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哲學)과 신학(神學): 철학자와 종교인

World Trade Center


철학(哲學)과 신학(神學): 철학자와 종교인

~ 이상봉 / 철학박사

I. 그리스도교 와 불교

‘동양의 종교’ 와 ‘서양의 종교’가 서로 다를 수 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그 차이점을, 보다 간단하고 명확하게, 설명하기 위하여…
서양의 Christianity(그리스도교)와
동양의 Buddhism(불교)를 예로 들어 보기로 할까?

그리스도교는 한마디로 “이야기를 믿는 종교다!”
그렇다! 아무 것도 필요없이
“예수에 관한 이야기를 무조건 믿어야만 한다!”는,
종교가 바로 그리스도교다.

따라서, 그대가 그리스도교도가 되고 싶다면?
그대는 무조건
“2천년 전에 중동지방에서 태어난 예수라는 남자가,
하느님의 독생자였으며,
그곳에서 30여년 살면서 여러가지 기적을 행하다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으나,
3일만에 부활하여 승천하게 되었으며…”
라는 이야기를 믿어야만…
그대는, Baptism을 받아서 Christian으로 될 수 있다!

Christianity에서 그토록 중요시 여기는,
“사도신경 (Apostle’s Creed)”이라는 것이
바로 그 “이야기” 아닌가?
그런데…
그 남자에 관한 이야기가, 어찌하여, 그렇게나 중요해야만 될까?

[소위 그 역사(歷史)라고 하는 것- 그 지나간 인류의 기록- 이라고 하는
History 라는 것을… 농담으로 ‘남자 이야기 (His + story)’ 라고 한다.
왜냐하면, 사실상, 온통 男子들의 이야기로만 잔뜩 구성되어 있으니까…]

그런데,
Christianity(그리스도교)야 말로 더욱이나 더
‘그 남자 이야기’를 굳게 믿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기독교도가 되려면?
무조건, “예수에 관한 이야기”를 받아 들이고 믿어야만 되지…
“아니? 죽었던 사람이 어떻게 다시 살아날 수 있으며,
어떻게? 그 사람만 하느님의 독생자이고 구세주란 말이냐?”
하는…
Sensible (상식과 건전한 판단력이 있는),
Reasonable (결정이나 선택을 하는데에 있어서,
실제적인 이성을 활용할 수 있는 합당함을 지닌),
Rational (이지적이고 합리적인) 머리와
논리(論理)를 가지고 따져 보았자…
그대에게 차례 오는 것은 “믿음이 없는자”
또는 “영원히 지옥에 떨어질 놈” 이라는 소리 밖에 없다!

[더군다나, ‘유아세례(幼兒洗禮)’ 라는 것은?
아예 갓난 아이가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줄도 모르는데도,
일방적으로 Baptism(세례)를 주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여러가지의 종교들 중에서 유독 그리스도교도들만
‘태중교인’ ‘모태신앙’ 이라는 것을 내세우고 있다.
‘종교의 대물림’에 관한 것은, 다른 기회에 다루어 보겠다.]

예수에 관한 모든 이야기를 믿는 것으로 부터,
‘그리스도교’는 시작되는 것이기에…
“Christianity is a history-based religion.
(그리스도교는 이야기 위에 세워진 종교)”
라고 하는 것이다.

하긴,
학문이 아니고, 소위 종교(So-called, religion)일 뿐이니까…
뭐 그럴 수도 있다고 치자!
그러나… 그래도, 이 말은, 하고 넘어 가기로 하자.

“상식과 이성이 전혀 통하지 않는 곳에,
그 무슨 진리인들 통할 수 있겠는가?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자기네 것만 眞理라고 외치고 있으니…
이 얼마나 황당한 짓이며, 또한 뻔뻔스러운 짓인가?”
~李相奉(The analects of Sang Bong Lee, Ph. D.)

이 세상의 모든 종교에는 창시자가 있다.
불교(佛敎)에도 물론 창시자가 있다.

