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한번 따져 봅시다!

Grand Canyon, cliff

Grand Canyon, Ariza, USA

Grand Canyon, Horseshoe Bend, Arizona, USA

Father and Son:

I would rather have you know me merely as the result of
One of my father’s early experiments.
– Charles Edison (1890-1969, American politician, businessman,
U.S. Secretary of the Navy, 42nd Governor of N.J.)
(Son of Thomas A. Edison (1847-1931, American inventor, businessman.)

[나는 말야, 당신이 나를,
‘나의 아버지가 행한 실험의 결과물 中의 하나일 뿐’ 이라고,
단지, 그렇게만 알아뒀으면 좋겠구만.

– 찰스 에디슨 (1890-1969, 미국 정치인, 사업가,
미 해군 장관, 42대 뉴저지 주지사.)
(그는, 토마스 에디슨 (1847-1931, 미국 발명가, 사업가)의 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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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lla Nasrudin was sitting under a tree chatting with a neighbour,
when his boy came up the road carrying a chicken.
“Where did you get that chicken?” Nasrudin asked his boy.
“Stole it,” said the boy.
Mulla Nasrudin turned to his friend and said proudly,
“THIS IS MY BOY. HE MAY STEAL, BUT HE WON’T LIE.”

나스루딘이 나무밑에 앉아서 이웃사람과 한가하게 잡담을 나누고 있는데,
닭을 들고 오는 그의 아들이 길위에 나타났다.
“어디에서 얻은 닭이냐?” 하고 나스르딘이 묻자,
“제가 훔친 거지요.” 라고 아들이 대답했다.
그러자, 나스르딘이 이웃사람을 쳐다 보면서,
아주 자랑스럽게 말을 하는 것이었다.
“얘가 바로 내 아들이라오!
비록 훔치기는 하지만, 거짓말은 하지 않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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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글은 “아버지와 아들”에 대한 농담같은 이야기를,
내가, 인용한 것인데…
이 기회에, 한번, 깊이 생각하여 볼 것이 있기는 있다!

한국이라는 나라에서는…
그 옛날에야 漢字(한자)라는 중국 글자를 배워야만 되었으니,
즉, 나라와 사회의 모든 환경이 그렇게 되어 있다! 보니…
그 漢字의 敎材(교재) 속에 들어 있는 말들을,
어쩔 수 없이, 배우고 익혀야만 되었다!

그리하여,
그 敎材(교재)라는 책속에 들어 있는 온갖 말들이,
아주, 귀중한 가르침이나, 꼭 지켜야만 되는 예법(禮法)으로,
각인(刻印)되고 세뇌(洗腦)가 되어서,
그것들을 철저하게 模倣(모방)하고 또한 흉내나 내면서,
따라 하려고 하지 않았는가?

그렇다!
그 敎材 속의 인물들을,
위대한 성현(聖賢)이네 뭐네 하면서-
공자의 말씀이네, 맹자의 말씀이네, 증자의 말씀이네 하면서-
그야말로, 아주 높히, 떠 받들게 되었고…
모든 문화 속에 그렇게 뿌리 내리게 되었던 것이 아닌가?

[내 생각에는,
漢字를 배우기 위하여… 敎材(교재)로 사용 하였어도…
어디 까지나 漢字를 배우는 것으로 끝냈으면 그만이었을 것을…
그들의 주장과 언행을 숭상하고 떠받들면서, 그것도 모자라서,
그대로 모방이나 하고, 흉내를 낸 것이, 문제라는 소리다!

그 점은, 다른 외국어도 마찬가지이니…
영어나 스페인어도 敎材를 통하여,
그 해당 언어만 제대로 습득하고 끝내면 되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한글이라는 글자가 엄연히 있는 지금 현재는 어떨까?

지금, 현재도, 사실상, 그 漢字(한자)라는 것을,
여전히 계속 사용하고 있다보니…
그 잔재(殘滓)가 고스란히 그대로 이어져 오고 있지 않은가?
도대체, 변한 것이 뭐가 있단 말인가?

그리하여,
그런 類(류)의 말이나 알고 있는 것을,
마치, 그 무슨 대단한 知識(지식)이나 되는 듯이 내세우면서,
수시로 읊조리고 있는 者(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실제로…
학교 다닐 때의 조회나 훈시(訓示)나 도덕(道德) 시간에…
그 얼마나 지겹도록 들어 보았는가?
그래서…
중국과 한국이 그토록 도덕과 예의가 바르고…
충효(忠孝)가 깊은 그런 사회가 되었던가?
]

우리 한번 진지하고 또한 솔직하게 따져 보기로 하자!

그들의 말이, 과연, 뭐가 그리 대단한가?
그들이 주장한 예의범절(禮儀凡節)과 그들의 언행(言行)이,
뭐가, 그렇게 값어치가 있단 말인가?

자! 아주 간단하게, 다음의 말을, 짚어 보기로 하자!
한국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다, 줄줄이 외고 있는 말들:

“신체발부 수지부모(身體髮膚 受之父母).”
“有朋自遠方來(유붕자원방래) 不亦樂乎(불역낙호).”

그대! 그대에게도 위의 말이 대단한 말로 느껴지는가?

만약에 말이다,
위의 말이, 또는 위와 같은 類(류)의 말들이…
진정으로, 대단하고 귀중한 가르침으로 느껴진다면?
그 이유를, 나에게, 말해 보도록 하시라!

그대의 주장을 듣고나서…
나는, 나의 생각을 그대에게 들려 줄테니까!

~Sang Bong Lee, Ph.D.,
Dr. Lee’s Closing Arguments,
Dr. Lee’s Lessons: Discovering Your Nature,
Dr. Lee’s Iconoclasm.
Dr. Lee’s an effable and ineffable.
All rights reserved and copyrigh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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