垓下歌(해하가) • 虞姬歌(우희가)

항우

垓下歌(해하가) • 虞姬歌(우희가)

~ 이상봉 / 철학박사

[항우(項羽, 232-202 BCE)의 詩- 해하가- 를 살펴보기 前에…
약간의 설명을, 미리, 해야만 되겠다.]

항우(項羽)는 오중(吳中) 일대에서 모집한
군졸(軍卒) 8,000명을 거느리고 거사(擧事)하여,
진(秦)나라를 멸망시키고,
스스로 楚覇王(초패왕, 西楚覇王)이라고 일컬으면서,
패업(覇業)을 이루기 위하여, 여러 전쟁을 하게 되었는데…
항우(項羽)는 초패王으로, 유방(劉邦)은 한왕(漢王)으로,
기치를 내걸고서, 서로 서로, 패권 다툼을 하게 되었다.

그 와중에 항우와 유방은, 광무산이라는 곳에서,
서로 마주 보고, 전쟁을 하게 되었는데…
전쟁의 승산과 결말이 쉽게 나지 않게 되자…
유방의 제의로
“楚漢(초한) 양군은 일제히 광무산으로 부터 동시에 철수한다!” 라고,
휴전조약을 맺게 되었다.

그 휴전조약을 믿고서, 그 휴전조약 대로,
광무산에서 철군(撤軍)하여 돌아가고 있는 항우軍의 뒤를,
갑자기, 유방軍 쪽에서 쳐들어 오는 바람에…

(유방 쪽에서, 그 휴전의 약속을 어기고서,
갑자기 공격을 하였으니…
그 때, 유방 쪽의 장군인 한신의 병력은 30만이었고,
그 한신의 병력 뒤쪽에는 유방의 본영이 자리잡고 있었다.)

유방 쪽의 포위망 속에 갇히게 된-
文字 그대로 사면초가(四面楚歌)에 갇히게 된-
項羽의 목에는 “황금 1,000냥과 만호(萬戶)의 봉토” 라는
현상금까지 걸려 있는데다가,
이미 각 지역에 그 사실이 널리 알려져 있었기에,
더 이상 숨을 곳을 찾을 수도 없었고,
포위망과 추격은 점점 더 조여 오고만 있었다.

그 때,
길을 일부러 잘못된 방향을 가르쳐 준 사람으로 인하여…
마침내, 막다른 포위망 속에 갇히게 되었는데…
그 곳이, 바로, 해하(垓下)라는 곳이었다.

이미, 전쟁의 형세가 기울어져,
자기의 앞날이 다된 것을 깨닫고, 참담한 심정으로,
項羽가 읊은 詩가 있으니 그것이 垓下歌(해하가)다.

史記(사기)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이 되어 있다.
“항우본기에 나오는 시다.
초나라 항우가 한나라 유방을 맞아 해하에서
최후의 결전을 치르던 날,
군대는 적고 먹을 것마저 떨어져 사면초가에 몰렸을 때,
자신의 연인 우미인과 술을 한잔 마시며 감개가 무량해서 시를 읊었다.”

—————————————-

垓下歌(해하가)
力拔山兮氣蓋世(역발산혜기개세)
時不利兮騶不逝(시불리혜추불서)
騶不逝兮可奈何(추불서혜가내하)
虞兮虞兮奈若何(우혜우혜내약하)

힘은 산을 뽑고 기개는 세상을 덮었다.
하지만 시운이 불리하고 추도 나아가지 않는구나.
추가 나아가지 않으니 난 어찌해야 하는가?
사랑하는 우희야, 너를 어찌하면 좋으냐?

[그야말로, 천하를 뒤덮을 기개를 가졌던 항우,
그의 애마(愛馬)였던 오추마마저 나아가지 않고 있는
그러한 절망 속에서,
옆에 있는 사랑하는 연인인 우희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과 애달픔을 드러내고 있는 시다.]

