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 화순 영백정..

IMG_0004화순 영백정을 무박으로 출사를 간다고 해서 참여해서 다녀왔다.
이른새벽 칠흑같은 어둠속에서 손전등에 여럿이 의지하면서
철길을 무단행단을 하고 언덕을넘어서 영백정이 아스라이 보이는
산기슭에 멈춘다.

다들 먼거리를 온진사님들이기에 무언에 포인트를 찾는 눈길이
어둠속에서도 빛나고 있는것이다.

이 어둠속에서 철길다리 건너편 정자와철길을 반영을 삼아서
열차가 다니는시각에 반영을 담는다는것이다.

암튼 우여곡절 끝에 날은서서히 밝아오고 화순 영백정으로
출사를 내려와서 밤새 꼬박 새워 사진 몇컷얻으려고 두눈 부릅
뜨고 찰칵-찰칵- 카메라 앞에선 모두가 먹이를 찾는 하이나
같은것 같다.

슬슬 밝아지는 어스름속에서 찰칵-찰칵 남의 시선을 접어두고
숨소리마저 참는 고통을 참아오다가 그렇게 서서히 날이 밝아오니
서로의 얼굴들을 확인하고 열차가 지나가니 전쟁에서 기관총으로
연속발사 하듯이 순식간에 지나가는

 

열차를 담느냐고 정신이
없는것이다.

며칠전에 남도 출사에 들린 화순 영백루 에서 제대로 건진사진
한장 없지많은 블로그 이웃에게 공개 하여 드립니다.

경전선의  화순 영백정을 배경으로 삼아서 열차가 지나가는 모습을 순간적으로

담는 다는것이 어려운일이였다. 열차가 정확히 지나가는 시간을 모르는 상태에서

순식간에 담는다는것이 ..

1984년 2월 29일 전라남도문화재자료 제67호로 지정되었다

. 영벽정이라는 이름은 계절에 따라 변하는 연주산(聯珠山)의 경치가 맑은 지석강물에 투영되어

 운치 있게 바라볼 수 있다 하여 붙여진 것이다. 정자는 능주팔경의 하나로 연주산 밑 지석강의

상류 영벽강변(映碧江邊)에 있다.

건립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양팽손(梁彭孫) 등이 쓴 제영, 《신증동국여지승람》, 김종직(金宗直)의 시

등으로 볼 때 16세기 후반에 건립된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능주목(군), 즉 관청이 주도하여 건립한 것으로 추정된다.

1632년(인조 10) 목사 정윤이 아전들의 휴식처로 개수하였으며, 1872년(고종 9)에 화재로 소실되었는데

 이듬해 목사 한치조(韓致肇)가 중건하였다.
이후 보수를 거듭해오다가 1982년, 1983년에 각각 보수하였으며 1988년에 해체, 복원하였다.

건물은 2층 팔작지붕에 한식 골기와를 얹었으며 정면 3칸, 측면 2칸의 누각형이다.
기단 위에 주춧돌을 놓고 두리기둥으로 누각 아래 기둥을 세웠다.
기둥은 원래 목조였으나 l988년 해체 복원시 영구성을 위해 석조로 대체하였다.
기둥 위에 마루를 깔아 중층 누각형 정자를 만들었다.

마루 둘레는 계자난간으로 장식하였고, 처마 밑에 활주를 세웠다.
누각 위의 기둥머리에는 익공형식 공포를 하였고, 천장은 연등천장인데
가운데 부분만 우물천장이다. 지붕은 3겹으로 처리한 점이 특이하다.
정자 안에는 9개의 현판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영벽정 [映碧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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