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지긋 지긋한 훈시용(訓示用) 언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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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지긋 지긋한 훈시용(訓示用) 언어들

~ 이상봉 / 철학박사, 미국시인협회 회원

소위 계명(誡命)이네 계율(戒律)이네 하는 것들이 늘 그렇고 그렇지만,
훈시용(訓示用), 훈계용(訓戒用), 훈육용(訓育用)으로
많이 쓰여지는 언어들을 골라본다면,
아마도, 다음과 같은 단어들이 될 것이다.

원수를 사랑하라! 자비심을 가져라! 용서하라! 원한을 품지 말아라!
화를 내지 말아라! 나쁜 짓 하지 말라! 속이지 말라! 거짓말 하지 말라!
정직하라! 성실하라! 노력하라!
화목, 화합, 번영, 평화…

누구나 다 마찬가지이겠지만…
나도, 학교라는 곳엘 다니게 되면서,
학교에는 교훈(校訓)이라는 것이 있고,
학급에는 급훈(級訓)이라는 것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물론, 그 때의 교훈이나 급훈이,
내 기억 속에 지금까지 남아 있지는 않지만…
아마도, 다음과 같은 단어들 중의 하나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성실, 정직, 근면, 올바른 정신, 협동, 협력, 노력, 단정, 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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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代) 초 중반(初中半)에,
나는, 서울 시내의 몇군데 공립학교에서, 교직생활을 한 적이 있는데…
그 때, 정부의 시책(施策) 이라고 하면서,
모든 학생들에게 “가훈(家訓) 짓기” 캠페인 이라는 것을 실시한 적이 있었다.

요즈음의 학교에는, 학교 내의 교무 부서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모르겠으나…
그 당시의 학교에는 ‘새마을 부(部)’ 라는 것이 있었다.
[그 때가, 바로, 박정희의 새마을 운동이 있는 시기였으니까. 그럴 수 밖에.]

바로, 그 새마을 부에서 나서서, 적극적으로,
“모든 학생들에게, 가훈(家訓)을 정하여,
그것을 액자(額子)나 현판(懸板)이나 족자(簇子)로 만들어,
학교로 가지고 와서, 윤리 선생님의 허락을 받으라!”라는 대대적인 지시가 있었다.

그런 일이 있은 이후부터…
한국의 가정에, 소위 그 가훈(家訓)이라는 것이 두루 퍼지게 된 것이 아닌가? 하고,
나 스스로만 짐작을 하고 있지만서도.

우리 집에는 가훈(家訓)이라는 것이 없었다.
그렇다! 내가 자랄 때에도 우리 집에는 가훈이라는 것이 없었지만…
내가, 가장(家長)이 되어서, 우리 아이들을 키울 때에도 家訓이라는 것이 없었다.

다시 말해서…
우리 부모님도 그 가훈이라는 것을 만드신 적이 없었고,
단 한번도 그런 것에 대하여 입을 여신 적도 없으셨듯이…
나도, 또한, 그 가훈이라는 것을 생각하여 본 적도 없었고,
아이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고 입에 올린 적도 없었다.
그런 것을 만들어야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와같이, 우리 집안에 그 家訓이라는 것이 없다보니…
그래서, 그런지…
우리 집안이
세계적인 명가문(名家門)도, 권세가문(權勢家門)도,
이름이 널리 알려진 명사가문(名士家門)도,
하다 못해, 동네에서 알아주는 재산가문(財産家門) 조차도…
되지 못하였는지 모르겠으나…

내 동기(同氣)들도,
그리고 우리 아이들도,
그런대로, 다들 별다른 대과(大過)없이-
사회나 다른 사람들에게 폐해(弊害)를 주지 않고-
살아 가고 있으니…
나 스스로는 ‘Second to none (어느 누구 못지 않을 정도)’ 라고, 여기고 있다.

아무튼,
그 家訓이라는 것에 대하여, 한번, 짚어 보기로 할까?

