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하트마 간디는, 바로, 이런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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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laware Water Gap, 02-14-2019)

마하트마 간디는, 바로, 이런 사람

~ 이상봉 / 철학박사

(1) 그가 ‘위대한 영혼’의 소유자 라고?


아무리 많은 數의 사람들이
마하트마 간디 (Mahatma Gandhi: 1869-1948)를,
영적인 사람이라고 믿고, 또한 그를 존경 한다고 할지라도…
나는, 결코, 그들의 말에 동의 할 수 없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그들의 말에 동의 할 수 없는 확실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는 ‘간디의 일생’ 그 어느 곳에서도,
그에게 ‘영적인 면’이 있었다는 증거를 찾아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내가 볼 때에, 그는, 한낱, 정치가였고, 맹신적인 힌두교도
(adherent Hindu political activist) 였을 뿐 이다!
(하지만… 그는 그 방면에서 만큼은 위대한 사람 임에는 틀림이 없다.)

나는, 그의 이름에 들어 가 있는
Mahatma (The great soul)- 위대한 영혼- 이라는 단어를 볼 때 마다,
오히려 당혹감 마져느낀다!
(원래의 그의 이름은, Mohandas Karamchand Gandhi 였다.)

전혀 Spiritual 하지 못한 사람에게…
즉, 영적인 면이라고는 찾아 볼래야 찾아 볼 수도 없는 그런 사람에게…
“위대한 영혼” 이라는 말이, 어울린다고 생각 하는가?

(그 사람을 ‘위대한 영혼’이라고 부른다면?
이 세상에 ‘위대한 영혼’ 아닌 자가,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자아! 지금 부터, 간단하게 나마, 그에 관하여 살펴 보기로 할까?

그는 나이 19 살 때(1888)에 인도를 떠나 영국으로 법률 공부를 하러 갔는데,
이미, 그 때에, 그에게는 아내와 아들이 있었을 만큼
일찌감치 결혼 생활을 시작한 사람이었고,
3년 후 (1891) 인도로 돌아와 변호사로 일해 보려고 하였으나…
발 붙히기에 실패하자, 1893년에 영국의 식민지인 남 아프리카로 갔다.

그 남 아프리카에서 21년간을 변호사로 지낸 후에,
1914년에, 인도로 되돌아 왔다.

그가, 무기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Non-resistance” 라는 것이었고,
그 수단 중의 하나가, 바로, 그 “Hunger strike(단식)” 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斷食(단식)”이라는 것을 대단히 폭력적이라고 느끼고 있다!
그 점에 대하여 깊이 觀照(관조) 하여 보기로 하자!

“내가 너를 죽이겠다!”
또는, “네가, 내 말을 듣지 않으면? 나는 너를 죽이겠다!” 라고 하면…
대단히 폭력적 이라고 한다. 살인 협박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내가 나를 죽이겠다!”
또는, “네가, 내 말을 듣지 않으면? 나는 단식을 해서 죽을 것이다!” 라고 하면,
비폭력적 이고, 무저항(Non-resistance) 이고, 평화적 이라고?

이 얼마나 교활한 발상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와같은 고도의 교활함에 속아 넘어가고 있다.
그리고, 그와같은 교활한 방법을 존중하고 또한 모방을 하고 있다.

(바로, 그와 같은 교활한 방법을, 그대로 사용하여, 성공한 사람들이…
바로, Martin Luther King, Jr. 와 Nelson Mandela 같은 인물들 이다!
Martin Luther King, Jr에 관한 것은,
필자의 글- 표절( Plagiarism)-을 참고로 하시라!)

이쯤에서… 다시 한번, 좀 더, 깊이 觀照하여 보기로 하자!

‘내가 너를 죽이겠다!’ 하면, 살인협박 이고…
‘내가 단식을 해서, 나를 죽이겠다!’하는 것은 비폭력이고 평화주의자라고?

