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낙안읍성을 다녀 왓습니다.
600여년의 역사와 문화가 잘보존이 되어있는곳으로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지방 계획도시로 한국의 3대읍성 중의 하나로 사적 302호로 지정이 되여
잇는곳입니다.
실제 성내에는 120여세대가 실제로 거주하는 국내유일한곳이며 연간 120만명
의 관광객이 방문을 하는 주요관광지 입니다.
600년의 역사와 문화를 잘 보존하고 있으며 대한민국에서는 유일하게 읍성과
민속마을이 함께 조성된 관광지로 수학여행, 현장학습 방문지로 교육적 측면에서도
가치가 높다. UNESCO 세계문화유산 잠정 목록으로 등재되고 미국CNN에서
대한민국 대표 관광지 순위 16위로 선정된 역사유적지이며,
대장금, 동이, 상도, 감격시대 등 TV 드라마와 디워, 태극기 휘날리며 등
영화 촬영지로 유명하다.
고려 후기부터 왜구가 자주 침입하자 1397년(태조 6)에 낙안 출신의 절제사(節制使)인 김빈길(金贇吉)이 흙으로 성곽을 쌓았다.
『세종실록』에는 1424년(세종 6) 9월부터 성벽을 돌로 고쳐 쌓으면서 원래의 규모보다 넓혔다고 기록되어 있다.
석축으로 고쳐 쌓는 작업은 1450년 경에 거의 마무리되었는데, 당시 성벽의 둘레는 2,865척이고, 높이는 평지에서 9.5척이지만,
높은 곳은 8.5척이었으며, 성벽 위에 낮게 쌓은 여장(女墻)이 420개로 높이가 2.5척이었다고 한다.
또한 성문은 3곳이었는데 옹성을 두지 않았고, 옹성과 성문을 지키기 위해서 성문 옆에 쌓은 네모난 적대(敵臺)는 12개를 만들기로
하였지만 4개만 설치하였다고 전한다. 성 안에는 우물 2곳과 연못 2곳이 있었으며, 성 밖에 성벽을 둘러 판 해자(垓子)는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옹성은 그 뒤에 설치되었고, 여장도 무너진 것을 다시 고쳐 쌓았지만 지금은 모두 무너져 없어진 상태이다.
현재 남아 있는 읍성의 모습은 성벽의 축조나 적대의 존재 등에서 조선 초기 성곽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 준다
.
읍성은 낮은 구릉을 포함한 평지에 동서 방향의 긴 장방형으로 자리하고 있다. 동문은 악풍루(樂豐樓), 남문은 쌍청루(雙淸樓, 鎭南樓),
서문은 악추문(樂秋門) 등으로 불렸는데 터만 남아 있을 뿐이고, 옹성은 남문터와 서문터에서만 흔적을 볼 수 있다.
적대는 전하는 기록대로 동문터 좌우와 동북쪽·동남쪽 모서리에 각각 하나씩 있다.
성벽의 둘레는 1.385㎞이다. 동문터의 남쪽 부분이 가장 잘 남았는데, 높이는 4.2m이고, 위쪽 너비와 아래쪽 너비는 각각 3∼4m, 7∼8m이다.
아래쪽에 커다란 깬돌을 이용하여 쌓아 올리면서 틈마다 작은 돌을 쐐기박음하였으며, 위쪽으로 갈수록 석재의 크기를 줄였다.
이 읍성은 가장 완전한 모습으로 보존된 조선시대 읍성 가운데 한 곳이다. 특히 성 안의 마을은 전통적인 면모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1984년부터 낙안읍성민속마을보존정비계획이 수립되어 보존을 위한 정비사업이 연차 사업으로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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