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의 언어가, 바로, 그대의 사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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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dson River in New York on 07-24-2019]

그대의 언어가, 바로, 그대의 사상이다.

~ 閑超 이상봉 / 철학박사, 문인

나에게 있어서 잘못된 漢字(한자)에는…
‘선(仙)과 속(俗), 종교(宗敎)와 성직자’ 라는 단어가 해당된다.
마찬가지로… 그 부활(復活)이란 것도, 별 의미가 없는 것으로,
단지 ‘일시적인 죽음의 연기(延期)’라고나 할 수 있을까나?

(1) 仙과 俗이, 그렇게나, 서로 다른 것이라고?

한자(漢字)라는 글자는 상형문자(象形文字)에 그 기초를 두고 있기에,
의미가 제대로 표현되어 있는 것들도 많이 있고,
그 글자가 지니고 있는 지혜에 감동하게 되는 경우도 많이 있지만…
그 반면에, 그렇지 못한 경우도 또한 많이 있다!

그 중에서, 농담삼아, 한가지만 예(例)를 들어 보기로 할까?

나는, 선(仙) 이라는 漢字와 속(俗)이라는 漢字에, 결코, 동의 할 수 없다!

仙 이라는 것은 神仙을 뜻하는 것으로…
소위 속세를 초월한 사람을 나타내는 글자다.
그래서 仙女(선녀), 詩仙(시선) 등등의 단어들이 다 그런 의미로 쓰여지고 있다.

俗이라는 것은 범속(凡俗)한 것을 나타내는 말이지만,
사실은, 평범한 것 보다 못한 것, 즉, 주로 속되고, 천하고,
고상하지 못한 것을 지칭하는 의미로 쓰여질 뿐이다.

그런데… 그 두 글자의 차이점은 어디에 있는가?
그 글자 ‘仙’은, ‘人+ 山’ (사람이 산에 있는 것)이고,
그 글자 ‘俗’은, ‘人+ 谷’ (사람이 골짜기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다른 것이라고는… 산이냐? 골짜기냐?의 차이일 뿐이다.

그렇다! 알고보면, 봉우리도 산이고 계곡도 또한 산이다.
산의 높은 부분을 봉우리 라고 부르는 것 뿐이고,
산의 낮은 부분을 谷이라고 부르는 것 뿐이다.
따라서, 봉우리가 높으면 그만치 골짜기가 깊은 것이다.
높은 봉우리만 있고, 낮은 골짜기가 없는 산도 있을 수 없고,
낮은 골짜기만 있고, 높은 봉우리가 없는 산도 있을 수 없다.

그런데… 어찌하여, 한자에서는 山과 谷을 반대의 의미로 써놓고 있을까?
어찌하여 사람이 높은 곳에 들어가 있으면 仙이 되고,
어찌하여 같은 사람이 낮은 곳에 들어가 있으면 俗이 되는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 점이 자연스럽고 또한 당연하게 보일지 모르겠으나…
나에게는, 산위에 있는 사람이나, 골짜기에 있는 사람이나,
사람은 똑같은 사람일 뿐이다.

하긴, 산 봉우리에서 내려다 보는 경치와 느낌과,
골짜기에 갇혀 있을 때의 경치와 느낌과는, 그야물론 당연히 다르기에…
누구나 다, 높은 곳으로 올라 가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람까지 달라지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산 봉우리에 시원한 바람이 있다면?
산 골짜기에는 시원한 물이 있지 않은가?

그럴진데… 하나는 仙人이고, 하나는 俗人이라고 할 만큼의
큰 차이가 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그렇다! 그렇게 까지 큰 차이가 날 수는 도저히 없는 것 아닌가!

따라서… 이 두 글자는 확실히 잘못된 글자라고 보아야 된다.

——————

(2) 종교 ∙ 성직자라는 단어는, 얼마나, 잘못된 것일까?

이와같이, 발상 자체가 잘못된 漢字들이 많이 있는데…
아마도, 가장 쉽게 많이 찾아 낼 수 있는 부문이,
내 생각에는, 종교에 관계되는 단어들인 것 같다.