아마도, 이 글을 읽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물어 볼 것이다.
“그렇다면… 斷食(단식)이 왜? 폭력적인가? ” 라고…

그것에 대한 나의 대답은 아주 간단하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비폭력(Non-violence)이기를 强要(강요) 한다면?
그러한 강요 자체가 이미 폭력적 이다!
다른 사람에게 뿐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强要(강요) 하는 것 조차도 폭력이다!
(If someone is trying to force others to be non-violent, that is violence!
If someone is forcing oneself to be non-violent, that is violence also!)

사람들은 항상 외치고 있다,
“원수를 사랑하라! 자비심을 가져라!
평화를 사랑하라! 폭력적이지 말아라!” 라고,
떠들고 있지만…
그렇게 외치고 있는 그들의 행위나 태도를 보면,
사랑과 평화 와는 아주 동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 외침 자체를, 대단한 사랑인 양, 자비인 양, 착각 하면서,
남에게 강요만 하고 있지 않은가?

정말로 문제가 되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그들 스스로 조차도, 속임을 당하고 있으면서도…
그 속임을 또한 남에게 그대로 강요하는 데에 있는 것이다!

간디가 입으로 외쳤던, 소위 그의 주장이라는 것도…
알고보면…
힌두경(Bhagavad-gita), 예수의 산상교훈 (Sermon on the mount) 에서
그대로 모방하여 온 것일 뿐이고…
또한 그 당시에 한참 인기가 있었던 몇 몇 사람의 작품들 :
Tolstoy (1828-1910)의 Kingdom of God is within You,
Ruskin(1819-1900)의 Unto this last,
Thoreau (1817-62)의 Civil Disobedience
등등에서, 그대로 인용하고 표절한 것들일 뿐이다!
따라서…
간디에게는 독창적이며 새로운 것이라고는 단 하나도 없다! 알겠는가?

(2) 간디가 금욕생활을 하였다고?

간디는 말년에 Ashram (공통체)를 운영 하면서,
그 곳의 사람들에게 Celibacy (獨身生活 독신생활)을 강요 하였다.
하지만, 간디 자신에게는 4명의 자녀가 있었다.
자기 자신은 일찌감치 결혼하여, 4명의 아이를 낳았으면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독신 생활을 강요한다면?
그것은 이상 야릇한 것이고 또한 이중 잣대가 아닐까?

만약에 말이다…
그가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사람이라면?
최소한 ‘자기의 기준’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적용시켜야 되지 않을까?

도대체, 제 멋대로 기준을 定하고, 제 멋대로 Rule 적용 시키는 사람을
과연, 理性이 있는 사람 이라고 할 수 있는가?

理性 조차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는 그런 정치적이고,
편협한 종교적인 안목 속에 갖혀 있는 사람을,
“위대한 靈魂(영혼)- Mahatma (The great soul)” 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다시한번 더 이야기 하지만…
나는, 간디의 일생 그 어디에서도
그가 영적인 인물이라는 것을 찾아 볼 수가 없다!
(만약에, 이 글을 읽는 그대에게 그러한 증거가 있다면? 나에게 보여 달라!)

그가 인도의 독립을 위하여 해놓은 업적 만큼은 인정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그를 政治人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러나… 그를 영적인 사람 (The spiritual person) 이라고는 결코 볼 수가 없다.
그런데도… Mahatma 라니? 그것이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어디 그 뿐인가?
그가 스스로 실천했다는, 그의 독신(禁慾) 생활의 실상은 어떠 하였을까?
과연, 어느 정도나 순수한 독신(금욕) 생활이었을까?

그 자신이 선포한 금욕 생활의 시작은?
나이가 들어서, 더 이상 성욕을 억제하기에 힘들지 않게된,
다 늙은 나이에, 시작된 셈이었는데…

그것 조차도…
더욱 더 이상 야릇한 독신생활이 그 내막에 있었으니…
그는 70대의 나이에도 “발가벗은 少女와 同寢(동침)”을 하였다.
그렇다! 그 “발가벗은 소녀와의 동침”이 독신 생활이고 금욕 생활이라고?