그 창시자인 Buddha(c.563-483 BCE) 에 관한 이야기가-
출생에서 부터 죽음에 이르는 역사적인 이야기가-
오히려 예수의 경우보다 훨씬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다.

[옛사람들의 生歿(생몰)연대라는 것은 구전되어 오는 것에 따라서 서로 다르기에,
여러가지 說(설)이 있을 수 밖에 없기에…
석가모니의 경우도 (1) 563-483 BCE와 (2) 480-400 BCE가 있는데…
나는 前者(전자)를 택하였으며…
그 점을 밝히기 위하여 c (controversial, 논쟁이 되고 있는, 의문의 여지가 있는)
이라는 표시를 붙이는 것이다.]

(왕자로 태어나서, 29살에 출가하여, 35살에 깨달음을 얻고,
그후 무려 45년간을 가르치다가 80세에 죽음).

그러나,
그와 같은 석가모니의 History를 믿는 것과
佛敎信者(불교신자)로 되는 것과는 하등의 관계도 없다.
사실상, 佛敎人에게 있어서, 석가모니의 History는
단지 부수적인 그냥 ‘이야기 꺼리’일 뿐이지,
믿어야 할 필요도 없고, 그런 것을 믿는다고 해서,
성실한 佛敎人이라는 소리를 듣는 것도 아니다.

佛敎徒(불교도)들이 지켜야 하는 것은?
석가모니의 이력서가 아니고…
그 종교의 기초를 이루고 있는 교리와 계율에 따라서,
얼마나 합당하게 수행하고 실천하고 있는가?에 있을 뿐이다.

이와같은 이유에서…
佛敎는 History-based religion 이 아니고,
“철학적인 종교”라고, 흔히, 부르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佛敎에서는 소위 그 ‘이야기 꺼리’를 무조건 믿는다!고 하는,
그 Faith (맹신적인 믿음)라는 것은 필요가 없다.

II. 철학자와 예수와의 차이점

Socrates (470-399 BCE)
Stonemason (石手, 석수)로 생계를 이어간 사람이라서,
사실상 철학(哲學)으로는 단 한푼의 돈도 벌지 못하였다!고 하는데…
그 사람도 손수 글을 써서 남긴 것은 하나도 없다.
그의 말, 그의 철학이라고 전해져 내려오는 모든 것들은,
모두 다, 다른 사람들을 통하여,
특히 그의 제자인 Plato (c.428-347 BCE)를 통하여, 후세에 전해진 것이다.

Jesus Christ (예수 그리스도)
Carpenter(木手, 목수)였는데,
그 역시 손수 글을 써서 남긴 것은 하나도 없다.
그의 말, 그의 가르침이라고 전해져 내려 오는 모든 것들은,
다른 사람들, 그의 제자들을 통하여 후세에 전해진 것이다.

여기까지는, Socrates 와 Jesus Christ 가 거의 같은데…
다른 것이 있다면?

철학자인 Socrates는 Delphi Oracle (신탁소)에서,
자기를 ‘현인 中의 현인’이라고 선포하였을 때에,
“이것은,
단지, 내가 ‘아무 것도 모른다는 사실’
을 알고 있기 때문에,
주는 것이다” 라고, 이야기 하였다.

반면에,
종교가인 예수는 자기 스스로
“I am the way, and the truth, and the life;
no one comes to the Father, but by me. – John 14: 6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라.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어느 누구도 하느님께로 갈 수 없다.)”

라고 말했다.