내가,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서, 지적을 한 적이 있지만…
우선, 그 ‘종교(宗敎)’라는 漢字 부터가 크게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쓰여지고 있는,
그 Religion(종교)의 정의(定義)는,
“초인간적, 초자연적인 힘에 대해 인간이 경외, 존중, 숭배를 하는 일’
을 일컫는 것 뿐인데도…
漢字로, ‘宗敎’라고 표기를 해 놓는 바람에, 그것이,
‘가르침 중에서, 가장 으뜸가는 가르침’ 처럼,
무의식적으로 받아 들여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것은 발상 부터가 전적으로 잘못된 문자(文字)다.

그리하여…
‘宗敎’라고 표기되고 있는 그 漢字 문화권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아에, 처음부터 그렇게 배워 놓았기 때문에…
그것이 자연스러운 언어, 즉 모국어이기 때문에…
그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 줄 조차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언어가 곧 사상이다.
그렇다! 그대의 언어가 바로 그대의 사상이다.

그대! 그대에게는, 그 종교(宗敎) 라는 것이, 과연,
그토록, ‘으뜸 가는 가르침’으로 보여지고 있는가?
[나에게 대답 할 필요가 없이, 그대 자신에게, 스스로, 답변해 보시라!
그대 자신의 그 대답이 맞는지? 틀리는지? 는,
인류 역사상에 저질러진 숱한 종교의 만행과 그대의 양심과를 비교해 보면 자명해지게 될 것이다! ]

그리고… 이왕 종교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 김에,
한가지만 더 지적을 하고 넘어가야만 되겠다.

그대! 그대에게는, 그 종교라는 것을,
생활 수단으로 하고 있는 그 사람들의 직업(職業)이,
과연, 성(聖)스러운 직업으로 보여지는가?

과연, 그들의 직업을 성직(聖職)이라고 불러 줄 수 있는가?
그리고, 그들을 과연 성직자(聖職者)라고 불러 줄 수 있는가?

만약에… 그대의 대답이 “Yes! 네!” 라면…
불행하게도, 그대의 대답이 “Yes!”였다면…
그대가 떠들고 있는 말, 즉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 라는 말은,
한낱, 거짓말이 되는 것일 뿐이다!
(왜? 그렇게 되는지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여 보기 바란다!)

漢字 문화권 속에 들어 있는 나라에서는, 아직도, 그 ‘직업의 귀천’을 따지고,
사람을 직업으로 심판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이유도 이러한 사상과 무관하지 않다.

한자(漢字) 문화권의 나라에서는, 그 옛날 부터,
직접 손발을 움직이는 직업을 천시하여 왔다.
그리하여… 그런 나라에서는,
소위 스승이네, 선생이네, 지도자네 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모두 다, 노동하고는 거리가 먼 사람들만 있을 뿐이다.
그렇다! 일하고는 거리가 먼 족속들만 지도자로 자처하고 있다!

그 반면에, 서양의 현인들, 스승들은, 거의 다, 직접 손 발을 움직이는
육체 노동을 하였던 사람들이다.

聖職者라는 사람들이 하는 일(Work) 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알고보면?
소위 俗世(속세)의 사람들이, 속인(俗人)들이 벌어다 주는 것
(사실은, 그 성직자라는 자들이, 그토록 저주하고 있는, 소위,
그 숱한 죄악들을 저지르면서 벌어온 돈)을,
고스란히 앉아서 받아 먹으면서, 또는 얻어 먹으면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아닌가?

결국은, 일다운 일, 육체 노동이라는 것은 거의 하지 않고서,
단지, 남의 것을 받아 챙겨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아닌가?
좀 더 쉽게 설명을 하면… 결국은, 동냥질이나 구걸행위와 마찬가지가 아닌가?
[말이 좋아서… 듣기 좋은 말로는… 誠金(성금)이네 布施(보시)네 하고 있지만…]

거지는 분명히 거지인데도…
진짜의 거지와는 다르게, 오히려, 존경까지 받으면서…
더군다나, 그런 직업이 성직(聖職)이랍시고,
성직자라는 칭호(Title)까지 목에 걸치고서…
살아가고 있는 이상한 거지, 즉 ‘고급의 거지’가 아닌가?
(구걸에도 성스러운 구걸이 있다고? 하! 하! 하!)