도대체…
그의 생활 어디까지가 순수한 Celibacy (獨身生活 독신생활)이고,
또 어디 까지가 금욕이고 어디까지가 남여상렬지사 일까?

그가 젊음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에서 그랬던…
육체적인 쾌락을 위해서 그랬던…
소녀의 몸을 탐미하여 그랬던…
그런 것 까지 내가 밝힐 필요도 없고, 알 필요도 없고, 관심도 없지만…

내가 지적 하는 것은? 딱 하나,
“자기의 Rule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똑같게 적용시켜 주어야만 되는 것 아닌가?” 하는 것일 뿐이다!

(나의 지적은 아주 간단 명료하다!
그 사람의 ‘소녀와의 동침’이 잘못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이중 잣대가 잘못 된 것이라는 소리다!
그 차이점을 정확하게 파악 하시기 바란다!)

하지만… 그러한 내막을… 가까운 제자들은, 모두 다, 알고 있었으나…
일반에게 알려지는 것을 꺼려서, 모두들, 비밀을 지켜주고 있었다.

그렇다! ‘발가벗은 소녀와 동침하는 남자’를,
이 세상의 어느 누가 ‘영적인 사람’ 또는 ‘聖人’이라고 믿어 줄 것인가?
그러니… ‘쉬 쉬’ 하면서, 끼리 끼리, 비밀을 지켜 줄 수 밖에 더 있겠는가?
(만약에… 그가 다른 宗派의 사람이었다면?
그 때에도, 그와같은 비밀을, 지켜 주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런데도 불구하고…
끼리 끼리 비밀을 지켜 주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런 비밀이 외부로 알려지게 된 것은, 전혀, 엉뚱한 데에 있었으니…

Gandhi 의 옆에는 아주 지성적인 Pyarelal 이라는 비서가 있었다.
그 비서는 유능 하였고, 글쓰기를 잘해서
Gandhi에게는 꼭 필요한 인물 이었는데,
그만, 그가 어떤 여자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그러자… Gandhi는 여러가지의 방법과 수단으로
그들의 사랑을 막아 보려고 하였지만…
결국은 그 둘이 결혼을 하기로 결정을 하게 되자,
간디는, 이렇게, 최후 통첩 (Ultimatum)을 보냈다.

“나는 결혼을 반대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결혼을 하더라도 獨身으로 남아 있어야만 된다!
독신으로 남아 있던가? 아니면 이 Ashram(共同體)를 떠나라!”

이렇게, 이상 야릇한 논리(論理)가 어디 있는가?
결혼을 하더라도 독신으로 남아 있어라?

그리하여…
비서인 Pyarelal은 그 곳을 떠날 수 밖에 없었고…
그 후 그 Pyarelal의 발설과 책 (Mahatma 1956) 으로 인하여…
간디의 비밀은, 외부로 알려지게 되었다.
(간디 추종자들의 온갖 협박에 시달리면서…
그것도 간디가 죽은 후 8년이나 지난 뒤에나 겨우 실현 될 수 있었을 뿐이었다!)

이와 같은 엄연한 사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때나 지금이나… 간디를 추종하는 사람들은,
그런 비밀에 대하여, “함구”하고 있을 뿐이다.
알고 보면… 추종자들이 하는 짓이란? 다 그렇고 그런 것 아닌가!

(3) 수탈하는 종교를 맹신적으로 옹호한 인간

다시한번, 더, 이야기 하지만…
간디는 어디까지나 변호사 출신의 교활한 정치가였고,
힌두교를 정치에 이용한 ‘맹신적인 힌두교도’였을 뿐이지,
그는 위대한 사람도 아니었고,
더군다나, 그를 ‘위대한 영혼 (그의 이름에 들어가 있는
마하트마Mahatma가 위대한 영혼 이라는 뜻이다.)’ 이라고 부르는 것은?
전 인류를 모독하는 행위일 뿐이다! 알겠는가?

