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어) 중용(中庸)이라는 것이 있다?

*이상봉 박사의 ‘철학과 영성이 깃든 이야기’

중용(中庸)이라는 것이 있다?

~ 이상봉 / 철학박사

중용(中庸, Doctrine of the mean) 이라는 말은,
중국의 고전(古典)이라는 사서오경(四書五經)에 나오는 말인데…
중국인들이 여기 저기서 널리 인용하고 있는
그 中庸이라는 말- 중용이라는 用語-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하긴, 四書五經을 ‘東洋의 고전’ 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듯이…
한국인과 일본인 中에도 중용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다.]

“중(中)은 양극(兩極)의 합일점이고,
용(庸)은 영원한 상용성(常用性),
즉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정이는
“치우치지 않는 것을 중이라 하고 바뀌지 않는 것을 용이라 한다
(不偏之謂中 不易之謂庸).”고 하였는데,
이것은 곧 中은 공간적으로 양쪽 끝 어느 곳에도 편향하지 않는 것이고,
庸은 시간적으로 언제나 변하지도 바뀌지도 않는 것을 의미한다.”

위의 해설을,
좀 더 쉽게, 요즈음 式의 언어로 풀어서 써 놓으면…
“어느 쪽으로도 치우침도 없고, 모자람도 없고,
또한 변하거나 바뀌지도 않는 상태가 중용(中庸)”
이라는 소리가 될 것이다.

이런 의미를 지니고 있는 그 中庸이라는 용어에 대하여…
내가, 그대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으니 바로 다음의 것이다.

[그대가,
中庸이라는 式의 한자어(漢字語)를 즐겨 사용하는 사람인지? 아닌지?
또는 중국의 사서오경이네 하는 것들에
어느 정도의 값어치를 두고 있는지? 어떤지?
또는 그러한 漢字語의 의미를 제대로 모르면서도
현학적(衒學的)으로 마구 사용하는 사람인지? 어떤지? 등등에 대하여,
내가 아는 바가 없으나….
아무튼, 한국 사람이라면, 그 누구나를 막론하고,
‘中庸’이라는 말을 수없이 많이 들어 보았고 또한 사용해 보았을 것 같기에…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일 뿐이다!]

“그대!
그대에게는 中庸이라는 것이, 과연, 존재할 수 있을 것 같은가?”

“인간의 삶 속에, 중용이라는 것- 중용의 상태라는 것-이,
과연, 들어 있을 수 있을 것 같은가?”

“인간의 생활 속에
‘어느 쪽으로도 치우침도 없고 모자람도 없고,
또한 변하거나 바뀌지도 않는 상태’ 라는 것이,
과연, 있을 수 있는가?”

내가 볼 때에…
그런 ‘중용의 상태- 중용의 길’ 이라는 것은
애시당초에 있지도 않고, 있을 수도 없다!

따라서,
있지도 않고… 있을 수도 없는… 그런 중용이라는 상태를,
바라고 있고, 찾고 있고, 云云하고, 언급하는 것 자체가…
이미 허황된 두뇌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서나 나올 수 있는
허망된 바람일 뿐이오, 희망사항일 뿐이오, 헛소리일 뿐이란다!

그렇지 않은가? 내 말이 틀렸는가?

그렇다!
내가 볼 때에,
中庸이라는 것이 있었더라면…
아니다! 그와 비슷한 것이나마 있었더라면…
인간사(人間事, 人間史)에 있는
모든 비극, 고난, 고생이라는 것은
아예 있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내가, 그대에게, 다시 한번, 물어 보겠으니…
그대의 영성계발을 위하여 솔직하게 대답해 보도록 하시라!

“인간들의 삶, 그 어느 구석에,
‘어느 쪽으로도 치우침도 없고 모자람도 없고,
또한 변하거나 바뀌지도 않는 상태’ 라는 것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그대! 그대 같으면, 그런 상태를 찾아 낼 수 있겠는가?”

[제발, 부탁하노니… 나에게 대답하려고 애를 쓸 것이 아니라,
그대 스스로에게 나마 솔직하게 대답해 보도록 하시라!]

~ Sang Bong Lee, Ph. D,
Dr. Lee’s Closing Arguments,
Dr. Lee’s Lessons: Discovering Your Nature,
Dr. Lee’s Iconoclasm (sblee707@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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