따라서, 내가 볼 때에는… 분명한 것이 있으니…
宗敎(종교)라는 漢字도, 聖職(성직)이라는 漢字도, 크게 잘못된 것이다!
그렇다! 잘못 되어도 아주 크게 잘못된 것이다.

이러한 나의 주장에 대하여, 어느 누가 뭐라고 떠들든 말든…
어느 누가 내 말에 거부감을 가지든 말든…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일 뿐이다! 알겠는가?
[漢字 문화권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사고 방식은,
그러한 잘못된 한자의 영향을 결코 벗어날 수가 없다.]

마찬가지로… 한국어를 모국어로 하고 있는 사람의 사고 방식도
그 모국어의 영향을 결코 벗어날 수가 없다.

잊지말고 꼭 기억해 두시라!
내가 앞에서 한 말:
“언어가 곧 사상이다. 그대의 언어가 바로 그대의 사상이다.”
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를!

——————

(3) 각하(閣下) 라는 호칭은…

이왕, 호칭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 김에,
한가지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대통령에 붙이는 공식적인 영어 호칭은,
Mr. (Mr. President) 이며,
모든 회의나 연설 때에 대통령을 소개할 때에는,
‘The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 라고 소개 한다.
바로, 이것이 민주주의 언어이며 또한 표현이다!
[참고로, 王이 있는 국가에서는, King or Queen의 호칭은,
Your Majesty 이고, 왕족은Your Royal Highness 이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는 어떠한가?
요즈음에는, 어떻게 변했는지, 내가 모르겠으나…
내가 살았던 당시의 한국에서는,
(참고로, 나는 1970년대에 한국을 떠나온 사람이다)
대통령에다, 閣下(각하) 라는 호칭을, 반드시 붙여서 사용하였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박정희 대통령 각하” 였다.
(그렇다! 그 때에는, 무조건, ‘각하! 각하! 각하!’ 라고만 하여야 되었다.
아마도, 박정희라는 사람은, 그 ‘각하’라는 단어를 그토록 좋아하였던 것이리라…)

하지만… 분명하게 알아 두어야 할 것이 있으니…
그 ‘閣下(각하)’ 라는 호칭은, 사실상, 별것이 아니다!
그야말로… 별것이 아니다.

왕이 있던 시대의 건물에는, 건물 마다에 각각의 이름을 붙였는데…
그 건물의 규모, 격, 용도에 따라서 다음의 순서로 이름을 붙였다.

殿(전, 대궐전)- 堂(당, 집당)- 합(閤, 쪽문합)- 각(閣, 누각각)-
재(齋, 재계할 재)- 헌(軒,추녀헌)- 루(樓, 다락루)- 정(亭, 정자정).

그런데… 그 건물의 이름이 호칭(Title)으로도 쓰여졌으니…
그 대표적인 예(例)가, 바로,
전하(殿下), 중전(中殿, 중전마마) 이라는 호칭이었다.

따라서, 각하(閣下)라는 호칭은 사실상 아무것도 아닌데도
박정희는 그 ‘각하’라는 호칭을 사용 하였는데… 아마도 몰라서 그랬을 것이리라!

아무튼, 그 각하라는 호칭에 해당되는 영어를 굳이 찾아본다면,
Excellency 가 될텐데… Excellency라는 호칭은,
Bishops(천주교의 주교) 에게나 붙여지는 호칭이고,
정치에서는 대사급(Foreign Ambassador)의 관리에나 붙여지는 호칭일 뿐이다!

따라서… 고작 대사의 호칭에나 쓰여지는 그런 단어를,
‘대통령의 존칭’으로 버젓하게 사용 하였다는 것은,
무식(無識)과 무지(無知)의 소치로 친다고 해도,
그 정도가 너무나도 지나친 것일 뿐이다!
두고 두고, 챙피하게 여겨야만 할 낯뜨거운 짓일 뿐이다!
(자세한 것은, 이글 말미에 있는,
‘필자 註 : 호칭에 관한 참고 사항’을 참고로 할 것.)

따라서, 그 朴正熙에게는, 두가지의 확실한 잘못이 있었으니…
그 하나는,
자칭, 민주주의 국가의 대통령직에다,
가장 ‘비민주적인 계급성의 호칭’을 함부로 사용한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별것도 아닌 직급의 호칭,
즉, ‘주교급이나 대사급에나 사용되는 그런 호칭’을,
한 국가의 대통령직에 붙여서 사용 할 정도의 무지(無知)를 저질렀다는 점이다!

