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여행( 평창 이승복 기념관을 찾아서) 4.(나는공산당이 싫어요)

http://blog.daum.net/sa78pong

강원도여행을하면서가장마음속으로가슴이아픈곳이다.

*나는공산상이싫어요*하면서어린나이에힘차게외치였던

이승복군의모습을다시한번되새기게하는이승복기념관을

들려본일이다.

이승복생가는등산을좋와하는나로서는몇번을가보았다.

계방산을산행을하면서운두령에서산행을시작해서하산길에

있기에들려보았지만은이번같이기념관을들려본것은처음인것

같다.

산행을끝내고서는버스로지나치기만하였기에이번기념관방문은

다시한번분단의아픔을새겨보는기회인것같다.

아마이승복근이생전에살았다면은본인보다3살정도아래인것같은데

요즈음자라나는아이들에게반공교육을알려주려면은휴가철에꼭한번

들려주면은좋을기념관인것같다.

全斗煥당시대통령의특명으로만들어진기념관이라그런지좋은자리에좋은시설이었다.탱크,자연학습장등볼거리도많다.

이승복군의生家를복원해놓았는데,세칸짜리귀틀집이다.다듬이,화로,이불,쌀독등家具도간단하고설피,짚신도보인다.

이승복군의집은지금기준으로거의원시생활을한셈이다.이집안은火田에서옥수수를키웠다.

李承福군은이기념관부지안에있었던속사국민학교계방분교에다니던1968년12월9일,그것도자신의생일밤,외딴집으로들어온무장공비들앞에서“나는공산당이싫어요”라고이야기했다가참살당하였다.

공비들은어머니,두동생도같이죽였다.공비가李군에게“남조선이좋으냐,북조선이좋으냐”고물은데대하여李군은평소배운대로대답하였던것이다.

다섯명의공비들은며칠뒤매복중이던공수부대원들에의하여전원사살당하였다.

기념관부지안엔지금은폐교된분교의교실이그대로남아있다.

특히李군의교실은1968년상태로복원되어있다.나는왼쪽줄앞에서두번째인이승복군의책상에앉았다.

李군이느꼈을溫氣가전해졌다.앞칠판왼쪽엔반공,오른쪽엔방첩이란글이적혀있었다.

작은풍금이교사용탁자옆에놓여있었다.李군은반공-방첩을일상적으로배웠다.

이校舍바깥에는까만기념비가서있다.이런글이새겨져있었다.

<반공의꽃승복군이꿈을키우던곳

땡땡땡땡…

운두령을감돌며메아리치는

저종소리속에는

정직과용맹

일깨워주는

승복군의또랑한

목소리가들어있다.

그가목숨을바쳐우리에게

일깨워준자유의소중함

“나는공산당이싫어요”

피맺힌외침을들을수있다>

한손에망치들고한손에총들고싸우면서일하고,일하면서싸우던시절에불렸던‘반공소년이승복의노래’가있다.

<원수의총칼앞에피를흘리며

마지막주고간말“공산당은싫어요”

구름도망설이는운두령고개

새무덤오솔길을산새가운다.

어린넋잠든곳에

겨레가운다

엎드려절한마음눈물이솟아

바람도길멈추고어루만져서

하늘이성이났다.오랑캐들아!>

1968년1월21일,김일성이박정희대통령을죽이기위하여특공대를보내청와대습격사건을벌였다.

그열달뒤울진삼척지구에중대규모의무장공비들이상륙,눈덮인동해안과태백산맥일대에선소탕전이벌어졌다.

당시동해안레이다기지에서공군졸병으로근무하던趙甲濟상병은작전기지상공의밤을대낮처럼밝히는조명탄이잇따라터지고,1.21사태때생포되었던김신조가비행기에서마이크로“귀순하라”고방송하는것을구경하면서겨울을보냈다.

李承福소년이“나는공산당이싫어요”라고말했다는조선일보기사를,반공분위기를조작하기위한誤報였다고주장하는세력이본격적으로활동하기시작한것은김대중정부첫해였다.

내가편집장으로근무중이던월간조선1998년10,11월호는이주장을검증,(이동욱기자의심층취재로)“나는공산당이싫어요”란말은분명히있었음을確定하였다.

참살의현장에서기적적으로생존한이승복군의형이학관씨,그날이학관씨로부터“동생이나는공산당이싫어요라고하는바람에변고가생겼다”는취지의말을전해들은주민의증언이확보되었다.

조선일보오보주장자는조선일보에의하여고소당하여有罪를확정선고받았다.

기념관곳곳에月刊朝鮮이진열되어있었다.

<朝鮮日報는1998년에30년전의기사로느닷없이誤報논쟁에휘말렸다.

1968년12월9일『나는공산당이싫어요』라고말했다가무장공비들에게살해된李承福(이승복)사건이조선일보의작문이라는주장이제기됐던것이다.

