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異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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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異端)

~ 이상봉 / 철학박사

우선, 이단(異端, heresy)이라는 단어에 대한 설명부터 해야 되겠다.

異端(이단)이라는 영어 단어 heresy는,
Greek(그리스語) “hairesis”에서 유래된 것인데,
hairesis는 “choice (선택)”이라는 의미다.

따라서, 고대 그리스(Greece) 시대 때에도,
“다른 의견이나, 다른 사상을 가르치는 학교를 선택(choice)”하는
의미로 쓰여졌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 선택(選擇)이라는 의미의 단어가,
종교 단체로 들어와서는,
異端(heresy)이라는 의미로 쓰여지게 되면서…
아주 많은 ‘말썽과 비극’을 가져오게 되었으니…

이 ‘이단(異端)’이라는 단어를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고,
또한, 가장 큰 무기로 애용하고 있는 단체가 바로 예수敎(교)다!

하지만, 잊지 말고 기억해 둘 것은,
바로, 그 예수교(Christianity)라는 것이,
처음에는, 다름 아닌, 엄연한 異端(이단)이었을 뿐이라는
사실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唯一神(유일신)을 내세우고 있는 예수교(Christianity)에서는
애당초 부터 그리고 지금도 그렇지만…
“이교도(Pagan) • 이단자(heretic) • 이설(異說)” 등등의 용어를,
아주 많이 사용했으며…
또한 그만치 차별과 처벌을 많이 했다!

CE 2세기쯤에, Gnosticism(영지주의 靈智主義)이라는 思潮(사조)가,
예수교 內에서, 예수교도들 사이에서, 두루 퍼지게 되자…
예수교에서는 ‘영지주의(靈智主義)을 예수교의 이단’으로
단정하여 버렸는데, 그 이유는 간단하다.

Gnosticism(靈智主義)가 내세우고 있는 다음의 2가지가,
예수 교리와 달랐기 때문이다!

① 이렇게 불완전한 세상을 만들어 놓았다!는 그리스도敎의 창조주 보다,
더 높은 차원의 Supreme Divine을 찾아야 한다.
② 구원(救援)은, 예수를 통해서만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Gnosis(영지)와 같은 knowledge(지식)을 통해서도 가능하다.

따라서…
이 思潮는, 소위 지식계급, 理性的이고 理智的인 사람들,
철학적인 사고력의 소유자들 사이에서는,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가 있었지만…

소위 타력종(他力宗) 에 매달리고 있는 사람들이,
主를 이루고 있고,
또한 교회의 세력을 잡을 수 밖에 없게 되어 있다 보니…

“예수를 구세주로 믿고,
예수를 통해야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예수교의 교리로 부터,
Gnosticism(영지주의)는
Christian heresy (그리스도교의 이단)으로 취급되고,
배척을 받게 되어서…

더 이상의 조직이나 집단의 형태나
宗派(종파)로는 발전되지를 못하고,
교회에서는 자취를 감추게 되면서…
단지, 소수의 사람들 사이에서나,
또는 개인적인 修行(수행)으로만
겨우 명맥을 유지하게 되었을 뿐이다.

그 당시에, 이 思潮(사조)에 관여했던 사람들로,
널리 알려진 인물로는 Valentinus, Basilides, Marcion등이 있었고…
그 후에는,
개인적인 修行(수행)으로만 겨우 명맥이 유지되어 내려왔을 뿐이다.
정신 분석학으로 유명한 Carl Jung(1875~1961)도 그 사조의 소유자였다.

이쯤에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될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동양의 종교에는- 동양에서 발생한 종교에는-
異端(이단)이라는 개념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In East religions, there is little room for a concept equivalent to heresy.)

그렇다!
Hinduism(힌두교)에도, Buddhism(불교)에도,
수많은 宗派(종파)가, 물론, 있기는 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異端(이단)이라고, 斷罪(단죄) 하지는 않고 있다!

서로 간의 차이점- 그러한 diversities(다양성, 상이점, 변화)-를
바라보고 취급하는 그 근본 바탕이,
서양의 종교와는, 전혀, 다르다!고 볼 수 있겠다.

그 근본적인 이유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내가 볼 때에는, 내가 들려 줄 수 있는 理由(이유)는,
소위 그 輪廻說(윤회설)이라는 것이,
가장 큰 역활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해서,
모든 것은, 본인 자신의 業(업)- karma(카르마)-에 따른 것이니…
이 生에서 잘못된 것을 믿으면,
다음의 生에서 業障(업장)을 받게 될 것이고…
(If truth is denied or despised in this life, an appropriate rebirth will…)

라는 式으로…

모든 것을, 전적으로,
개인의 선택에 맡기려는 경향이 뿌리 깊게 박혀 있기에…
소위 그 ‘異端(이단)이네 뭐네 하는’ 기준 자체에,
집착하지 않게 될 수 있었기 때문이리라!

다시 말해서…
소위 “유일신이네, 오직 구세주네, 절대 진리네… 하는 것”에서,
훨씬, 자유로울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만치, 그러한 교리적인 기준 조차도,
보다, 너그럽고, 또한 제한적인 면이 적었기 때문이다.

Guardians of truth might be expected
to be more relaxed about conformity.