그렇다!
철학자 Socrates의 말은 논리적 이성적으로 합당하기 때문에,
철학적으로 가치가 있으나…
종교가(宗敎家)인 Jesus Christ 의 말은,
비록 전 인류의 거의 절반 가량이 그를 숭배하고 있을지라도…
논리적 이성적 철학적으로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사실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여러가지 사전 중에,
Oxford University Press (옥스포드 대학 출판사)에서 발간한,
철학사전(Philosophy: 1010 pages)이 있다.
세계적으로 널리 사용되는 대단히 권위있는 사전인데…
그 사전 Pp.836-838 에 걸쳐서, Socrates에 대한 것이 들어 있다.
그러나, Jesus Christ 또는 Christ 라는 단어는,
아예 단 한 글자도 그곳에 없다!
마찬가지로… Christianity (그리스도교)에 대한 것도,
단 하나의 글자 조차도 그 사전에는 없다!

그렇다면… 단순히 종교인이고 또 종교이기 때문일까?
아니다! 왜냐하면? 엄연히 같은 종교인데도
Buddhism: Buddhist Philosophy에 관한 것은?
Pp.107-109에 걸쳐 길게 설명이 되어있다!

아직도, 내가 제시한 사실적인 例(예)가 미심쩍다면…
그럼 다른 책을 찾아 보기로 할까?

영어 상용권 대학에서 사용되는 철학교재 출판사로
가장 유명한 Blackwell Publishers Ltd 에서 발간한
Companion to Philosophy (총 p.786) 속에도,
역시, Jesus Christ는 없다! 하다못해 Index 에도 없다!

자! 이제야 알겠는가? 그 엄연한 차이점에 대하여…

[그리스도교도 중에서, 철학史에 처음으로 올라간 사람은?
Augustine (아오스팅 354-430 CE)이다.
그가 철학史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작품 The Confessions (400 CE)과 The City of God (413-426 CE) 때문이다.
한국어로는 “참회록(懺悔錄)”과 “신국(神國)”이라고 번역되었다.

Augustine의 참회록은, 세계 최초의 자서전으로…
자서전 분야에서는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작품이다.
그리고, 그 “神國”이라는 것으로 인하여,
그리스도敎에도 철학적인 체제가 어느 정도, 그 맛이나마 볼 수 있게끔,
도입되게 된 작품이다.
그래서, 그리스도교도들이 필독해야 될 작품으로 되어진 것이다.

그리스도교도들이여!
내가 친절하게 가르쳐 주겠노니…
제발, 그 목사들의 시시한 수준의 설교나
또는 약장수 같은 내용의 테이프나 방송에,
그대의 귀중한 시간을 빼앗기지 말고…
이런 책들도 좀 읽어 보도록 하시라!]

그대! 그대는 아직도 ‘철학적’으로,
그 누가, 그 누구를, 구원(救援)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가?
그 누가, 그대 대신 죽어 줄 수 있다!고 믿고 있는가?
그 누가, 그대의 죄(罪)를, 대신하여 죽어줄 수 있다고 믿고 있는가?

종교와 철학의 차이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어느 누가, 여러가지 기적을 행하고, 죽은 자를 여러명 살려냈고,
또한 손수 부활을 했다!고 주장할지라도…
그런 것들은?
그것에 대한 믿음(Faith)을 가진 자들에게는 대단한 것이겠지만…
이성, 논리, 철학하고는 거리가 먼,
사실상, 아무런 상관 조차도 없는 것임을 기억해 두시라!

————————————

내가, 이 기회에,
조금 어려운 이야기가 되겠지만서도…
그래도, 해야만 되는 것이 있으니…
“한국語에는 수동태(受動態)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어로는 분명히 “Jesus was resurrected.” 라고, 되어 있는 것이…
한국語에서는 “예수가 부활했다!”로 된다.

즉, 서양語에서는 원래가
“ Jesus was resurrected.
(예수는 부활을 당하였다. 예수는 부활하게 되어졌다!)”
로 되어있다.

즉, 예수는 스스로의 능력으로 부활한 것이 아니라…
“부활을 당하였다”고, 분명하게, 기록이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사람들은 “예수가 부활했다!”
고, 알고 있게 되어버린 것이다.

이 두가지에는, 서로 간에,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다!