무엇 보다도, 먼저,
그 “종교’라는 것이, 어떻게, 인류를 등쳐 먹고 있는가?” 에 대한 이야기를…
간디가 믿고 있었던 그 힌두교(Hinduism)을 예로 들어서
설명하여 보기로 할까?

힌두교 뿐만이 아니라… 모든 종교는 똑같은 屬性(속성)을 지니고 있지만.

힌두교(Hinduism)가 지배를 하고 있는 인도(India)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태어나자 마자, 그 힌두교의 지배 계급인
Brahmans (Priests and Scholars 브라민 계급)의 통제 속에 들어가게 되어진다.

태어나자 마자 치뤄져야 되는 출생 의식,
이름 짓는 것, 그리고 나이가 들어 가면서 있게 되는
여러가지의 커다란 의식들이…
모두 다, 성직자의 主宰(주재)하에 치뤄져야만 된다!

그리고,
살다가 이사를 가게 되는 경우에도,
이사 가는 방향과 날자 까지도, 그 브라민에게 가서 정해야 되고,
모든 결혼식도 그 브라민들이 주재하는 결혼식을 치러야 되고…
그러한 결혼으로 태어난 아이는 또다시 똑같은 절차로 살아야 되고.

죽으면, 또한 브라민이 주재하는 장례식을 따라야 되고,
하다못해, 죽은 조상의 제사 조차도
브라민의 의식을 따라야만 되게 되어있다!

그야말로,
요람에서 무덤에 이르기 까지,
아니 무덤 속에서 조차도,
여전히, 그 부라민의 통제 속에서 노예 상태로 남아있게 되어있다!

그리고…
그 때마다, 돈이 들어가게 되어 있다.
그래서, 브라만들은 엄청난 부자들이다.

마찬가지 이다!
종교가 설치고 있는 나라에서는,
그 어느 나라, 그 어느 곳이나를 막론하고,
종교의 성직자라는 자들은, 지배 계급으로 설치고 있다!

이 인도의 지배 계급인 브라민들과 마찬가지로,
모든 성직자라는 자들은,
오직 입으로만 다른 사람들을 생각 하는 척 하면서…
밑천 조차 안드는 영리한 기업을 운영 하면서…
엄청난 부(富)를 축적하여 오고 있고,
또한 명예와 존경까지 받아 오고 있다!

이러한 수탈 행위가 수천년 동안을, 세계 도처에서…
그 무슨 전통처럼… 그대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그렇다! 내가 전통이라는 말을 사용하였지만…
전통이라는 것은 맹목적인 것이다.)

그 힌두敎 라는 종교가 판을 치고 있는 인도(India)라는 땅에는…
카스트(Caste)제도 라는 것이 있어서,
그 피해가 엄청나고, 그래서, 더욱 더 두드러지게 되었다.

힌두교에는 계급(Varna) 이라는 것이 있다.
소위 Caste System (카스트 제도) 라는 것이 그것인데…
그 첫번째의 계급이 Brahmans (Priests and Scholars 브라민 계급)
그 두번째의 계급이 Kshatriyas (Military and Rulers 무사와 통치계급)
그 세번째의 계급이 Vaisyas (Farmers and Merchants 농부와 상인계급)
그 네번째의 계급이 Sudras (Laborers)가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이 마지막의 계급인 Sudra를 또 다시 나누어서,
그 보다도 더 못한 Panchama라고 불리워지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 수드라 계급과 Panchama를, 흔히,
不觸賤民 (불촉천민 Untouchable- 손을 댈 수 없을 만큼 천한 사람) 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표면적으로는 4계급이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5계급이 있는 셈이된다.

