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거이의 비파행(琵琶行) + 퇴고(推敲)

2-4

2-5

(시 소개, 4-2)
백낙천(백거이)의 비파행(琵琶行)

~ 이상봉 / 철학박사, 문인

[*지난 회에서 계속됨.
항우(項羽)의 詩 때문에 시작된, 몇몇 중국 詩에 대한 소개는,
이번의 ‘비파행’으로 마무리 짓도록 하겠다.]

백거이(백낙천, 772년 ~ 846년)는,
글쓰기에서 강조되고 있는 퇴고(推敲)에 관한 것으로도,
널리 알려진 사람이다.
그는 詩를 짓고 나서는, 그 詩를 동네 노파에게 들려 주고서는
노파가 알아듣지 못하면, 알아 들을 때까지,
글을 뜯어 고쳤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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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볼 때에,
일반 사람들이 알아 두어야 될 것은,
백낙천의 비파행이라는 한시(漢詩)보다는…
퇴고(推敲)라는 단어가 될 것이다!

퇴고(推敲)- 원고(原稿)를 고치는 것-
詩文을 지을 때 자구(字句)를 여러번 생각하여 고치는 것-
즉 글을 쓰고 난 뒤에, 문장을 다듬고, 어떤 어휘나 단어가
더 적절한가?를 살피고 고치는 것-을 ‘퇴고(推敲)’ 라고 하는데…
이것을 ‘추고’ 라고 읽는 사람도 있다.

[推敲를 ‘추고’라고 발음해야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비록, 현재에는 推라는 漢字를 추(옳을 추, 밀 추)라고,
主로 발음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例(예)를 들어보면,
推擧(추거), 推究(추구), 推理(추리), 推論(추론), 推移(추이),
推進(추진), 推薦(추천), 推測(추측), 類推(유추) 등등이 있지만…
원고를 고치는 것은, 옛날 부터, 퇴고라고 불러왔기 때문에,
퇴고라고 부르는 것이 맞다.]

이 말의 유래는, 당시기사(唐詩紀事) ‘가도(賈島)’ 편에 나온다.

당나라 때 詩人인 가도(賈島)가,
어느 날 노새를 타고 길을 가다가,
문득 詩想(시상)이 떠올라 詩를 짓기 시작했다.

“이응의 그윽한 거처에 붙인다(題 李凝幽居)” 라는 詩였는데…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
閒居隣竝少, 草徑入荒園. 鳥宿池邊樹, 僧敲月下門.
[한가로이 사니 이웃도 드문데,
풀숲 오솔길은 거친 정원으로 들어가네.
새는 연못가 나무에서 자는데,
중이 달 아래에서 문을 두드린다.]

가도가 친구인 이응을 만나러 갔다가
그를 만나지 못한 감정을 노래한 것인데…
가도는, 이 詩의 “중이 달 아래에서 문을 두드린다(僧敲月下門)” 에서…
‘중이 문을 민다’는 의미의 ‘추(推)’가 좋을지?
아니면 ‘중이 문을 두드린다’는 의미의 ‘고(敲)’가 좋을지? 를,
놓고서, 깊이 생각하면서 가다가…
그만, 당시 경조윤(京兆尹•수도의 장관)이었던 한유의 행차길을
침범하게 되어, 끌려가게 되었다.

가도는 당황했지만,
자신이 길을 비키지 못한 까닭을 상세히 말하자…
유학자인 한유는 잠시 생각하더니
“민다(推)고 하는 것보다는, 두드린다(敲)고 하는 게 나을 듯하다!” 고,
자기의 의견을 말했다.
가도는 그 한유의 제안을 받아들여
그 시구를 “두드린다(敲)”로, 정(定) 하였고…
그 두사람은 시우(詩友)- 문학적인 친구-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다시 말해서…
퇴(推)냐? 고(敲)냐? 를 놓고서, 고민하고 생각하였다!는 것에서…
원고를 고치고 다시 다듬는 것을
‘퇴고(推敲)’ 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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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거이의 詩는 그의 생전에 이미 널리 퍼져서,
배운 사람들에서 부터,
저잣거리 장삿꾼, 농부들 까지 두루 애송할 정도였다니,
그의 인기와 명성을 쉽게 짐작할 수 있을 정도다.
그리고, 그의 詩는 중국뿐만 아니라 같은 시기인 통일신라와
나라시대인 일본 땅에서도 무척 인기가 좋아서,
그의 작품은 거의 동시대에 유행이 되었다!고 한다.