즉, 예수는 하느님에 의하여
“부활을 당하게 되어진 것 (受動態)” 이지…
예수가 “스스로 부활을 한 것 (能動態)”
이 아니다!
바로, 이 사실을, 결코, 잊지 마시라!

이미 죽은 者(자)가 “스스로 부활했다! (능동태)”는 것과
하느님에 의하여
“부활을 하게 되어졌다. 부활을 당하였다! (수동태)” 라는 것은…
그 차이가 어마 어마할 정도가 아니라…
아에, 그 차원 자체가 전혀 다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인들이나 서양사람들이 받아 들이는
예수의 능력이나 수준하고…
한국인들이 믿고 있는
예수의 능력이나 수준하고는…
근본적으로, 전혀, 다르게 형성되어 있게 되는 것이다!

그대! 한국말을 쓰고 있는 한국사람인 그대에게는
“죽은 예수가, 스스로 벌떡 일어나고,
스스로 부활을 할 만큼의 能力과 實力이 있는 그런 사람”
으로,
각인(刻印)되어 있겠지만서도…

서양인들, 미국인들에게는
“죽은 예수가, 스스로 벌떡 일어나고,
스스로 부활을 할 만큼의 능력과 실력이 있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
단지 하느님에 의해서 ‘부활이 되어진 그런 사람’”일 뿐이란다.

————————————

자! 아무튼, 분명한 것이 있으니…
내 말은, ‘믿지 말아라!’ 하는 것이 아니다!
종교적으로 신앙적으로는 얼마던지 믿어라!

그러나,
그런 Faith (맹신적이고 맹목적인 믿음)는…
Belief (믿을만 하기에 믿는 것)와
Reason (理性, 이성)과는 전혀 다른 것으로,
아무런 상관도 없다!는 것을, 나는 지적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철학과 소위 종교를 구분할 줄 알아라!
(Distinguish philosophy from so-called religion!)

나는, 종교를 철학자의 입장에서 보고 글을 쓰고 있기에…
제목부터가 “철학자가 본 종교” 라고 되어 있음을 결코 잊지 말아라!

내가, 기독교 신자일까? 아닐까?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내 글 때문에 속이 불편해 지는 사람들은…
대개가 그점을 구분할 줄 모르고,
오직 ‘예수에 충성하는 글이냐? 아니냐?’만 따지면서…
무조건, 맹목적으로, 공격하기에 급급한데…
그런 행동은 단지 자기 자신의 영성(靈性)만 해치는 짓이 될 것이다.]

III. 종교철학(哲學)과 신학(神學)의 차이

철학에는 분명히
종교철학(The Philosophy of Religion)이라는 분야가 있다.
그 이유는, 이곳에 ‘종교’라는 것이 엄연히 있기 때문이다.

쉽게 설명을 하여보면…
龍(용 Dragon)이라는 것은, 실제로, 존재하는 동물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심청이가 살았다!’고 하는 그 龍宮(용궁)이라는 곳도,
실제로 존재하고 있는 곳이 아니기에,
지리학上 그 龍宮이라고 하는 곳이 존재 할 수가 없듯이…
생물학 속에 ‘용학(龍學)’이라는 것은 있을 수 조차도 없으나…
세균(細菌, bacteria)이라는 것은,
제 아무리 작아도, 엄연히 존재하고 있기에,
‘Bacteriology, 세균學’ 이라는 것은 있다!
사람의 눈에는 도저히 보이지 않는 Virus(바이러스)라는 것도,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것이기에,
Virology(바이러스學, the study of viruses) 라는 것도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종교의 교리가 있고, 종교단체가 있고, 종교의식이 있으니까…
따라서, 그런 것 만큼은 엄연히 존재하는 Reality 이니까…
철학적인 연구 대상이 되기에,
그런 것을 연구하는 분야가, 바로 종교철학이다!