힌두교 사회에서, 그 ‘불촉천민’으로 태어난 사람들은,
낮에는 다니지도 못하게 정해져 있어서…
그들은 주로 밤에만 길을 다닐 수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마을 밖에 따로 떨어져서 살아 가도록 정해져 있다.
만약에, 그들이 낮에 어느 곳을 지나쳐 가게 되면, 조그만한 북을 울리면서,
“나는 수드라 입니다. 내 소리를 듣는 사람은 빨리 피하십시오!”
라고, 알려야만 되었다.
왜냐하면…
그들의 그림자가 닿기만 해도 부정을 탄다고 되어 있었으니까…

그렇다! 힌두교에서 정해 놓은 이러한 카스트 제도에 의하여,
그러한 불촉천민의 부모 밑에서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다,
Not only untouchable but also unseeable!
(불촉만이 아니고, 남에게 보여져서도 안될 천민) 으로,
한평생 동안을 그렇게 살다가 가도록 되어 있었다.

[이러한 불촉천민에 대한 차별 행위는, 인도라는 땅에,
수천년 전부터 있어 온 것이기에… 석가모니가 살아 있었을 당시에도 그랬다.

그래서, 석가모니는, 그러한 관습에 대항하여 혁명을 일으켰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 석가모니가 죽고 나자,
힌두교는 또 다시, 모든 사회를 점령하게 되었고…
아직도, 힌두교가 판을 치고 있는 그 인도에서는 여전히 그러한 일이 계속되고 있다.]

(4) 맹신적인 종교인, 교활한 정치인: 간디

하긴, 법적으로야… 불촉천민의 차별은 금지 되었다!고 하고 있지만
(차별 금지의 시작은, 1949 부터 였지만)…
그 종교(힌두교)가 여전히 모든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한,
지금도 별로 변한 것이 없이,
그들은 아직도 그러한 불평등한 삶을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이 얼마나 불행하고 불평등한 처사인가?
이러한 만행을 제도적으로 저지르고 있는 단체가 바로 그 종교라는 것이다!
알겠는가?

간디(1869-1948), 그는,
이와같은, 힌두교의 만행을 적극적으로 지지 하면서,
그 종교를 잘 이용해 먹은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그를 종교인이고 정치가일 뿐이라고 못박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무식하고 현명치 못한 인간들은…
그토록 교활한 자를, 아직도, ‘위대한 인물’이라고 믿고 있고,
한 수 더 떠서 ‘위대한 영혼(마하트마)’의 소유자 라고 치켜 세우고 있다!

나는, 이따금, 예수교도들이,
간디가 하였다는 말: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한다,
그러나 예수교는 사랑하지 않는다!’ 라는 것을,
인용 하면서 까지…
‘예수는 이 정도의 대단한 인물’ 이라고,
은근히 높히는 선전을 하고 있는데…

즉, 다시 말해서…
그 ‘위대한 간디’ 조차도- 예수교도도 아닌 간디 조차도-
그 예수를 이토록 인정하여 주었는데…
“도대체, 당신들이 뭔데, 예수를 믿지 않고 있느냐?” 하는 의미로…
간디와 예수를 동시에 높혀서 울궈먹고 있는
교활한 선전을 하고 있는 셈인데…
그 것에 대하여, 내가, 친절하게, 설명 좀, 하여 주어야 되겠다!

간디가 했다는 그 말:
‘나는 예수그리스도를 사랑한다,
그러나 예수교나 예수교도는 사랑하지 않는다!’ 라는 것은?
그야말로, 아무런 가치도 없는 말장난일 뿐이고 눈가림일 뿐이다!

왜냐하면?
예수를 사랑하면, 그 예수교를 믿어야지 되는 것이지…
사랑 한다고 하면서…
뭐? 예수교나 예수교도는 사랑 할 수 없다고?
도대체, 이것이,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말로만 사랑한다는 짓은 어느 누군들 못할까나?
그런 속임수에 넘어가고 있는 덜 떨어진 자들이 불쌍할 뿐이다.)

간디의 교활함? 정말로 가증스럽다!
그러나, 더욱 더, 역겨운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그와같은 교활한 간디의 교활함을 그대로 이용해 먹고 있는
그와같은 예수교도들의 뻔뻔스러움이다!