—————————————-

항우의 해하가를 들은 우희도,
항우의 칼을 빌려서 자살하기 前,
다음과 같은 화답(和答)의 詩를 불렀다고 되어있다.
(이 詩는, 초한춘추에 실려 있다)

虞姬歌(우희가)
漢兵已略地(한병이약지) 한나라 병사들이 이미 모든 땅을 차지하였고
四方楚歌聲(사방초가성) 사방에서 들리느니 초나라 노래뿐인데.
大王意氣盡(대왕의기진) 대왕의 뜻과 기운이 다하였으니
賤妾何聊生(천첩하료생) 보잘 것 없는 제가 어찌 살기를 바라겠나이까.

우희는 노래를 끝마친 뒤 항우의 검을 빼어 들고,
스스로 가슴을 찔러 자결하였고,
항우는 치미는 슬픔을 견디지 못하고
우희의 시신 옆에서 밤새도록 목놓아 울었다!고 한다.

—————————————-

항우의 그 뒷 이야기를 약간 더 첨부하면…

유방군의 포위망를 뚫고 나온 항우는,
말을 달려서, 마침내, 오강(烏江)이라는 곳에 도착을 하였고,
거기서 부터는 초(楚)의 지역이나 마찬가지인데…
그 곳의 정장(亭長- 亭子를 관리하는 사람)이
항우와 그를 따라온 그의 군사 26명을 건네주기 위하여
배를 준비하여 놓고서 이렇게 말했다.
“강동은 땅이 좁다고 하나,
사방 1,000里에 인구는 수십만 입니다.
이곳의 王이 되셔도 좋지 않습니까?
이 근처에서는 저 밖에 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漢軍이 추격해 온들, 아무도 건널 수 없습니다.”

항우는 웃고나서 말했다.
“하늘이 나를 멸망시키려고 하는데, 건넌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나는 8년前 강동의 젊은이 8천을 이끌고 강을 건너서 서쪽으로 갔었다.
그런데, 지금 단 한사람도 살아서 돌아오지 못했지 않은가?
비록, 강동의 부형들이 나를 불쌍이 여겨 王으로 추대해 준다 한들,
내가 무슨 면목으로 그들을 만날 수 있겠는가? 안되지!
그들이 아무 말을 않더라도, 내가 마음에 부끄러움이 없이
그대로 있을 줄 생각하는가?”

이어서, 항우는
“당신은 장자(長者)이시오. 아무것도 사례를 못하는 것이 유감이오.
변변치 못하지만 내가 아끼던 말- 추-를 받아 주시오.
하루에 1,000리를 달린 적도 있는 말이오.
이러한 名馬를 무턱대고 죽일 수는 없으니,
제발 받아 주시오.” 하였다.

그리고,
자기의 부하를 돌아보며
“우리, 이곳에서, 싸우자꾸나!
칼싸움으로 죽는 것이 남아 대장부의 숙원이 아니겠느냐?” 하였다.

그리고 나서,
그 강가에 숨어서 기다리고 있다가,
뒤 따라 추격해 온 漢軍의 기병대가 나타나자,
항우 스스로 칼을 잡고, 수백명을 죽였고,
마침내, 스스로 자결을 하였다!고, 기록이 되어 있다.

그 때가 202 BCE로, 그의 나이 30 이었다.

[사족:
項羽의 비극적 최후를 애석하게 여겨,
천년 후에, 바로 그 자리를 찾아서,
詩를 한 수 남긴 사람이 있으니…
그 詩에 나오는 유명한 문구가 바로
“병가불가기(兵家不可期)” “권토중래(捲土重來)” 라는 것이다.
그것에 대한 것은 다른 기회에 살펴보기로 할까?]

~ Sang Bong Lee, Ph. D.
Dr. Lee’s Closing Arguments,
Dr. Lee’s Lessons: Discovering Your Nature,
Dr. Lee’s Iconoclasm
* All rights reserved and copyrighted.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