따라서, 그 ‘朴正熙 에 대한 것’ 은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의 언어가 바로 그 사람의 사상’ 이기 때문이다!
알겠는가?

한국 사람들은… 아무런 영문도 모르고…
무조건, 위에서, 그렇게 사용하고 있으니까… 그것이 맞는 것으로 알고서…
하다못해, 다른 나라의 대통령에게도,
그 각하(Your Excellency) 라는 호칭을 붙여 주는 것이,
예의이며, 또한 당연한 것으로 알고 있게 되어 버렸다!

그래서… 朴정권 치하에서는, 그 각하라는 말이, 모국어(母國語)로 굳어 버렸다!
(대통령이라는 단어 대신에 사용 될 수 있는 것으로.
오히려, 대통령을 높혀서 부르는 고귀한 대명사로 되어 버렸다!)

그리하여… 한국인들은 그것이 크게 잘못된 것인 줄 조차도 모르는…
그런 ‘바보 국민’이 되어 버렸던 것이다! (정말로, 챙피하고 통탄할 일이다!)

한국어로 잘못 굳어진 그 언어는,
외국의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하게 될 때에도… 그대로 사용되어…
거리에 붙여 놓는 그 수많은 환영 현수막, 환영 간판에도,
모두 다, 대문짝만한 글씨로…
“Your Excellency President OOO”
“OOO 대통령 각하(閣下)의 한국 방문을 환영 합니다!”
라고, 되어 있게 되었다.

이와같이… 그 각하라는 말이, 그만, 자연스러운 모국어로 되어 버렸으니…
아마도, 외국으로 나가는 모든 공식적인 편지에도, 틀림없이, 그렇게 썼을 것이고…
번역이나 통역을 할 때에도 또한 틀림없이 그렇게 썼을 것이다.

남의 나라 대통령을, 대사나 천주교회의 주교급 호칭으로 불러 주었으니…
이 얼마나 챙피한 일이고 망신스러운 일일까?

(글쎄… 요즈음에 외국으로 나가는 공문서에는…
그나마, 제대로 고쳐졌을까? 가 극히 의문스럽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그대여!
민주주의 국가의 국민이라고 자부하고 있는 한국인들이여!
그대들은, 그 점이, 챙피하지도 않은가?

—————-

참고로… 나의 경험담을 한마디 덧붙이면…

이것은, 내가 유럽에서 열린 회의에 참석 하였을 때의 일인데…
그 곳에, 브라질에서 참가하신 분이 있었다.
부부가, 다 함께,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돌아가서
그 나라의 대학 교수로 있는 사람들이었는데…

내가 미국인 신분이기는 하지만, 미국 태생이 아니고,
외국 태생이라는 것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듯이 보였다.
(아마도, Boston과 Austin에서 공부를 할 때에, 기숙사에서,
한국인 유학생들과 함께 지낸 경험이 작용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또한, 그들 자신의 모습은 비록 백인의 모습이었지만, 브라질 사람이었기에…
내가 전형적인 백인이 아닌 점이 그들에게 편안함을 주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서로 서로 개인적인 대화를 많이 하게 되었는데…
(그 부인이, 자기의 나이가 나의 나이와 동갑이라고 하드구만.)
한번은, 우리 부부와 함께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도중에,
그쪽 부부가 ‘브라질의 정치, 정치인, 독재 행위’ 등등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요즈음의 브라질 사람들이, 과거의 독재자를 미화하면서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한심한 사람들 입니다!” 라고 하는 바람에…

깜짝 놀란 우리 부부가, 동시에,
“아니? 그곳에서도 그렇습니까?
요즘의 한국에서도 똑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하던데…”
라고, 소리를 친 적이 있다.

나의 귓가에는, 아직도, 그 때, 그 사람이 한 말:
『 제가 미국에 도착해서 처음으로 느낀 것이,
바로, 이것이 민주주의 국가고, 이것이 진정한 자유로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가 생생하게 각인 되어 있다.

