
비록궁궐안대부분의건물들이없어지기는하였지만,정전·누각등의주요건물들이남아있고처음지어진자리를지키고있어서,조선의법궁의모습을대체적으로나마확인할수있는중요한유적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