하지만,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
오직 假說(가설 Hypothesis) 속에나 있는 것,
상상과 공상과 망상 속에서나 존재하는 것,
또는 실제로는 존재하지도 않는 데도 ‘그냥 있다고 믿는 것’
등등은…
학문의 대상이 될 수도 없고,
철학의 대상이 될 수는 더욱이나 더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神(신 God)에 대한 학문이란 것이, 과연, 가능한 것일까?

‘신이 존재한다 (God exists)’
‘나무가 존재한다 (Tree exists)’ 에서…
‘존재한다(exist)’는 말이 과연 똑같은 말이라고 생각하는가?

‘하느님이 있다’
‘백악관이 있다’ 에서,
‘있다’라는 말이, 똑 같은 의미라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소위 그 ‘神學(신학)’이라는 것의 진짜 정체는 무엇일까?
과연, 神學에서 ‘연구 대상의 실체’는 무엇인가?

‘없는 것의 연구인가?’
‘없지만 있는 것으로 상상하고 연구하는 것인가?’
‘神의 연구인가 (Study of God)?’
‘神에 관한 연구 (About the God) 인가?’
‘오직 神을 믿는 종교단체를 위한 侍女(시녀) 노릇인가?’
‘같은 가설(假說)을 믿는 사람끼리의 공허한 구호인가?’

God (神) 이라는 것은,
“本體(본체 noumenon)”에 이미 원천적인 의문점이 있기 때문에…
절대로 과학적인 연구와 조사의 대상이 될 수가 없다!
(God is not a phenomenon available for scientific study.)
그런데도 불구하고…
神學(신학)이라는 것도, 학문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는가?

I dare you not to laugh at this nonsense!
(나는, 이런 말도 않되는 짓- 비상식적인 짓-에
당신들이 웃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나,
“神을 연구 대상으로 한다! 神을 연구한다!”는,
그 말도 안되는 엉터리 학문인
神學(신학)이라는 허깨비와는 달리…
그 神을 간판으로 내걸고 있는 종교단체(religion)라는 것 만큼은,
얼마든지, 정밀 연구조사 대상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엄연히, 우리 주위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기에,
조사와 연구의 대상이나 목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Religion is object of intensive investigation.)

따라서,
종교단체, 종교의식, 종교교리 등등에 관해서는
얼마든지, 연구와 조사를, 철저히, 할 수 있으나…
한 때는, 그들의 세력이 막강하여,
인류의 영혼 위에 까지 군림하면서…
그 어떠한 학문적인 접근, 지식, 연구, 조사를 피하면서
쓸데없는 “신성함”까지 누렸던 적이 수없이 많았다!

그러나,
모든 학문적인 Provocation (도전, 도발)은
사실상, 모든 인류에게
큰 도움과 유익한 것(salutary)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 세상에, 나쁜 지식이라는 것은 있을 수 조차도 없다.
모든 지식, 학문, 지혜는 그대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것이다!

종교단체에서는 지식을 기피하는 경향이 짙고,
理性的이고, 論理的이고 철학적인 접근까지도 기피하고 있는데…
그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듯이… 순수한 의도라고 볼 수가 없다!
(~ Problems in Theism, Sang Bong Lee, Ph. D.
La Salle University, 1998. 에서.)

그리고, 어디 그뿐인가?
神學(신학)이 과연 ‘神에 대한 학문’이라면…
이 세상의 온갖 종류의 神-
기독교신, 귀신, 총각귀신, 처녀귀신, 무당신,
뒷간귀신, 얼어 죽은 귀신, 물귀신 등등의 모든 神
-에 대하여…
두루 두루 공평하게 다루어야만 되지 않을까? 그렇지 않은가?
내 말이 틀렸는가?

