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땅의 천주교 전래(傳來)

1

3

조선 땅의 천주교 전래(傳來)

조선 땅- 한반도- 에 천주교(天主敎)가 전래된 시기나 과정에 대한 것으로…
사적(史的)으로 확인 되었거나 정확하게 증명된 것은 없다.

단지, 몇 가지의 설(說)이나 추측성의 주장들이 있는데 대략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 임진왜란(1592-98) 때에, 왜군(倭軍)을 따라온
그레고리오 세스페데스 (Gregorio Cespedes)에 의하여, 1593년에 전파 되었다는 설.

• 지봉유설 (芝峰類說, 이수광 著, 1614 -광해군 6년)이라는 책-
일종의 잡사(雜事)사전- 백과사전(百科事典)的인 내용을 적어 놓은 것- 속에
“이탈리아 출신의 예수회 소속 선교사 마테오 리치가
중국으로 들어와 천주실의를 소개 하였다.” 라는 구절이 적혀 있기에,
그 지봉유설로 인하여, 조선 땅에 처음으로 천주교가 전래 되었다!고, 보는 설.
[하지만, 비록, 그 책 속에 그런 구절이 들어 있고,
또한 그 구절이 조선(朝鮮)이 갖고 있는
최초의 ‘천주교 관련 내용’ 이라는 평가(評價)를 받고 있다!고 할지라도…
芝峰類說 로 인하여- 바로 그 구절로 인하여-
조선 땅에 천주교가 들어 온 것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언어적인 내용의 事典 속에 등장하는 것과
실제로 그 종교가 傳來나 傳播가 되는 것은 차원이 전혀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와같은 사전적인 소개와 실제로 전래된 사실과의 관련여부는
따로 확실하게 규명 되어져야만 되는 것이다.]

• 1631년, 정두원이 명나라에서 서양 문물과 함께 천주교 서적을 가져왔다는 설.

• 병자호란 때에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갔던 소현세자(昭顯世子)가
1644년 11월에 석방이 되었고, 3개월 후인 1645년에, 조선 땅으로 돌아 오면서
천주교 서적과 지구의(地球儀) 등을 가져와서 전래 되었다는 설(說).
(이것에 대해서는, 자세한 설명을 별도로 첨부해 놓겠다.)

• 조선 사신들이 중국에 가게되면, 그 때, 서양 선교사들에게서 받은 선물 중에,
과학서적 외에 천주실의(마테오 리치가 1603년에 북경에서 발행한 천주교 서적)가 있었는데,
그것들을 통하여, 서학(西學)이라는 것을,
조선사람들 스스로 탐구하면서 시작 되었다는 설.

• 조선 땅에서, 천주교가 시작된 정확한 년도는 1784년이라는 설(說).
[그 이유는, 조선 천주교 신앙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이벽(李蘗)인데,
그는 1783년(정조 8년)에 북경에 갈 기회가 생긴 이승훈(李承薰)에게,
십자가등 천주교 상징물과 천주교 서적등을 가져와 달라!고 부탁하여,
이승훈이 1784년에 북경에서 그라몽(Jean de Grammont, 梁棟材) 신부에게서 세례를 받고,
조선에 돌아오면서 십자가상, 교리서, 묵주, 천주교 서적들을 가지고 왔다.
그리고, 그가 이벽, 정약전, 정약용 등에게 대세(代洗)를 주었으며,
이들을 중심으로 천주교의 포교활동이 이루어졌다.
그리하여, 소위 ‘신부(神父)없는 전례- 천주교 사제(司祭)가 없는 상태에서의 천주교회’가
시작된 것이다! 라는 설(說)]

———————————————————-

사족(蛇足)

이 기회에, 참고 삼아서,
최초의 조선인 신부(神父)에 대한 것을 언급하면 다음과 같다.

1836년 1월 12일에, 파리 외방선교회 소속인
피에르 모방 神父 (Pierre Maubant)가 조선 땅에 들어오게 되었고,
이어서, 1836년 4월에, 파리 외방선교회 소속
로랑 조제프 마리 앵베르 주교(主敎)(Laurent-Joseph-Marius Imbert)가
조선 교구장으로 입국 하였는데…

‘조선인 성직자가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모방 神父의 추천으로,
김대건, 최양업. 최방제를 마카오 신학교로 보내서 교육을 받도록 하였다.
1836년 12월에 출발하여, 1837년 6월 7일에 마카오에 도착하여,
마카오 신학교에서 교육을 받던 중,
최방제는 그해 11월 27일에 마카오에서 사망을 하게 되었으니,
그 때, 그의 나이 16세? 17세? 였다.
최방제(1820?-1837)는 함께 간 최양업과는 사촌지간이었다.

김대건 神父(1821-1846, 안드레아)-
1844년에 부제(副祭) 서품, 1845년 사제(司祭) 서품- 조선인 최초의 천주교 神父,
1846년 6월 15일에 체포되어, 그해 9월 16일에 서을 새남터에서 처형 당함.
(순교로 인하여, 103위 시성자 명단에 올려짐.)

최양업 神父(1821-1861, 토마스)-
1844년에 부제(副祭) 서품, 1849년에 사제(司祭) 서품,
1861년 6월 15일 문경에서 40세에 병사(病死)함.
(病死로 인하여, 103위 諡聖者 명단에 오르지 못함.)

피에르 모방 神父 (Pierre Maubant, 1803-1839)
한국명: 羅伯多祿(나백다록)- ‘羅+베드로’ 에서 따온 것임.
1839년 9월 21일 서울 새남터에서 처형 당함. (103위 시성자 명단에 올려짐)

로랑 조제프 마리 앵베르 주교(主敎)(Laurent-Joseph-Marius Imbert, 1796-1839,
한국명: 范世亨(범세형),
1839년 9월 21일 서울 새남터에서 처형 당함. (103위 시성자 명단에 올려짐)

~ Sang Bong Lee, Ph. D,
Dr. Lee’s Closing Arguments,
Dr. Lee’s Lessons: Discovering Your Nature,
Dr. Lee’s Iconoclasm.
* All rights reserved and copyrighted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