다시 한번 더 이야기 하지만…
그대가, 간디라는 인간이 어떤 종류의 인간성의 소유자인 것을,
제대로 알게 된다면?
그대는, 그 간디라는 이름을, 입에 올리기 것 조차도, 부끄러워 하게 될 것이다!

——————————–

우선,
간디가, 1933년 5월 2일자로,
Jawaharlal Nehru (1889-1964, 인도의 정치가 이며,
첫번째 수상, 재임기간1947-64)의 앞으로 보낸 편지를 읽어 보기로 할까?

“My life would be a burden to me if Hinduism failed me.
I love Christianity, Islam and many other faiths through Hinduism…
But then I cannot tolerate it with untouchable!”
[힌두교가 줄어 들어가게 된다면, 나의 삶은 큰 짊이 될 것 입니다.
나는 힌두교를 통해서만, 예수교, 이슬람교, 그리고 다른 신앙들도
인정해 줄 수 있는 사람 입니다.
그러나, 이 불촉천민(수드라 계급)을 용인하고,
함께 지낼 수는 없는 사람입니다!]

수드라에 대한 간디의 태도가, 극명하게, 드러나 있는 편지인데…
간디는 맹신적인 힌두교도 답게, 수드라 계급을,
뼈에 사무치도록, 철저하게, 멸시하였던 사람이다!

힌두교에서 만들어 놓은,
그 하찮은 ‘계급 교리’ 따위에 미쳐서…
뭐? 사람과 사람이 함께 살 수 없다고?

[자기는 검은 피부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영국으로 유학를 가서 백인들과 같은 권리과 대우를 받고 살았고,
그리하여, 변호사 자격증까지 얻을 수 있게된 인간이,
같은 동포인 수드라 하고는 함께 살 수 없다니?
이토록 맹신적인 힌두교도인 간디가,
1948년 1월 30일에,
또 다른 힌두교도에 의하여 암살을 당하게 되었지만서도…
하긴, 그것이 바로, 같은 맹신교도들의 본질이 아닌가?]

(5) 천민을 차별한 ‘천하디 천한 인간’

그대! 그대의 눈에는, 아직도, 그러한 간디가,
‘위대한 사람’ 또는 ‘위대한 영혼의 소유자’로 보인다면?
그것은, 그대의 눈이 크게 잘못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대 자신의 시력 검사를 스스로 해 보도록 하시라!

내가 시력 검사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겠다.
지금, 당장, 간디의 사진을 찾아서, 물끄럼히 들여다 보시라!
그의 얼굴을 들여다 보면서, 그의 얼굴에서,
위대한 인물상, 위대한 영혼을 직접 찾아 보도록 해 보시라!
나는, 그대가, 그의 얼굴에서 그런 것을 찾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는, 그의 얼굴, 그의 모습, 그의 글, 그의 주장, 그 어디에서도…
단 한치의 인간다운 모습도,
단 한점의 아름다운 영혼도,
단 한점의 순수한 인간성 조차도, 찾아 볼 수 조차 없다!

내 눈에 보이는, 그의 간사한 얼굴에서는,
오직, 교활함과 사악함만이 모락 모락 풍겨져 나오고 있을 뿐이다!

——————————–

간디가 인도의 지도자로
그리고 힌두교의 聖者로 존경을 받고 있었던 그 당시에, 같은 인도에,
암베드카르 (Babasahed Ambedkar, 1891-1956) 라는 법률가가 있었는데,
그 사람이 바로 수드라 (불촉천민)에 속해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간디보다 22년 늦게, 불촉천민의 부모 밑에서
14번째의 아들로 태어난 아이였지만…
그야말로 운좋게도, 어느 부유한 후원자를 만나서,
그 후원자의 도움으로, 영국 유학을 가게 되었고,
영국의 Elphinstone College를 1912년에 졸업한 후에,
1923년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법률 전문가가 되어서 인도로 돌아와,
Bombay에 있는 법과 대학의 학장으로 있으면서
자기가 속한 그 수드라의 권리를 위하여,
Satyagraha (Passive resistance) 을 시작 하였다.