자! 직접 현실을 들여다 보기로 할까?
이곳, 즉 나의 칼럼 “철학자가 본 종교”가 연재되고 있는
이곳- 한국의 대표지식사- 에서…
직접, 나와 對面(대면)을 하지 않는 곳이라는 얄팍한 생각에서…
바로, 그러한 단 한가지 이유에서…
“이상봉 박사가, 神學에 대하여 잘 모른다!”고,
깐죽거리는 Comments를 올려 놓은 牧師(목사)가 있는데…

그렇다면…
貴下(귀하)가, 그토록, 잘 알고 있다!고 하는,
그 ‘그리스도 神學’ 이라는 헛깨비를 가지고서…
나하고, 제대로 된 토론을 정말로 하겠다!고, 나서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가만히 있기에는 어쩐지 귀하의 자존심이 상하기에…
얼굴을 감춘 상태로 그냥 한번 깐죽거려 보기만 하는 짓인가?
그리고, ‘그리스도 神學’ 이라는 것이
과연,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그런 ‘학문’ 이라고, 주장하려는 것인가?

소위, 그 神學(신학)이라는 것을 내세우고 있는 者(자)들이
떠드는 것을 보면…
神(God) 자체에 대한 Reality 는, 사실상, 단 하나도 없이,
오직, 그 神을 모시는 종교- 有神敎-에서 제정한 敎理(교리)와
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갖추어만 된다!고 하는,
그 믿음(faith- 맹신적인 믿음)에 대한 것일 뿐임을 상기하기 바란다!

그렇다!
한마디로 해서… “믿습니까? 믿어야만 됩니다!” 라는,
그 공허한 외침 外에 또 뭐가 있는가?
따라서, 그러한 식의 神學이라는 것은,
그런 하찮은 것을, 같이 믿고 있는 사람끼리나,
서로 서로 만나서, 북치고 장구쳐야 되는 것일 뿐이다!

그렇다!
제대로 된 일반적인 학문답게,
모든 연구가 Open 되어 있는 것이 아니기에…
즉, 애시당초에 학문으로 취급 할 수가 없기에…
討論이고 論爭이라는 것 자체를 할 수 조차도 없는 것임을
결코 잊지 마시라!

자! 더 이상 그 무슨 군소리나 잔소리를 할 것도 없다!
내가, 써놓은 논문 中에 “Theology의 문제점 (1996)” 이라는
Thesis가 있으니… 그것을 참조하여 보도록 하시라!

나는, 철학, 종교철학, 명상에 관한 글을,
미국內의 여러가지 출판물에, 1996년도 부터,
정기적으로 발표해 오고 있어서…
자연히, 다방면으로, 모든 종파의 종교인들과도 교류가 적지 않으며,
따라서,
不偏不黨(불편부당)하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런지, 다행스럽게도…
지금까지 철학적으로 빗나간 적이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찌된 일인지?
문예작품 위주의 글을 발표하는 곳의 수준이야,
뭐, 그럴 수 있다!고 치더라도…
이곳은 엄연히 “한국의 대표지식사” 라고,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 글에 대한 Commentary 로
몇 몇의 예수쟁이들이, 함부로 기어 오르고 있는데…
[아마도, 내 글에다,
아무나 또는 누구나 Comments을 달 수 있게 되어 있기 때문인 모양 같은데…]

알고보면…
바로, 그런 짓이, 그 한국식의 텃세(?) 라는 것이나 아닐까?
아니면,
서로 만나 볼 일이 전혀 없는,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사이라서…
그래서, 몰래 숨어서, 그런 짓을 하고 있는 파렴치한 짓인가?

나는, 한국을 오래 전에 떠나온 사람이라…
昨今(작금)의 한국에, 얼마나 많은 예수교의 성직자들이 있으며,
또한 그들에게 소위 그 ‘기독교 신학’이라고 하는 것 外에,
철학다운 ‘종교철학 지식’이,
과연, 어느 정도나마 들어있는지? 모르겠으나…

그런 식의 호전적이고, 남을 훔집내려는 파렴치한 짓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어허… 이게 아닌데…’ 하는 탄식이
저절로 나오는 것을 어찌할 수가 없다!