—————–

(4) ‘부활 하였다’는 사람들!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맨 앞에서 나온 이야기, 즉,
그 산 봉우리에서의 느낌과 산의 계곡 속에서의 느낌이 약간 다르기 때문에….
순전히 그런 분위기에서 오는 느낌 때문에, 仙과 俗으로 전혀 다르게 갈라졌듯이…

어떤 분위기에 휩싸여 있다보면… 그와같은 분위기에서 오게되는 느낌,
단순히 그 분위기 때문에 느껴지게 된 느낌을…
뭐 대단한 ‘깨달음’ 이라도 얻은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아주 많고 흔하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 단체에서 하는 “수련회, 모임, 피정, 기도회, 단식” 등등에 참석하여…
소위 같은 類의 사람들 끼리 끼리만, 몇일 동안을 통제된 생활을 함께 하면서…
세뇌 교육을 집중적으로 받게 되면?
일상 생활 속에서 못느꼈던 그 어떤 느낌을
받게 되고, 또한, 느끼게 되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런 느낌은, 단지, 그런 분위기 속에 있기 때문에
오게되는 일시적인 느낌일 뿐이지…
그 사람의 내면에, 그 사람의 본질에, 그 무슨 변화가 오는 것은 아니다.

그리하여, 그 분위기를 벗어나면,
그러한 일시적인 느낌은, 물거품 처럼 사라져 버리고,
그 사람은, 역시, 그냥 그 사람 그대로일 뿐이다.

그 점을 결코 혼동하지 마시라!
그래서, 나는 소위 그 종교 단체의 모임이나
세뇌 교육에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고 있다.

마찬가지로…
나는, 그 ‘부활(復活)’ 이라는 것에,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고 있지 않다!

[그대! 나의 말을 결코 오해하지는 마시라!
그대가 예수의 부활, 또는 예수가 다른 사람을 부활시켰다는…
그런 부활들을, 모두 다, 믿고 싶으면? 얼마든지 믿어라!
나는 지금 그대의 그런 믿음에 대하여 왈가 왈부 하는 것도 아니고…
그 부활했다는 그 주장 자체를 부정 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나에게는, 그 부활이 지니고 있다는 의미가 별것이 아니라서…
나는 그것에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것 뿐이다.
아무래도, 그점에 대하여 약간의 설명을 해야만 되겠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의 욧점은,
예수교에서 그토록 매달리고 있는 그 부활(復活)이라는 것에,
과연, 그 무슨 ‘진정한 의미’가 들어 있을까? 하는 점인데…

내 이야기를 좀 더 확실하게 하기 위하여…
우선, 이렇게, 질문 부터 해 보아야 되겠다.

‘예수가 부활 하였다’는 것도,
또 ‘예수가 다른 사람을 죽음으로 부터 부활시켜 주었다’는 것도,
논쟁의 목적상, 모두 다, 인정하여 주기로 하자!
따라서, 그 부활을 100% 인정 하기에,
내가, 오히려, 진지한 질문을 해 보아야 되겠다.

“죽음을 이기고, 죽음으로 부터 부활 하였다는 그 예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예수가 죽음으로 부터 구해냈다, 또는,
부활시켜 놓았다는 그 사람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예수도, 그리고 그 사람들도, 모두 다,
죽음을 이기고, 부활 하였다고 하니까…
그들은, 다시 얻은 그 생명을 지닌채, 아직도, 살고 있어야만 되는 것 아닌가?

지금 생명을 지니고 이렇게 살아 가고 있는 우리들 처럼,
그들도 그 새로 얻은 생명을 지니고, 버젓이, 살고 있어야만 되는 것 아닌가?

모든 예수교도들이, 한결같이,
“예수와 예수가 부활시켜 놓은 그 사람들은, 죽음을 이기고 부활 하였다!”
라고, 주장을 하고 있으니까…

“그렇다면?
그들은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라는 것이, 내 질문의 요지다!

그렇다!
분명히 죽음을 이겨냈다!고 하니까… 또다시 죽었을 리는 없을테고…
(만약에… 그들이 다시 죽었다면?
그것은, 부활도 아니고, 죽음을 이긴 것도 아니다! 그렇지 않은가?)

그러니까… 그 부활한 그 사람들이,
그 때부터 지금까지, 아직도, 살고 있어야만 되는 것이 아닌가?