명나라 때 편찬된 당시선(唐詩選)은
唐詩의 입문서나 다름없는 책이지만…
백거이의 詩는 통속적이란 이유로 빼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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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파행;
816년에 당나라 시인 백거이가 지은 대표적인 서사시이다.
비파 연주를 시로써 표현한 부분은 가히 발군이라
오늘날까지도 비파행을 중국의 명시로 손꼽는 이유이다.
고전 詩들 중 名詩를 뽑으면 몇 首가 나오는데…
그 중에서도 백미라 할 만한 시가 바로 ‘비파행’이다.
안타까운 처지인 사람을 동정하고
감정이입하는 시인의 마음을 잘 표현하였다.

서문에서는 시를 지은 계기를 설명한다.
백거이가 배를 타고 가다 시골에서는 듣기 힘든
세련된 도시풍 비파 연주를 듣고 반하여 여인을 가까이에 부른다.
여인의 속사정이 있어 들어보니, 과거엔 잘나가던 기녀였으나
지금은 장사치의 부인이나 되어 시골로 은퇴하여
쓸쓸하게 살아가는 처지에 한을 품고 연주한다는 것이었다.
화자인 백거이는 여인의 구슬픈 비파 연주에 감동한데다,
사실 자기도 좌천되어 시골에 내려온 처지라
여인의 이야기를 들으니
지금 자신의 모습도 슬퍼지고 안타까워 울었다는 내용이다.

주장시 사람들은 구강장강대교(九江长江大桥) 옆에
비파정(琵琶亭)을 지어,
백거이가 여기서 비파행을 지었음을 기렸다.