그는, 우선 법적으로, 그 수드라 계급에게도,
참정권(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투쟁을 하게 되었는데…

바로, 이 암베르카르의 주장에, 결사적으로 반대를 하면서…
그 주장의 철회를 요구하고 나선 자가 있었으니… 그 자가, 바로, 간디였다!

그렇다! 간디는 그 수드라에게 투표권을 주기를 결사 반대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간디는 자기의 주장을 관철 시키기 위하여,
여론을 자기 편으로 만들기 위하여,
언제나, 써먹는 그 단식 투쟁을 또 하게 되었는데…
(단식 투쟁이, 얼마나 교활한 짓인가? 에 대해서는,
이미, 자세하게 설명이 되어 있으니 그것을 다시 한번 참고로 하시라!)

간디가, 21일 째나 단식을 계속하게 되자, 그의 건강이 나빠지게 되었고,
힌두교도들의 여론이 분분하게 되어지자…
간디 주치의사가, 그 Ambedkar 변호사를 찾아와서,
“당신의 주장을 철회하라! 그렇지 않으면 간디는 곧 죽을 것이다!”
라고 압력을 넣었다.

그러자… 인도의 민족 주의자네, 힌두교의 성직자네 하는 것들이,
모두 다, 암베드카르에게 압력을 넣기 시작했다.

“마하트마 간디에게 가서 즉시 사과하고 용서를 빌어라!
그리고, 그에게 음료수를 바쳐 단식을 멈추게 하라!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인도에서 가장 위대한 성자를 죽게 만든
파렴치한 사람으로 낙인 찍히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 후의 사태를, 어떻게 수습하려고 하려는가?”

그리하여… 그러한 여론에 밀리게 된Ambedkar는,
자기의 주장을 철회하게 되었고…
수드라의 투표권은 결국은 통과되지 않게 되었다!

(6) 말로만 얼버무리는 교활함의 극치

그렇게 해서… 바로 그 간디의 방해 공작에 의하여…
수드라의 참정권 부여는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힌두교라는 종교가 지배하고 있는 나라,
그리고, 간디의 추종자가 수없이 많다는 것,
또한 간디의 나이가 22살 더 많다는 것 등등이…
큰 빽으로 통하고 있는 그런 사회에서는,
아무리 유능한 변호사인 Ambedkar로서도 할 수 없는 일이었겠지만…

[글쎄… 그러나… 그런 간디式의 교활한 방법이
이 ‘이상봉’에게도 먹혀 들어 갈 수 있을까나?
내가 단언 하겠는데… 나에게는, 그런 교활한 방법을 꺾을 묘안이 있다!
따라서… 만약에, 나 였다면?
교활한 간디가 ‘이상봉에게 통하지 않는 그런 교활한 방법’을 써먹으려고,
시도 조차도 하지 않았을 것이리라!]

일이 이렇게 되어서… 결국에는…
또 다시, 그 간디가 승리한 것으로 되어지자…
이번에는, 간디에게서 이런 말이 나왔다!

“나는, 수드라들에게 깊은 연민과 자비심을 가지고 있기에,
그 Sudra를, 앞으로는
Harijan (하리잔- 신의 자녀들) 이라고 불러 주겠다!”

뭐라고? 투표권은 절대로 줄 수 없지만…
당연하게 주어야 될 그 투표권은 절대로 주지 못하겠다고 하면서…
이름 만큼은, 하리잔, 즉 ‘Children of God (神의 자녀들)’라고 불러 주겠다고?

아니? 이름을 수드라에서 하리잔으로 고쳐서 불러 준다고 해서…
실제로, 달라 지는 것이 뭐가 있단 말인가?
(그렇다!
이런 자가 교활한 자가 아니라면…
과연, 어떤 사람을 교활하다고 하려는고?)