그들이 다른 지방으로 이사를 가지 않았다면,
아직도, 그 지방에 그대로 살고 있어야 되는 것 아닌가?

더 나아가서,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다고 치드라도…
하다못해, 다른 나라로 이민을 갔다고 치드라도…
죽기 전의 그 얼굴 모습을 어느 정도 지닌채,
이 지구상 어딘가에서, 분명히, 살아가고 있어야만 되는 것 아닌가?
비록 얼굴은 2000살이나 되었으니… 많이 변하기는 하였겠지만…
아무튼 부활하여서 얻게된 그 목숨 만큼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야 되는 것 아닌가?

따라서, 죽음을 이겨냈다는 그 부활이 사실이라면?
나에게 그 점에 대하여, 대답을 좀 제대로 해 보라!는 것 뿐이다.
알겠는가?

만약에…만약에… 말이다,
그 때에 부활 하였다는 그 사람들이,
그 후, 몇일, 몇달 또는 몇년 더 살다가,
또 다시 병들고, 시름 시름 앓다가 죽어갔다면?
그런 부활이, 그 무슨 가치가 있을까나?
다시 죽어 갈 수 밖에 없는 그런 부활이라면?
그것은 결코 죽음을 이긴 것이 아니고,
단지, 그 죽음을 약간 뒤로 연기(延期)해 놓은 것 밖에 더 되는가?

그 목숨이라는 것을, 겨우, 몇일, 몇달,
또는 고작 몇년 더 연장하는 것이 전부였다면?
그것이 무슨 부활이며… 무슨 죽음을 이긴 것이며…
무슨 영생을 얻은 것이란 말인가?

만약에, 그 정도 수준의 부활이라면?
겨우 생명을 몇일 정도 연장하는 수준의 부활이라면?
산소 호흡기에 걸려 있는 목숨도, 그러면, 부활이라고 볼 수 있겠네?
그렇지 않은가?

부활의 그날을 그토록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모든 예수교도들은,
그런 식의 ‘산소 호흡기 수준의 부활’이나, 바라고 있는 것이나 아닐까?

나는, 그런 식으로는, 생명을 연장하고 싶은 마음이 추호도 없어서…
이미, 나의 유언장 (The Last Will) 에다, 다음의 문구를 집어 넣어 놓았다.

“I do not want to be kept alive on anything artificial means.
(그 어떠한 형태의 인위적인 수단으로도, 나의 생명을 연장 시키지 말아달라!)”

그렇다! Bible (기독경) 속에 나오는, 부활을 하였다는 그 사람들이,
지금 이 세상에 살아 있지 않다면?
그들은 이미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고, 생명이 없는 죽은 사람들이다,
그런데…
어떻게? 그들을, 죽음을 이기고 부활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을까나?

그리하여…
오늘의 내 이야기를, 간단하게, 결론 지어 놓으면… 다음과 같이 되리라…

Bible속에 부활 하였다고 묘사되어 있는 그 사람들도,
틀림없이, 그후, 얼마간 살다가 죽었을 것이다.
따라서, 다시 죽어야 되는 부활이라면?
그런 식의 부활이, 그 무슨 값어치가 있으며?
그것이 어떻게 죽음을 이긴 것이며?
그런 부활에 그 무슨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단 말인가?

——————

*필자 註 : 호칭에 관한 참고 사항

종교인의 호칭으로 쓰여지고 있는 영어에는, Reverend (Rev.) 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聖職이라는 의미가 아니고… ‘존경하는’ 이라는 의미다.
그런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직업에 따라, 몇가지가 있는데…
판사나 국회의원에게 붙이는 Honorable (Hon.)도 같은 맥락에서 나온 말이다.

[따라서, 성직이라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의 말이다.
聖職이라는 것은?
그 직업 자체가 聖스럽다는 의미이기에… 결코 타당한 말이 될 수 없다!
聖職이네, 聖職者네 하는 말은, 다른 것으로 고쳐져야만 된다.
이미, 내가 지적을 하였지만… 그 종교라는 말 자체도 잘못된 것이라서,
그것 부터 고쳐져야 되겠지만…
아무튼, 지금 부터 라도, 그 성직이나 성직자라는 말을,
종교직, 또는 종교직 종사자라고 하면, 그나마, 나을 것이다.]