琵琶行: 비파의 노래

尋陽江頭夜送客 (심양강두야송객)
심양강에서 밤에 손님을 보내는데
楓葉荻花秋瑟瑟 (풍엽적화추슬슬)
단풍잎, 물억새 꽃에 가을이 소슬하네.
主人下馬客在船 (주인하마객재선)
주인도 (손님과 함께) 말에서 내려 손님 배에 같이 타
擧酒欲飮無管絃 (거주음주무관현)
술을 들어 마시려는데 음악이 없네.
醉不成歡慘將別 (취불성환참장별)
취하였으나 기쁘지 않고, 떠나보내야 하나 서글퍼서
別時茫茫江浸月 (별시망망강침월)
이별할 적에 아득히 강에 달이 잠기더라.
忽聞水上琵琶聲 (홀문수상비파성)
홀연히 물 위로 비파 소리 들리는데
主人忘歸客不發 (주인망귀객불발)
주인은 돌아감 잊고 손님은 가질 않네.
尋聲暗問彈者誰 (심성암문탄자수)
소리 찾아 나직히 “누구 연주요.” 물으니
琵琶聲停欲語遲 (비파성정욕어지)
비파 소리 멈추되 대답을 저어하네.
移船相近邀相見 (이선상근요상견)
배 옮겨 다가가 만나보고자 하니
添酒廻燈重開宴 (첨주호등중개연)
술 더하고 등불 켜 잔치 다시 열었네.
千呼萬喚始出來 (천호만환시출래)
천번 만번 부르니 비로소 나오는데
猶抱琵琶半遮面 (유포비파반차면)
여전히 비파를 안고 반 정도 얼굴을 가리었더라.
轉軸發絃三兩聲 (전축발현삼량성)
굴대 감고 현 튕겨 두세 번 소리 내는데
未成曲調先有情 (미성곡조선유정)
아직 곡조 이루지 않았는데도 이미 정이 있네.[7]
絃絃掩抑聲聲思 (현현엄억성성사)
현마다 가리고 누르니 소리마다 생각이 있는 듯하고
似訴平生不得志 (사소평생부득지)
평생토록 뜻 얻지 못함 하소연하는 것만 같네.
低眉信手續續彈 (저미신수속속탄)
고개 숙이고 손에 맡겨 계속 연주하니
設盡心中無限事 (설진심중무한사)
마음속 다함없는 것들 악기 속에 담겼네.
輕攏慢撚撥復挑 (경롱만연발부조)
가볍게 누르고 느리게 쓰다듬어 다시 타니
初爲霓裳後六么 (초위예상후육요)
처음은 예상이요 나중은 육요로다.
大絃嘈嘈如急雨 (대현조조여급우)
큰 줄은 뚜웅뚜웅 마치 소나기인 듯,
小絃切切如私語 (소현절절여사어)
작은 줄 띠잉띠잉 재잘거리는 말인 듯하네
嘈嘈切切錯雜彈 (조조절절착잡탄)
뚜웅뚜웅 띠잉띠잉 여러 소리 섞이니
大珠小珠落玉盤 (대주소주락옥반)
큰 구슬 작은 구슬 옥쟁반에 떨어지는 듯하네.
間關鶯語花底滑 (간관앵어화저활)
꾀꼴 꾀꼬리 소리 꽃 밑에 미끄러지고
幽咽泉流氷下灘 (유열천류빙하탄)
졸졸 흐르는 샘물이 얼음 아래 지나기 힘든 듯하네.
氷泉冷澁絃凝絶 (빙천냉삽현응절)
얼어붙은 샘물이 막히듯 현도 멈추는데
凝絶不通聲暫歇 (응절불통성잠헐)
멈춰도 통하지 않아 잠시 소리가 그치네.
別有幽愁暗恨生 (별유유수암한생)
깊은 근심 남모를 한 다시 생기는데
此時無聲勝有聲 (차시무성승유성)
이때는 소리 없음이 소리 있음보다 낫네.
銀甁乍破水漿迸 (은병사파수장병)
은병이 갑자기 깨져 물이 쏟아지듯
鐵騎突出刀槍鳴 (철기돌출도창명)
철기병 뛰쳐나가 창칼 소리 나는 듯하네.[9]
曲終抽撥當心劃 (곡중추발당심획)
곡 끝나자 손 거두어 가슴 쓸어내리니
四絃一聲如裂帛 (사현일성여열백)
비단 찢듯 4줄이 한 소리 내네
東船西舫悄無言 (동선서방초무언)
동쪽 배와 서쪽 배 잠잠히 말이 없고
唯見江心秋月白 (유견강심추월백)
강물 한가운데 밝은 가을 달만 보이더라.
沈吟收撥揷絃中 (침음수발삽현중)
시름에 잠겼다가 비파를 거두는데
整頓衣裳起斂容 (정돈의상기염용)
옷을 정리하여 일어나서 용모를 가다듬더니
自言本是京城女 (자언본시경성녀)
스스로 이야기했네. 본디 서울 여자로
家在蝦螞陵下住 (가재하마릉하주)
집은 하마릉 근처에 있었는데
十三學得琵琶聲 (십삼학득비파성)
열세 살에 비파 배워 다 이루었고
名屬敎坊第一部 (명속교방제일부)
이름이 교방 제1부에 있었지요.
曲罷常敎善才服 (곡파상교선재복)
곡 타고 나면 스승들이 탄복하고
妝成每被秋娘妬 (장성매피추랑투)
화장 하면 매번 추랑이 질투했네요.
五陵年少爭纏頭 (오릉연소쟁전두)
서울의 귀하신 자제들이 앞다투어 들은 값을 주니
一曲紅綃不知數 (일곡홍초부지수)
한 곡에 붉은 비단 셀 수가 없었지요.
鈿頭銀蓖擊節碎 (전두은비격절쇄)
전두와 은비녀 박자 맞추다 부서지고
血色羅裙翻酒汚 (혈색나군번주오)
핏빛 비단 치마 술에 더럽혀졌지요.
今年歡笑復明年 (금년환소부명년)
올해도 즐겁게 웃고 이듬해도 그러하니
秋月春風等閒度 (추월춘풍등한도)
가을달 봄바람도 헛되이 보냈지요.
弟徒從軍阿姨死 (제주종군아이사)
후배 기녀 군에 가고 기생어미 저승 가고
暮去朝來顔色故 (모거조래안색고)
저녁 가고 아침 오니 미색은 옛것이 되었네요.
門前冷落車馬稀 (문전냉락거마희)
문 앞이 적막하여 수레며 말(馬) 탄 손 없으니
老大嫁作商人婦 노대가작상인부
나이 들어 시집가 상인의 아내가 되었지요.
商人重利輕別離 (상인중리경별리)
상인은 이익을 무거이, 이별을 가벼이 여겨
前月浮梁買茶去 (전월부량매다거)
지난 달엔 부량으로 차(茶) 사러 떠났네요
去來江口守空船 (거래강구수공선)
(남편이) 떠난 후 강어귀에서 빈 배만 지키니
遶船明月江水寒 (요선명월강수한)
배 둘러싼 달은 밝고 강물은 차갑지요.
夜深忽夢少年事 (야심홀몽소년사)
깊은 밤에 문뜩 어릴 적 꿈을 꾸고는
夢啼粧淚紅闌干 (몽제장루홍란간)
꿈 때문에 울었더니 화장한 얼굴에 붉은 눈물이 줄줄 흘렀나이다.
我聞琵琶已歎息 (아문비파이탄식)
나는 비파 소리 듣고 탄식하는데
又聞此語重喞喞 (우문차어중즉즉)
또 이 이야기 들으니 거듭 우울해졌네.
同是天涯淪落人 (동시천애윤락인)
우리 모두 머나먼 곳에서 영락해버린 사람이니,
相逢何必曾相識! (상봉하필증상식)
꼭 서로 알아야만 만나겠는가!
我從去年辭帝京 (아종거년사제경)
나는 지난해부터 황제계신 서울을 떠나
謫居臥病潯陽城 (적거와병심양성)
심양성에 귀양 와 살며 병들어 누웠다네
潯陽地僻無音樂 (심양지벽무음악)
심양 땅은 외지고 음악도 없고
終歲不聞絲竹聲 (종세불문사죽성)
일년 내내 악기 소리 듣지 못하였네.
住近湓江地低濕 (주근분강지저습)
사는 곳 분강에 가까워 낮고 습하니,
黃蘆苦竹遶宅生 (황로고죽요택생)
시든 갈대와 고죽이 집을 둘러싸 자랐네.
其閒旦暮聞何物? (기간단모문하물)
그 사이에 아침 저녁으로 무엇을 들었던가?
杜鵑啼血猿哀鳴 (두견제혈원애명)
두견새 피 토하고 원숭이 슬피 우는 소리라네.
春江花朝秋月夜 (춘강화조추월야)
봄 강에 꽃피는 아침, 가을 달 뜨는 밤
往往取酒還獨傾 (왕왕취주환독경)
이따금 술 가져다 또다시 혼자 기울였네.
豈無山歌與村笛 (기무산가여촌적)
촌스런 노래며 시골 피리 소리가 어찌 없으랴마는
嘔啞嘲哳難爲聽 (구아조찰난위청)
조잡하고 시끄러워 듣기가 괴롭더라.
今夜聞君琵琶語 (금야문군비파어)
오늘 밤 그대의 비파 소리 들었는데
如聽仙樂耳暫明 (여청선악이잠명)
신선의 음악을 듣는 듯하여 귀가 잠시 맑아지네.
莫辭更坐彈一曲 (막사갱좌탄일곡)
사양 마시오, 다시 앉아 한 곡 타기를
爲君翻作琵琶行 (위군번작비파행)
그대 위해 ‘비파행’을 지으리다.
感我此言良久立 (감아차언양구입)
(여인이) 내 말에 감동하여 한참을 서 있는데
却坐促絃絃轉急 (각좌촉현현전급)
다시 앉아 운지를 달리하니 현이 더욱 팽팽해져
凄凄不似向前聲 (처처불사향전성)
애절하고 애절하여 이전 연주보다 더하니
滿坐聞之皆掩泣 (만좌문지개엄읍)
모두들 다시 듣고 (얼굴을) 가리어 흐느끼는데.
就中泣下誰最多 (취중읍하수최다)
그 자리에서 누가 가장 많이 눈물 흘리는가?
江州司馬靑衫濕 (강주사마청삼습)
강주 사마의 푸른 적삼이 축축해졌더라.

