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여행 이틀째 호이안 핵심투어 (내원교.관운장사당) 고대도시를 들려보고 오후에는
투본강에서 통통배를 타고서 강건너 도자기 마을을 가기로 한다.
도자기 마을은 배를 타고서 30여분을 가면은 도자기 마을에 도착을 한다.
이곳을 들려보면은 베트남 사람들의 도자기를 만드는것에 대한 자부심과
장인 정신을 느끼게 하는것 같다.
도자기 마을은 호이안에서 관광상품으로 판매되는데 이곳 도자기 마을에서 만들어서
관광객들에게 시연을 보이고 직접 만들어보라고 하기도 한다.
베트남 사람들은 열대지방이라고 해도 핸드메이커 (손으로 만드는것) 손으로
만드는것에 능하다는것을 알수가 있다.
호이안여행을 하면은 꼭 빼먹지말고 한번 들려볼곳이 도자기마을 이라고
말할수가 있다.
중세 해상실크로드의 문헌적 전거로서의 표류기. 1687년 제주도 아전과 백성 24명이 배로 추자도(楸子島) 부근에서
표류하다가 안남국(安南國, 현 베트남) 회안(會安, 호이안(Hoi An))군 명덕부(明德府)에 표착하였다.
베트남 중부 지역에 자리한 호이안은 중세(17~18세기) 당시 이 나라 최대의 국제무역항이었다.
일행은 부근의 무인도에 약 1년반 동안 유폐되어 생활하다가 안남 측의 협조하에 마련된 중국 배편으로
1688년 8월 7일 호이안을 떠나 중국 닝보(寧波)를 거쳐 12월 16일 제주도 대정현(大靜縣)에 돌아왔다.
일행 중 살아남은 고상영이 역관(譯官) 이제담(李齊聃)에게 표류 전말을 구술해 기록으로 남겼다
그 기록을 정동유(鄭東愈, 1744~1808)가 자신의 문집 『주영편(晝永編)』(1805)에 수록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표류기에는 호이안과 그 주변 지역에 관한 귀중한 기록이 담겨 있다.
땅이 기름지고, 누에는 1년에 5번이나 치며, 벼는 3모작을 한다는 등 이곳의 풍요로움을 소개할 뿐만 아니라
집채만 한 코끼리를 비롯하여 물소 · 원숭이 · 공작새 · 파초(바나나) · 빈랑(檳榔) · 야자 등 신기한 동식물과
풍물을 생동감 있게 기술하고 있다.
이에 앞서 호이안에 처음으로 간 한국인은 조완벽(趙完璧)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는 진주(晋州)의 사인(士人) 출신으로 정유재란(丁酉再亂, 1597) 때 약관의 나이에 왜군에
사로잡혀 일본 교토로 끌려갔다. 문자를 아는데다 성실하기도 하여 국제무역에 종사하는
어떤 일본인에게 고용되어, 1604년부터 매해 3번 이상 교역차 3만 7천리나
떨어진 안남에 행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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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다낭 여행 사진은 다음편으로 이여 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