실제로, 서양의 종교는,
아주, 제한적인(Restrictive) 용어들로 구성되어 있지 않은가?

오직, YHWH만이 ‘유일(唯一) 神’이다!
오직 예수만 ‘하느님의 독생자’다!
‘예수를 통하지 않고서’는 어느 누구도 천국에 들어 갈 수 없다!

La ilaha illa llah (no god but God).
Allah 만 위대하다!
마호메트만 Prophet일 뿐이다!

유태인만 ‘선택된 민족’이다! 등등이…

모두 다, Restrictive(제한적인) 용어일 뿐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단(異端)”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① 자기가 믿는 이외의 도(道)
② 전통, 권위에 반항하는 설(說)이나 이론(理論)
③ 정통교회로 부터 공인되지 않은 교파
등등을 일컬어서 흔히 이단이라고 하는데…

좀 더 쉽게 설명하면 이렇게 될 것이다.
“이미 자리잡고 있는 것,
내가 믿고 있는 것,
그것 외(外)의 것은, 이단이다!”

하지만, 다시 한번 생각하여 보기로 하자.

설명을 쉽게 하기 위하여… 아주 비근한 例(예)를 들어보면…
기존 세력이라고 할 수 있는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말 대답 하지 마라!” “어른한테 덤비지 마라!”라고 외치는 경우가
아주 흔한데…

그 때가 언제인가? 하면,
아이들과의 논쟁이나 언쟁에서 지게되면, 나오는 말이 아닌가?

마찬가지로…
기존 세력, 기존 교리, 기존 교회에서,
아주 당당하게, 상대방의 주장을 쉽게 이길 수 있거나,
상대방을 아주 쉽게 설득 할 수 있을 경우에는…
절대로 “이단이네, 사이비네”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는다.

굳이, 그런 말을 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여유롭게, 상대방을 제압하고 설득할 수 있으니까,
그런 용어를 사용할 필요조차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
상대방의 새로운 이론(理論) • 이설(異說) • 변화 • 발전 등등에,
휘둘리게 되면…
그 때에는, 비장의 무기를 빼어들고, 크게, 외치게 되어 있으니…
“저것은 이단(異端)이다!”라는 것이다.

하지만, 깊이 생각하여 보자!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단체들이,
처음에는, 모두 다, 이단이 아닌가?
처음에, 이단(異端)이 아닌 것이 어떻게 있을 수 있는가?

그렇다!
예수교(Christianity) 자체도, 처음에는, 異端(이단) 이었다!
예수가 처형을 받게 된 것도, 유태인의 전통과 달랐기 때문이다!

그뿐이다!

그러니까…
잘못이 있고 없고, 많고 적음에 따라서,
처형이나 처벌을 받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그 내막을 들여 다 보면, 단지, 서로, ‘다른 것’일 뿐이다!
바로, 그 ‘다른 점’을 핑계 삼아서, 처벌을 하는 것일 뿐이다.

[言語의 차이점을, 제대로, 확실하게, 구분 하여야만 된다.
‘다른 것(Difference)’과 ‘틀린 것(Wrong)’은
전혀 다른 의미의 말이다.]

마찬가지이다.
어른이 아이에게 화를 내는 것을 보면…
아이의 행동이나 반응이, 자기의 期待(기대)와 다르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이래야만 된다! 이래야만 되는데…”라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

겉으로는 “너 하나 잘돼라! 고, 그러는 것” 이라고, 변명하겠지만…
사실은, “아이가 어른의 말이나 권위를 인정해 주지 않는 것”이
못마땅해서 화풀이를 하는 것일 뿐이다.

내 말을 믿지 못 하겠으면,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보기 바란다!

만약에 말이다…
그대가 진정으로 상대방(아이, 학생)을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에
꾸짖고, 罰(벌)을 주었다면?
진정으로 상대방의 앞날과 발전과 도움을 위해서만
꾸짖고, 罰(벌)을 주었다면?
罰을 많이 줄수록, 매를 많이 들수록,
그대 가슴 속에,
기쁨과 후련함과 사랑이 넘쳐 나와야 될 것 아닌가?

아이를 때리고, 처벌할 때 마다…
그리고, 때리고 나서도…
그대의 가슴 속에 “내가 참 잘했다!”라는,
기쁨 내지는 喜悅感(희열감)이 솟아 나와야 될 것 아닌가?
왜냐하면,
상대방을 사랑하기 때문에, 오직, 상대방을 위해서 그랬을 뿐이니까!

깊이 觀照(관조)해 보시라.
과연? 그대의 가슴 속에 喜悅感(희열감)과 성취감이 가득 하든가?

그대들이 믿거나 말거나…
모든 종교 전쟁은,
“그대들을 어떻게 하면 天國(천국)으로 들여 보내 줄까?”하는
그런 방법을 위해서, 서로, 싸우는 것이 아니고…
그 내막을 알고 보면,
단지 “고객 수의 확보”에 있는 것일 뿐이다!

자! 이제야 내 말을 어느 정도나마 알아 들었는가?

~Sang Bong Lee, Ph.D.,
Dr. Sang Lee’s Iconoclasm,
Sang’s Discovering Your Nature,
Dr. Sang Lee’s Closing Arguments,
Dr. Lee’s an effable and ineffable.
All rights reserved and copyrighted.
(무단복제사용을 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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