위의 詩에서 묘사하는 상황과 배경을 좀 더 설명하면 이렇다!

백거이는 815년에 구강군 사마로 좌천되었다.
이듬해(816) 손님이 찾아왔다가 돌아가는데,
백거이는 배웅하고자 같이 말을 타고 심양강에 가서 배에 같이 탔다.
그 배 안에서 환송연을 여는데 음악이 없어서 아쉬워하는 차에
놀라운 솜씨로 비파를 연주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근처에 있는 배에서 나는 소리라
백거이 일행은 배를 움직여 그 배에 다가가,
연주자에게 나와 달라!고 요청하고, 부랴부랴 잔치 준비를 다시 한다.
한참을 부탁하니 얼굴을 비파로 가린 여자가 나와
백거이네 배로 옮겨 타더니 자리에 앉아 비파를 연주한 뒤
자리에서 일어나 자기를 소개한다.
자기는 본디 장안 사람으로 한때 장안에서 이름난 기녀였으나,
나이가 들자 상인의 아내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백거이는 그 동안 벽촌에서 제대로 된 음악을 듣지 못해 괴로웠다.
그런데 여기서 뜻하지 않게 뛰어난 비파 연주를 들어 감탄하고,
그 여인의 처지에 안타까워하며,
자신도 좌천되어 이렇게 되었음을 새삼 느끼고는 슬퍼한다.
그리하여,
여인에게 ‘비파행이란 이름으로 시를 쓸 테니,
다시 자리에 앉아 연주해달라!’고 부탁한다.
여인도 감격하여 다시 자리에 앉아 더욱 애절한 곡조로 연주하니
배 안의 청중들이 듣고 모두들 흐느끼는데,
백거이 자신이 제일 많이 울었다!는 것이다.

~ Sang Bong Lee, Ph. D.
Dr. Lee’s Closing Arguments,
Dr. Lee’s Lessons: Discovering Your Nature,
Dr. Lee’s Iconoclasm.
* All rights reserved and copyrigh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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