이 세상의 어느 부모가
“서로 서로, 의좋게 잘 지내고 있는 자녀들을 불러 놓고서
‘서로 화목하게 지내라!’ 라고, 명령을 내리면서…
우리 집의 가훈은 화목(和睦)이다! “라고 하겠는가?

자녀끼리 늘 서로 서로 싸우고 지지고 볶으니까…
그 꼴이 지겨워서 “제발, 서로 화목하게 지내라!
그래서, 우리집 가훈은 화목(和睦)으로 정했다!” 라고, 할 것이 아닌가?

쉽게 이야기 해서…
술을 입에도 대지 않는 사람을 보고서, 누가 ‘술조심 하라!’라고 하는가?
그 놈의 술 때문에 말썽 부리고, 실수하고, 싸움박질이나 하는
술주정뱅이에게나 “술조심 하라!” 라고, 하는 것 아닌가?

내가, 한국에 나갔을 때,
어느 묘지 앞을 지나가다 보니…
비문(碑文)에 “서로 사랑 하십시오!” 라고, 되어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그 때, 나는 이렇게 중얼거렸으니…
“아니? 부부가 얼마나 많이 서로 싸웠으면…
자식이 부모의 비문에다 ‘서로 사랑하십시오!’ 라고 써 놓았을까?” 라고.

따라서,
어느 집의 가훈이 ‘정직(正直)’ 이라고?
그렇다면?
얼마나 정직하지 못하기에… 식구들 끼리 ‘정직해 보자!’라고 할까나?

어느 집의 가훈이 ‘사람이 되라!’ 라고?
그렇다면?
얼마나 사람답지 못하기에… 식구들 끼리 ‘사람이 되라!” 라고 할까나?

실제로, 어떤 부모나 어떤 선생은
자녀나 학생들에게 “사람이 되어야 된다!” 라고, 하는데…
알고보면… 그러한 말은,
애매모호(曖昧模糊)하기만 하고, 그럴듯 하기만 하지,
실제로는 아무런 의미도 지니고 있지않은 말일 뿐이다!

그대! 그대는 그러한
훈시용(訓示用), 훈계용(訓戒用), 훈육용(訓育用) 언어의 홍수(洪水)를,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받아 들이고 있는가?

“홍수(洪水)가 나면, 사방(四方)이 물로 넘쳐 나지만,
정작, 마실 물은 없다!” 는 소리가 있듯이…
나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헛소리일 뿐이다! 라고, 생각한다.

바로, 이러한 나의 생각을, 적어 놓고 싶어서…
지금, 이렇게,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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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蛇足):

아하! 그러고 보니… 떠오르는 생각이 있는데…
고등학교 2학년 때의 국어시간에,
국어 선생님께서 무언가를 설명하시다가,
아이들을 한명 한명 지목 하시면서
“너는 왜? 학교에 오느나?” 라고 물으시게 되었는데…

한 아이가 (이 아이의 이름를, 내가, 아직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사람이 되려고 학교에 옵니다!” 라고 대답하니까…
“그래? 그럼, 너는 지금 사람이 아니란 말이지?
그래서, 사람이 되려고 학교에 온다!는 말이지?” 라고 하셨고…

또 다른 아이가
“학교에 공부하러 옵니다!” 라고 하니까…
“그래, 학교에 공부하러 오는 거야!
맞아, 학교에 공부하러 오는 거야!
그런데… 뭘? 어렵고 거창하게 대답을 하려고 애쓰는지 몰라!” 라고 하셨다.

이것은, 이미 지나간, 나의 고등학교 2학년 때의 이야기이니…
그러고 보니, 어느 덧, 56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갔는데도,
내 뇌리에 고스란히 박혀 있으니…
이 기회에, 그 선생님께 감사를 드려야만 되겠다.

“金珠永 선생님! 저 李相奉 입니다!
선생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선생님 감사 합니다!”

~ Sang Bong Lee, Ph. D,
Dr. Lee’s Closing Arguments,
Dr. Lee’s Lessons: Discovering Your Nature,
Dr. Lee’s Iconocla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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