단지, 입으로만 얼버무리는 그런 짓으로
그 무슨 변화가 오며 또한 사회 정의가 실현될 수 있겠는가?

간디! 이 사람은, 이토록, 교활한 인간성의 소유자일 뿐이다!
교활한 인간이기 때문에, 그의 머리에서는,
온통, 그러한 식의 말장난이나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불쌍한 수드라들을,
오직, 혓바닥으로 놀리는 짓이나 하고 있는 것도 그렇고…
단식이 비폭력이라는 것도 그렇고…
간디! 그는 그런 말장난의 명수일 뿐이다!

자아! 이제야 내 말을 제대로 알아 들었는가?

——————————–

내가, 간디에 관한 이야기를, 간단하게 나마, 몇 가지 하였는데…
이쯤에서 이런 이야기를 끝내기 위하여…
Ambedkar의 그 후의 이야기를 조금만 더 들려주면…

일이… 이렇게 되자…
그 Ambedkar는 다른 방법, 다른 길을 찾아 내어야만 되었으니…
그것이, 바로, 힌두교도인 Sudras 를, 불교로 개종 시키는 일이었다!

그가 불교에 관심이 있어서 그랬던 것이 아니라…
그에게도 정치적인 수단이 필요 하였던 것이었다.
그런데… 그의 아이디어(Idea)는 상당한 값어치가 있었으니…

그 이유는?
힌두교에서 벗어나면, 더 이상, Sudra가 아니니까…
투표권을 얻을 수 있다는 계산하에,
수드라들에게 佛敎(불교)로의 개종를 권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힌두교도가 아닌데…
그 힌두교의 교리나 계급을 따라야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러고 보면… 그 힌두교도들도 참으로 이상한 사람들이다!
무엇 때문에, 그 힌두교 밑에서 그렇게 노예 상태로 살아가고 있을까나?
그 종교를 그냥 버리고 무종교로 살아가든가?
아니면, 다른 종교를 믿으면 다 되는 것 아닌가!
그런데도… 그 종교의 노예로 계속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니?
참으로 불쌍한 사람들일 뿐이다!
(하긴, 모든 종교가 다 사람들을 세뇌 작용으로 그렇게 옭아 놓고 있지만서도…)

그리고, Ambedkar는 자기의 정치적인 세력의 확장을 위하여,
불교도들의 힘이 필요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인도라는 땅에는, 석가모니가 죽은 후에
그 불교가 제대로 명맥 조차도 유지하지 못하고, 거의 다 없어져 있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Ambedkar의 방법으로 인하여,
적지않은 숫자의 수드라들이 불교로 개종을 하게 되면서,
1956년 까지는 불교도의 숫자가 많아지게 되었지만…

Ambedkar가 죽고 나자…
믿지 못할 일들이 일어나게 되었으니…

그것은? 불교로 개종 하였던 그 수드라들 조차도,
또 다시, 힌두교로 되돌아 가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것이, 바로, 그런 사람들의 ‘사고 방식’ 이다!

[사족:
이 글은 이미 밝혀진 증거와 사실에 입각하여 쓴 것 인데…
좀 더 많은 참고 서적이 필요한 사람은 다음의 것을 참고로 하시라.
N. Pyarelal, Mahatma(1956,1965), M,Chatterjee, Gandh’s Religious Thought(1983),
D. Dalton, Mahatma Gandi (1993)
Ambedkar의 책으로는, ‘The Buddha and his Dharma (1957)’가 있으며,
그 사람에 관한 것은,
‘Dr. Ambedkar, Life and Mission (1954) By V.Moon & D. Keer 를 참고로 하면 된다.]

~ Sang Bong Lee, Ph. D
Dr. Lee’s Discovering Your Nature,
Dr. Lee’s Closing Arguments.
All rights reserved and copyrighted (무단 복제 사용을 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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