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詐欺)의 대명사(代名詞)가 된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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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詐欺)의 대명사(代名詞)가 된 종교

~ 이상봉 / 철학박사

자! 이쯤에서 잠깐 쉬어가는 시간을 가져 볼까나?

Robinson Crusoe(로빈손 크루소, 1719) 라는 작품으로,
널리 알려진 작가인 Daniel Defoe (1660-1731)의
시(詩)나 한 首(수) 읽어 볼까?

Whenever God erects a house of prayer
The devil always builds a chapel there;
And it will be found upon examination,
The latter has the larger congregation.
(하느님이 기도하는 집을 세워 놓으면,
악마가 꼭 그곳에다가 예배당을 지어 놓는다.
그것이 어떻게 증명 될 수 있느냐 하면?
예배당 쪽에만 수많은 신자들이 모여드니까!)

~ In “The True-Born Englishman (1710)”

그런데…
그대! 그대는, 휴식(休息)을 위하여 읽어 본
Daniel Defoe의 詩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가?
머리를 식히기는 커녕, 오히려, 머릿속만 더 복잡해졌는가?

혹시 그대가,
그 詩의 ‘깊은 내용’을 이해 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는데…
조금도 걱정하지 마시라!

내 글을 계속 읽어 나가다 보면,
저절로 이해가 될 수도 있으니까…

혹시, 서양사람이 쓴 詩가 되어서 이해하기 힘들다면…
그렇다면, 이번에는 동양사람의 것을 가지고서,
그대의 이해력에 도움을 주어 보기로 할까?

사람들이 많이 모여 드는 곳이란?
바로, 이런 곳이다!

무착(無着)이라는 중이 문수보살(文殊菩乷)에게 와서 인사를 올렸다.

「“어디서 오셨는가?”
“남쪽에서 왔습니다.”
“그 쪽, 남쪽의 교세는 어떠 합니까?”
“덜된 종교 지도자들이 나서서, 계율을 잘 지키라고, 야단입니다.”
“사람들은 얼마나 모이나요?”
“교인들이 제법 많아서, 삼백 명,
또 어떤 때는 오백 명까지도 모여 듭니다!
그런데… 문수보살님이 계신 이곳의 교세는 어떻습니까?”
“앞에 두 셋, 뒤에 두 셋.”」

문수(文殊) 보살은, 석가모니의 수제자로 ‘지혜를 대표’하는 사람이었다.

그와 같은 최고 수준의 “지혜의 사자후(獅子吼)”를 가지고서도…
일반 사람들을 모여 들게 하기란 어렵다는 소리다!

그렇다!
대중들, 일반사람들은, 진리, 지혜에는 관심조차도 없다!

眞理(진리)가 있는 곳에는, 그 어느 곳이나,
앞에 두 세 명, 뒤에 겨우 두 세 명 정도가 모여 들 뿐…
모든 자리가 텅텅 비게 되어 있다!

그 반면에,
덜된 종교 지도자, 약장사 같은 수준의 엉터리들이,
지도자라고 자처 하면서,
“계율을 지키면 복(福)을 받는다!”
“계율을 지켜야만 극락을 가게 된다!”라는 식으로 떠들면서…
천당, 구원, 강복, 영생, 사업 번창, 자식의 출세, 행복 등등을
약속하고, 보장 할 수 있다!고 외쳐대면…
그 때에는, 사람들이 꾸역 꾸역 모여 들어서,
교세(敎勢)가 몇 만명 씩이나 번창하게 되어 있다!

그렇다! 사실이 그렇다!

원래 대중들이란, 진리에는 관심조차도 없고,
오직, 만복(萬福) • 잘 먹고 잘 사는 것 • 죽지도 않고 영원히 사는 것
등등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니까!

그렇기 때문에, 바로 그 점을 이용하다 보니…
종교 자체가 바로 ‘사기(詐欺)의 대명사(代名詞)’ 처럼
되어 버리게 된 것이다.

알고 보면?
수요(需要)과 공급(供給)의 관계일 뿐이다!

종교를 더럽히는,
그 종교 자체를 그렇게 더럽히는 것들이,
바로, 그 질병치료 • 강복 • 신비 • OO신학 • 奇蹟(기적) •
異蹟(이적) • OO학설 • OO운동 등등 이다!

그대들이 떠들어대고 있는
그 종교(宗敎)의 기본 바탕에는 딱 두가지가 있을 뿐이다!

“진리(眞理)와 사랑(charity)!”
내가, 말하는 ‘진리’라는 것은?
바로 그 종교 자체의 ‘자명함’이며,
‘Charity(사랑)’이라는 것은?
오직 남을 위하여 ‘행함(action)을 베푸는 것’ 뿐이다!

그 外에 것들은, 알고 보면, 모두 다,
사이비 사업체의 정관사항(定款事項)일 뿐이다. 알겠는가?

명상에 관한 것 • 영적인 것에 관한 글 속에는,
늘 “진짜의 경험(Through your own experiences)을 통하여” 라는,
말이 나오게 되어 있는데…
내가 이야기하는 ‘진짜의 경험’이라는 말의 뜻에 대하여,
잠깐이나마 관조(觀照)하여 보기로 하자!

명상, 영성(靈性)에서는
“지식, 지적으로 암기해서 아는 것”은 아무런 가치도 없다!
그런 식의 지적인 암기사항은 공부만 하면,
그 누구에게나 있게 되는 Record된 지식의 축적일 뿐이다.

내가 이야기하는 ‘진짜의 증험(證驗)’이라는 의미는,
체험을 통하여서 갖게 된- 스스로 찾아서 경험하게 된-
‘느낌, 경험, 후회, 고통, 기쁨’ 등등을 말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나도 안다! 나도 확실히 안다!” 라는, 말을 하지만…
정말로, 확실하게 알고 있다는 것은,
“직접 불에 데어 본 경험과 고통을 가지고 있기에…”
그래서, 그 누가 뭐라고 해도,
다시는 불속에 손을 넣어 볼 생각 조차도 하지 않는,
그러한 지식- ‘진짜의 경험을 통하여 얻게된 지식’
을 말하는 것이다.

[ *이상봉의 “더러운 宗敎, 못된 神. Pp. 145-149” 에서 인용]

~ Sang Bong Lee, Ph. D.
Dr. Lee’s Closing Arguments,
Dr. Lee’s Lessons: Discovering Your Nature,
Dr. Lee’s Iconoclasm.
* All rights reserved and copyrigh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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