「언론개혁시민연대(언개련)」는「朝鮮日報의당시기사는작문」이라며전국을돌며오보전시회를개최했다.

언개련의주장을「월간말」誌와「미디어오늘」,MBCTV가받아서보도하면서사람들은李承福사건은조작이라고믿게되었다.

月刊朝鮮은李東昱기자에게『誤報라면어떻게誤報하게됐는지를밝히는것도言論의사명』이라면서취재지시를내렸다.

李東昱기자는李承福의형李學官(이학관)씨,당시취재를했던조선일보사회부姜仁遠(강인원)기자등을취재한결과李承福소년의절규는진실이라는결론을내렸다.

1998년月刊朝鮮10월호와11월호에이기사가나간후金周彦前언론개혁시민연대사무총장(한국언론재단연구이사)과金鍾培前미디어오늘편집장(시사평론가)은조선일보에대한명예훼손등의혐의로기소됐다.

6년후인2004년10월28일,서울중앙지법형사항소9부(부장판사강형주)는판결문에서『李承福군이「나는공산당이싫어요」라고말했다는보도는사실에기초한것으로판단된다』고밝혔다.

이로써「李承福사건」은「역사적실제사실」로확인되었고,「李承福사건조작」이란주장은허위로판명됐다.金周彦씨에게는징역6월에집행유예2년을,金鍾培씨에게는무죄를선고했다.

李東昱기자는아직도李承福기사를오보로아는사람이많다고개탄했다.

『법원에의해판결이났음에도불구하고지금도인터넷사이트에서「李承福사건」을입력하면수많은說과소문들이버젓이깔려있습니다.소년의정직함을정직하지못한어른들이모욕하고왜곡했습니다.

이사건을취재하면서역사는정의로운사람들의몫이아니라부지런한자들의몫이라는생각이들었습니다.惡소문을부지런히퍼뜨리는사람을막지못하면,정의는실종될것입니다』>(이근미,‘월간조선특종사’에서)

‘이승복동상철거하고,교과서에서빼고…17년간활개친狂氣들’이란제목의조선일보기사가기념관입구쪽게시판에붙어있었다.

공비는“나는공산당이싫어요”라고부르짖었던이승복소년의입을칼로찢었다.

아기인동생은달랑들어올려벽에다가쳐죽였다.같이살던할머니와아버지는다른마을에나가있다가변을면하였다.

李군의아버지는정신분렬증치료를받고있다.

할머니도충격으로정신병을일으켜1980년에죽었다.

좌파정권하에서이기념관도고생을많이하였다.

정부나교육당국자까지도남북화해시대에맞지않는반공시대의遺物이라고푸대접하였다.

찾아오는사람도3분의1로줄었다가올해부터다시많아진다고한다.

올해는이기념관에서강릉경포대해수욕장에이승복코너를만들어두달동안홍보도하였다.

기념관에붙은이승복글짓기대회의입상작도세월의변화를보여준다.

‘국민학교’시절의입상작은반공과자유를다루고,‘초등학교’시절의입상작은김대중,노무현연설문과비슷하다.

부산동래초등학교4학년유윤희학생의‘자유의씨알’은이렇다.

<나는공산당이싫어요

그목소리가

민들레꽃으로피었고

씨알이영글어

하나둘날아갔네

승복이가남기고간

자유의씨알

독일장벽무너뜨리듯

통일의싹되어

북녘땅에도돋아나라>

이날초등학생들을데리고구경온부모가많았다.한40대아주머니는두아이들에게큰소리로설명하였다.

“이승복이란훌륭한어린이가공산당이싫어요라고말하니까,나쁜놈들이쳐죽였단다.공산당은나쁜놈이다,알지?”

어린이들만온경우도있었다.“반공?”하면서비웃으며지나가는소년도있었다.한아버지가아들에게일러준다.

“우리때는말이야,교과서에도소개되었단다.너희들은안배우지?”

열살쯤되는소년이되물었다.

“그런데아빠,공산당이뭐예요?”

그순간,서울에선이런소년들로하여금공산당을모르도록하는세상을만드는데생애를바쳤던김대중전대통령의屍身이온갖찬사속에서공산당때문에죽은수많은장병들과애국자들이묻힌국립현충원으로향하고있었다.

*****조갑재님의블러그에서스크랩해왔읍니다******

■승용차로오시는길

○영동고속도로원주-강릉구간의속사나들목에서홍천인제방향:31번국도5.5㎞지점에서찾아오시기도쉽습니다.

※속사나들목에서5-7분거리

○우편번호:232-936

○주소:강원도평창군용평면운두령로500-11

사무실033-332-4323,안내실033-332-9351,

FAX/033-334-2996

홈피주소:http://leesb-memoria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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