자기의 직업이, 비록, ‘牧師(목사)’라고 해도 그렇지…
生物學과 哲學을 전공으로 하고 있는 나에게,
“기도를 많이 하라!” “회개하고 예수를 영접하라!”
“아직 神을 체험하지 못하였네”
하는 식의 Comments는…
적절치 못한- Irrelevant (본질에서 빗나간)- 것일 뿐이다!
그렇다! 창피하지도 않는가? 그런 비열한 짓이!

내가, 신성(Divinity)을 체험 하였는지?
Ineffable (불입문자)한 경험이 있는지?
그들이 어떻게 판단하고 그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야말로…
자기만의 억측(conjecture)과 추측을 ‘속에다 가지고 있질 못하고’
이렇게나 공공연하게 함부로 떠들어도 되는 것인가?
그렇게 속들여다 보이는 짓을 해도 되는 것인가?
정녕코, 그대들은 챙피한 것도 모르는 그런 사람들인가?

Anything believed by a Christian
in contradiction to Christianity was heresy.
(그리스도교인이 제 아무리 큰 믿음을 갖고 믿어도,
교리에서 벗어난 것은 異端일 뿐이다.)

라는, 이상한 기준이 예수교에는 있기는 하지만서도…

그래도 그렇지….
과연? 언제까지나, 그렇게, 다른사람을 함부로 Judgment 할 것이며…
또 다른사람을 심판하는 그러한 엉터리 Criterion (기준, 자격조건)은
과연 누구에게서 받았단 말인가?
도대체, 어느 누가 부여(賦與)해 주었단(granted) 말인가?

성직자에게, 또는 종교 지도자에게,
일반사람을 심판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따라서,
그런 식의 Comments를 쓴 사람과
그리고, 앞으로 쓸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에게,
나는 이렇게 떳떳하게 말하고 싶다.

“나의 것과 귀하의 것이, 서로 ‘다르다’고 해서…
그 다른 것을 ‘틀린 것’이라고 하는 태도는 크게 잘못된 것이다!
그러니까… 그런 식의 논평은 자제하여 주시기 바란다!
그러나,
학문적인 도전이나 도발만큼은 언제라도 환영하고 기꺼이 받아 들이겠다!”

IV. 결론

자! 이 글의 결론을 이쯤에서 내려야만 되겠다.

眞理(진리)라는 것이, 그 어떤 질문이나 깐죽거림이나
철학적으로 빗나간 Comments나 Remarks 에 대하여,
두려워한 적이 있었는가?

그렇다!
학문(學問)과 硏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Reason(理性)을 통하여 나온 결론이
Cogency(이유, 추리가 적절하여 설득력이 있는 것) 이어야 되는 것이다!

The insistence on reason is one of the Hallmarks of Philosophy!
(理性의 강조가 바로 철학의 표시다!)
The Business of Philosophy is not to give Rules,
but to analyze the private judgments of common reason. –
Immanuel Kant (1724-1804)
(철학이 하는 일이란, 규정 규칙 따위를 정해 주는 것이 아니고,
理性을 통하여 개인적인 심판과 판단을 분석하게 하여 주는 것이다.)

끝으로…
나의 강의실 출입문턱 위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붙어 있다.

“Let no one enter here who is ignorant of
‘rational mind’ & ‘reasonable thinking’.”
(합리적인 마음과 理性的인 사고력이 없는 자의 입장을 금함.)

마찬가지로…
내 글을 읽으러 들어 오시는 분들이여!
(*You are cordially welcomed to visit!)

“본인 스스로… 자기는
‘合理的인 마음과 理性的인 思考力이 없는 사람’ 이라고 생각되시면…
제발, 내 글에다 아무런 Comments도 하시지 마시고,
그냥, 지나치시는 것이,
서로 간에, 좋을 것 같지 않습니까?”

Sang Bong Lee, Ph. D,
Dr. Lee’s Closing Arguments,
Dr. Lee’s Lessons: Discovering Your Nature.
* All rights reserved and copyrighted
(무단 복제 사용을 금함)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