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 여행( 강원도 강릉 등명 낙가사)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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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3월30일정동진통일공원함정전시관을들려보고인근에위치한

등명낙가사를들려보았다.

강릉해안의괘방산아래에서동해안을바라보고자리잡은절등명나가사는

일출을볼수가있는유서깊은절이다.

등명낙가사에서북쪽으로500여미터거리에있는대포동은96년도에북한무장

공비들이잠수함으로침투를하였던곳으로알려졌다.

이사건을계기로괘방산아래에다안보체험등산로를개설하게되여서이산이

유명하게되었다고한다.

등명낙가사의일주문앞주차장은차를몇백대를주차를할수있을정도로무척이나

크게조성되었다.

등명낙가사의절의유래는유서깊고연륜이오래된절이다.

그러나세월흘러서그런지절의대웅전과누각들이오래된모습은보이지않고최근에

건축된절의모습으로보인다.

아마엣건물은오랜세월에소실이되여서새로이건축이된모습이다.

절을새로히중창을한것이60여년전이되었는것같다.

그래서그런지낙가사의분위기는아주오래된고찰의분위기가

감소된분위기가도는것같다.

절앞마당의홍매화나무가오래된절의분위기를살리는것같다.

하긴절도모진세월의풍파에견디여낼수는없었을것같다.

그래도강원도주요관광명소에자리잡은절인만큼오랫동안

불자들과관광객들이찿는절이되었으면한다.

등명낙가사일주문을뒤로하고오른쪽에위치한약수터는철분성분이

매우많은약수터인것같다.

갈증이나서바가지로마시었더니텁텁한느낌이드는것이많이마시면은

않좋을것같다.

아마이절을가시는분들은약수물을너무많이드시지말았으면한다.

그래서약수터에는경고문도적어놓은것같다.

한불교조계종제4교구본사인월정사(寺)의말사이다.일명‘등명낙가사’라고도한다.신라선덕여왕때자장(藏)이창건하여수다사(寺)라하였다.

자장이이절에머무를때,꿈속에서중국오대산의북대(臺)에서보았던스님이나타나말하기를“내일저큰소나무밑에서꼭만나자.”고하여이튿날그자리에갔더니그곳에서문수보살(薩)을친견할수있었다고한다.

신라말기의병화(火)로소실된뒤고려초기에중창하여등명사(寺)라하였다.《신증동국여지승람》에의하면강릉부동쪽30리에이절이있었다고하는데,등명사라한것은풍수지리에입각하여볼때이절이강릉도호부내에서는암실(室)의등화(火)와같은위치에있고,이곳에서공부하는수학도(徒)가3경(更)에등산하여불을밝히고기도하면급제가빠르다고한데서연유한다는전설이전한다.

현재절근처에는고려성지(址)가있다.이성은고려시대에등명사의중요한물품들을보관하기위해서창고를짓고성을쌓았다는사방1㎞의석성이다.이로보아당시의사찰규모를짐작할수있다.그러나조선중기에등명사는폐허가되었다.

당시의왕이안질(疾)이심해서점술가에게물어보니동해정동(東)큰절에서씻은쌀물이동해로흘러들어가서용왕이노했기때문이라하였다.왕의특사가원산(山)을거쳐배편으로동해정동에와서보니점술가의말이맞아등명사를폐사로만들었다고한다.

그뒤1956년경덕(德)이옛터에절을중창하고낙가사라개칭하였으며,1997년영산전을지었다.1982년에는청우(宇)가극락전·약사전·삼성각·범종각·요사를건립하여오늘에이른다.

현존하는당우로는대웅전·극락전·오백나한전(殿,일명殿)·요사채등이있다.오백나한전안에안치된오백나한상은인간문화재유근형(瀅)이5년에걸쳐만들어서1977년10월에모신것이다.500구가각기다른모습을취하고있는이나한상은다른곳에서는예를찾아보기힘든독특한청자불상이다.

또한,이절에는강원도유형문화재제37호인등명사지오층석탑이있다.창건과함께선덕여왕때세워진것으로전해지는이탑은은은한무늬로조각된지대석위에축조되었는데,옥개석의귀퉁이가조금씩파손되었고기단석은연꽃무늬로수놓여있다.특히2층기단부에는돌자물쇠를채워놓았던관계로탑안의보물이도굴되지않은채보존되어왔다.

원래는이와같은탑이3개였는데,하나는함포사격으로파괴되어그잔해만이바닷가에남아있고,또하나는수중탑(塔)이었으나언제부터인지행방이묘연하다고한다.

현재이절에서는매년음력10월15일부터백일축수도량을개설하고있으며,오백나한전밑에는등명약수(水)가있어많은사람들이찾고있다.

[네이버지식백과]낙가사[洛伽寺](

등명낙가사를들려본지도벌써10여일이넘은것같다.

아마지금쯤은봄꽃들이활짝피었을것같다.

경내에있는홍매화의아름다운모습을지금쯤가면은

활짝핀모습을카메라에담을수가있을것같다.

좀아쉽기만하다.

북한산78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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