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을 어찌 잊으리

15, 고향을 어찌 잊으리

姜 中 九
‘낮은 능선 위로 하늘은 활짝 트이고, 그 밑에 바다가 숨어 있는지 일대는 온통 바닷물의 반사로 눈이 부셨다. 길은 화산재 때문인지 바랜 것처럼 하얗고, 나무란 나무는 일부러 그린 것처럼 엷은 연녹색을 띠고 있다. 틀림없는 조선의 산하였다….’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郞)가 소설 『고향을 어찌 잊으리』에서 미야마(美山) 마을을 묘사한 대목이다. 야트막한 산으로 둘러싸인 미야마는 아늑한 느낌을 주는 작은 마을이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쓰마야키(薩摩燒)의 본 고장이다.

가고시마에 있는 미야마는 정유재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 도공들이 정착한 마을이니 역사가 400년도 넘는다. 1597년 전라도 남원 전투에서 승리한 사쓰마 영주 시마쓰 요시히로(島津義弘)는 조선 도공들을 붙잡아 배에 태우고 일본으로 가다가 풍랑을 만나 많은 사람이 죽고 박의평, 심당길 등 살아남은 43명이 탄 배가 도착한 곳은 시마비라(島平) 해변이었다.

그들은 생업인 백자를 구울 흙을 찾아 나섰지만, 화산재로 뒤덮인 규슈에서 백토를 구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 사쓰마한(薩摩藩)에 구원을 청하고자 남부여대하고 길을 나섰다가 고향을 닮은 나에시로가와(苗代川)가 마음에 들어서 정착하게 되었다.

나에시로가와에 정착한 도공들은 한복을 입고 단군신을 모시면서 살았으나 메이지유신을 단행한 일본은 단군신을 못 모시게 하고 마을 이름마저 미야마로 바꿔버렸다.

미야마는 야트막한 산 아래 펼쳐진 논밭과 집들이 우리나라 여느 시골 마을을 연상케 했다. 마을 뒤 푸른 숲은 마을의 분위기를 차분하게 하고 만나는 마을 사람들도 상냥하고 인정이 있었다.

미야마 주민 200여 세대의 절반은 조선 도공들의 후손으로 조상들의 가업을 계승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사쓰마야키를 대표하는 도요는 심수관요(沈壽官窯)이다.

심수관요는 정유재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심당길이 만든 도요로 자손들이 대대로 이어왔는데 12대 심수관은 뛰어난 도공으로 1873년 오스트리아 세계도자기전시회와 1876년 파리 만국박람회에 출품하여 큰 호평을 받자 그때부터 심수관의 이름을 대를 이어 사용하기 시작했다. 13대 심수관도 도쿄법대를 나와 총리 비서까지 지낸 수재였는데도 가업을 이었고, 지금은 15대 심수관이 가업을 계승하고 있다.

“그릇을 굽다가도, 꿈을 꾸다가도 불현듯 떠오르는 게 고향이더이다….”

조선 도공들이 일본 땅에 표류한 지 어언 400여 년. 그들은 대를 이어 조선옷을 입고 조선말을 쓰며 조선풍속을 지키면서 조선을 그리워하던, 미야마 도공들의 못다 부른 망향가이다.

14대 심수관은 일본의 유명작가 시바 료타로의 소설 『고향을 어찌 잊으리』의 실제 주인공이다. 시바 료타로는 당시 외무대신인 도고 시게노리(東鄕茂德:조선 도공 박평의의 13대 후손 朴茂德)를 취재하려 그의 고향인 미야마에 왔다가 조선 도공 후손들의 애환을 듣게 되었다.

그러자 시바 료타로는 이 마을에 사는 도자기 명인인 심수관과 인터뷰를 하게 되었고 심수관의 사연을 들은 그는 정유재란 때 끌려온 조선 도공들의 비애를 그린 『고향을 어찌 잊으리』라는 소설을 쓰게 되었다.

심수관요는 미야마 간선도로변에 있었다. 대문에는 제주도 돌하르방이 서서 한국에서 온 길손을 반갑게 맞는다. 조상 대대로 사용하던 유품과 도자기를 전시해 놓은 수장고에는 작품들이 하나같이 훌륭해서 탄성이 절로 나왔다. 거기에는 자녀들을 가르치던 한글로 된 교본도 있었으니, 붓글씨로 쓴 책을 보고 있노라니 이국땅에 끌려와 살면서도 자손에게 우리말을 가르치던 조상들의 의지를 보는 듯해서 눈시울이 뜨거워왔다.

‘어제는 동산에 있었고, 오늘은 자리에 있지 않으며, 내일은 다른 곳에 간다.(昨日在苑 本日不在 明日他出)’

심당길의 15대손인 심수관의 책상 뒤에는 그의 좌우명이 쓰여 있었다. 그의 좌우명은 400여년의 세월을 타국에서 유랑하고 있는 자신의 심정을 그린 것인가, 그것을 바라보는 길손의 마음은 스산하기만 하다. 고향을 어찌 잊으리.

2 Comments

  1. 구자훈

    2016년 4월 19일 at 9:40 오전

    예전 블로그 문학과 여행의 많은 게시물이 휴지통에 들어가 있습디다. 복구하시지요.

  2. 구자훈

    2016년 4월 19일 at 9:41 오전

    옛 블로그의 많은 게시물들이 휴지통에 들가 있습니다. 복구하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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