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blog.daum.net/sa78pong
수원화성.
수원화성
2013년2월3일수원화성을돌아보다.
아침부터하늘이짙게흐린것이오후늦게중부지방과수도권에눈이많이
내린다는일기예보가있는것이다.오늘은출사를나가지않으려다가그냥집에
잇기에는답답하기만한것같다.
부지런이카메라를챙겨들고전부터한번가보려하였던수원화성으로차를
몰고이동을한다.
생각보다는고속도로가수월하게이동하여서수원화성주차장에도착을한다.
날씨는금방이라도눈이내릴것같아서어둡고해서서둘러서화성성곽을돌아
보는데날씨도흐리고해서카메라에성곽풍경을담아도썩그리마음에들지가
않는다.너무어둡고선명하지가않으니말이다.
성곽둘레가6킬로가못되니슬슬여유를부리면서걸어도2시간이채못걸리는
것같다.오후에눈이온다고하니서둘러돌아보고화성행궁으로발길을
돌려본다.
조선시대의성.조선22대임금정조가아버지사도세자에대한효심과왕권강화를위한수도이전을목적으로쌓은성이다.
실학자정약용과유형원이설계를하고,좌의정채제공의주관아래,화성유수조심태등이공사를진행하여성을쌓은후,화성행궁,중포사,내포사,사직단등의건물을지었다.성곽을석재와벽돌을섞어쌓은점,거중기와녹로등새로운기기를사용한점,화살과창검,총포등을방어하는근대적성곽구조를갖추고있는점등에서과학적이고독창적인당대최고의건축물로평가받고있는동시에우리나라성곽건축의백미로꼽힌다.
“송충이도씹어먹은정조의효심”
정조는화성으로아버지의묘를옮긴후그전보다더욱자주찾아가인사를드리곤했다고한다.그러던어느날융건릉을찾은정조는깜짝놀라고말았다.묘주변소나무들이송충이때문에다죽어가고있었던것이다.정조는“어허,이럴수가.내땅에사는송충이가어찌임금의아버지앞에있는소나무잎을갉아먹는단말이냐.내아버지가비명에가신것도가슴아픈데너희들까지이리괴롭혀서야되겠느냐.차라리내오장육부를갉아먹어라”라고한탄하며,송충이한마리를잡아입안에넣고깨물어먹어버렸다.그일이있은후,어디선가새들이날아와서송충이를다잡아먹어,소나무에는송충이가한마리도남지않았다는일화가전해진다.
상세설명
화성은서쪽으로는팔달산을끼고동쪽으로는낮은구릉의평지를따라쌓은평산성이다.정조는그의아버지장헌세자에대한효심에서화성으로수도를옮길계획을세우고,정조18년(1794)에성을쌓기시작하여2년뒤인1796년에완성하였다.실학자인유형원과정약용이성을설계하고,거중기등의신기재를이용하여과학적이고실용적으로쌓았다.성벽은서쪽의팔달산정상에서길게이어져내려와산세를살려가며쌓았는데크게타원을그리면서도시중심부를감싸는형태를띠고있다.성안의부속시설물로는화성행궁,중포사,내포사,사직단들이있었으나,현재에는행궁의일부인낙남헌만남아있다.특히다른성곽에서찾아볼수없는창룡문·장안문·화서문·팔달문의4대문을비롯한각종방어시설들과돌과벽돌을섞어서쌓은점이화성의특징이라하겠다.화성은쌓은후약200여년이흐르는동안성곽과시설물이무너지기도하고특히한국전쟁을겪으면서파손되었는데,1975년부터보수,복원하여현재에이르고있다.효심에서근본이되어당파정치근절과왕도정치의실현그리고국방의요새로활용하기위해쌓은화성은과학적이고합리적이며실용적인구조를갖고있어,1997년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으로등재되었다.
※(화성→수원화성)으로명칭변경되었습니다.(2011.07.28고시)
(네이버지식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