모든 편지의 첫머리에, 하다못해, 전혀 모르는 사람,
또는 싫어하는 사람 앞으로 보내는 편지에도,
Dear OOO라는 단어를 반드시 쓰게 되어 있는데…
그 Dear (친애하는)라는 말을 썼다고 해서….
정말로 친애(親愛)하는 것으로 볼 수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직업이나 직위 앞에 붙여지는 호칭은, 단지,
형식적으로 쓰여지는 호칭일 뿐이다.

——————

소위 호칭(Title)에는,
이름 앞에 붙이는 것과 이름 뒤에 붙이는 것이 있다.

그 호칭을 이름의 앞이나 뒤에 붙임으로 해서,
그 사람의 직위, 학위, 계급, 신분 등등을 타인에게 알리는 것인데…

이름 뒤에 붙이는 것으로, 많이 쓰여지고 있는 것을
몇가지만 예로 들어 보면…

OOO, Esq. (Esquire 변호사)
OOO, M.D. (Medicinae doctor의사)
OOO, R.N. (Registered nurse 간호원)
OOO, M.P. (Member of Parliament 국회의원) 등등이 있다.

그리고… 편지나 문서를 보낼 때에 붙이는 호칭도,
이미 그 형식이 정해져 있어서…

Dear Mr. (or Madam) President (대통령 귀하)
Dear Mr. (or Madam) Secretary (장관 귀하)
Dear Governor (주지사 귀하)
Dear Judge (판사 귀하) 등등이 되는데…

이와같은 표현 속에는, 모든 인간의 평등 사상이,
그대로 나타나 있어서 아주 좋다!
민주주의의 장점은, 바로, 이런 데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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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종교계로 가면, 전혀, 달라지게 되어 있으니…

가장 쉬운 예(例)를 들어,
교황이나 추기경 신부 등등의 종교직으로 가면, 그 호칭이 어마 어마 해져서…
(어디까지나, 계급 사회이니까…)

Your Holiness (or Most Holy Father) (교황 성하)
Your Eminence (or Dear Cardinal) (추기경 예하)
Your Excellency (or Dear Bishop) (주교 각하)
Reverend Father (or Dear Father) (신부 귀하)
로 정해져 있다.

(만약에, 그대가 교황이나 추기경에게 편지를 보내야 할 일이 있으면…
참고로 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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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찬가지로… 그 왕족들의 호칭도 정해져 있어서,

Your Majesty; Sir or Madam (King or Queen의 경우)
Your Royal Highness (왕족들의 경우)
My Lord Duke (Duchess) (공작의 경우)
Dear Sir (Knight 기사나 영국의 훈공爵의 경우)
등등이 있다.

지금은 누구나 다 흔히 사용하고 있는,
그 Sir 나 Lady 라는 호칭만 해도,
영국에서는,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남자의 경우는 Baronet(准남작)이나
Knight (나이트, 기사) 작위 이상의 사람에게만 붙여 줄 수 있었을 뿐이고,
여자의 경우에는 Baroness(여자남작), Wife of knight 부터만 붙여졌을 뿐이다.

[영국 세습 계급의 최하위급이, 바로 Baronet (준남작) 인데,
이것은 Baron (남작)의 아래이고, Knight (기사)의 위이지만… 귀족은 아니다.
단지, 존칭으로 성명 앞에 Sir를 붙이고,
끝에 Bart.라고 쓰는 것이 원칙임 (보기: Sir John Doe, B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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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영국의 귀족 계급(Order of British Peerage)은 다음과 같다.

[Duke 는 Prince의 밑에 해당되는 것으로,
세습 계급 중, 가장 높은 계급이다.
(괄호안의 것은, 그것을 만들어 놓은 연도가 된다.)]

1. Duke or Duchess (1337)
2. Marquess, Marquis or Marchioness (1385)
3. Earl or Countess (c. 800-1000)
4. Viscount or Viscountess (1440)
5. Baron or baroness (c. 1066)

~ Sang Bong Lee, Ph. D,
Dr. Lee’s Closing Arguments,
Dr. Lee’s Lessons: Discovering Your N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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