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추어 두고 싶은 한국의 과거

2 (memorial arch, dedicated in 1917)
(Valley Forge Memorial Arch, dedicated in 1917)

2-2
(Valley Forge National Historical Park in PA.)

3 (railroad station)
(Railroad Station in Valley Forge)

감추어 두고 싶은 한국의 과거

~ 이상봉 / 철학박사, 문인

미국인들이 나를
“이 박사님, 이 교수님, 철학자님, Guru님, 선생님, 시인님” 이라고,
부를 때마다, 나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한다.

“그렇게 너무 높혀서 부르지 마쇼!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자세히 안다면…
아마도, 그렇게 부르고 싶은 마음이 많이 줄어 들거요.
그대들이, Korean War 라고 부르는 6.25 사변이 일어났을 때,
내가 5살 (정확히는 4살 10개월)이었는데…
그 때의 내 모습은… 아마도, 요즈음의 뉴우스에 나오는
아프리카(Africa)나 Afghanistan (아프카니스탄)의 피난민들 속에 나오는,
머리 빡빡 깎은 바싹 마른 소년의 행색만도 못했을꺼요.”

그렇다! 그런 모습의 어린소년이 다행히 죽지않고 살아 남아서,
이제는, 당신들이, 그 때의 그 어린소년을, 그렇게 높혀서 불러주고 있는데…
(하긴, 이제는, 이 세상의 어느 누구도, 그 소년을, 소년이라고, 불러 줄 수 없을 만치의
수많은 세월이 흘러가 버렸지만…)
그러고 보면… 과연, 어느 쪽이, 진짜의 ‘나의 모습’ 일까나?

아마도, 이 글을 읽게 되는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그 당시의 한국에 대하여 잘 모르겠지만…
이왕, 이런 이야기가 나온 김에, 다음의 이야기도 들려 주어야만 되겠다!
[따라서… 이 글에, 제목을 붙인다면…
‘감추어 두고 싶은 한국의 과거’가 될 것이리라!]

——————————-

이곳, 미국으로 와서, 몇년 살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서,
소위 그 영어학원이라는 것을 한국에서 운영하고 있는
어떤 사람의 부탁을 받고서…
이곳의 미국 신문에 ‘영어 강사 모집’이라는 광고를 내어 본 적이 있었다.
(1995년, 3월-4월, Philadelphia Inquirer & Daily News)

『 “영어 강사를 구함”
한국(South Korea)의 영어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칠 미국인을 모집 합니다.
반드시, 영어가 모국어이어야 하며,
정규 대학 졸업자 (학사 학위 이상의 소지자)에 한함.
봉급은 매월 $1000.00 이며, 봉급 외에,
왕복 비행기표, 아파트, 의료 보험 등등의 혜택이 있음. 』

위의 광고를, 이곳의 일간 신문에도 내었고,
또한 내 사무실의 벽에도 붙여 놓고서, 지원자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하루는, 다른 볼 일로 나를 찾아온 나이든 사람이 그 광고를 들여다 보더니…
“이 박사님! 저 광고에 들어 있는 월급이, 틀림없이,
U.S. Dollar (미국 달라) 겠지요? 한국 돈으로 1000이 아니라…”

“그럼요, 틀림없이, 미국 화폐로 천불 입니다. 그것은 제가 보증하지요!”

“그것 참! 정말로 믿을 수가 없군요. 세상이 이렇게 변하게 될 줄은…
내가 한국 전쟁 때인 1951-1952년에,
헌병(M.P)으로 그곳에서 근무를 하였는데,
그 때, 내가, 방 하나를 세들어 살았던 적이 있어요.
그런데… 그 때, 한달 방세를, 얼마 지불 하였는지 아십니까?
미군표(美軍票)로 10불을 내었습니다!
그것도… 방 하나만이 아니고, 사실은, 여자까지 끼어서 말 입니다.
여자와 방까지 합쳐서, 한달에 10불이면, 충분하였다니까요!”
“… ???”

“이 박사님이, 그 때, 얼마나 어렸는지 모르겠습니만…
이것은 절대적으로 사실 입니다! ”
“… ???”

나는, 그냥, 물끄럼히, 그 Mr. McDermott 의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을 뿐…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사실상 할 말이 없었다!
그것이 바로 한국의 산 역사임에야… 그 무슨 할 말이 있을까나?

그러고 보면…
그 때 5살 짜리 소년이었던 나는,
길(그 때에는 신작로라고 불렀지만)가에 서서,
오가는 차들을 쳐다보고 있었을 것이고…
저 백인은, 덩치가 커다란 미군 헌병(M.P)으로, 헌병 복장을 차려입고,
짚프차를 몰면서, 내 앞을 지나쳐 갔을지도 모르리라!

아무튼…
6.25 때에, 다섯 살이었던 그 소년은,
전쟁통에 죽지않고 자라나… 어찌 어찌 하다보니…
이곳 미국 땅으로 건너와서 살게 되었고…
지금은, 이곳 미국 땅에서, 그 당시의 한국 땅을- 전쟁 중의 한국 땅을-
다녀 온 미국인들을 이따금 만나보게 되어 있는데…

비록, 지금의 나는, 그 때의 그 소년이 아니고…
지금의 한국은, 그 때의 한국과는 많이 달라졌다고 치드라도…

아마도… 나는, 내가 죽는 날 까지,
위에서 나온 이야기와 비슷한 이야기들을 계속 들어야만 될 것이리라!

그리고…
그 때 마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물끄럼히 쳐다보는 것이 전부일 뿐이리라!

그렇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무런 말도 없이,
그냥, 그들의 얼굴을 물끄럼히 쳐다보는 것이 전부일 뿐이다!

~ Sang Bong Lee, Ph. D,
Dr. Lee’s Closing Arguments,
Dr. Lee’s Lessons: Discovering Your Nature,
Dr. Lee’s Iconocla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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