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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construct()
를 사용해주세요. in /webstore/pub/reportblog/htdocs/wp-includes/functions.php on line 3620 주신구라 읽기가 불편한 이유 - 김태훈 기자의 아침에 읽는 시
주신구라 읽기가 불편한 이유
주신구라 내용을 그린 삽화.

주신구라 내용을 그린 삽화.

 

일본의 국민문학으로 사랑받는 ‘주신구라(忠臣藏)’는 주군(主君)의 원수를 갚고 사형당한 사무라이들의 활약을 그린 작품입니다. ‘주신구라’란 ‘충신이 많은 곳’이란 뜻입니다. 최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 안중근 의사에 대해 망언하는 것을 보면서 이 작품을 떠올렸습니다. 두 사람은 안 의사를 각각 ‘이토 히로부미를 살해해 사형판결을 받은 인물’ ‘테러리스트’라고 폄훼했습니다. 두 사람 논리대로라면 이 작품에서 주군의 원수를 죽인 사무라이들 또한 충신일 수 없습니다.

주신구라는 에도 막부(幕府) 시대인 1701년 아코 번(藩) 영주 아사노가 막부의 의전 담당관 기라 고즈케노스케와 다투다 칼을 휘둘러 상처를 입힌 실제 사건을 배경으로 창작됐습니다. 막부는 아사노에게 할복을 명령한 반면 기라는 싸움을 피하려 했다며 처벌하지 않았습니다. 분노한 아사노의 가신들은 복수를 벼르다 이듬해 기라를 습격해 살해했습니다. 막부는 사건에 가담한 사무라이 46명을 처형했습니다. 그러나 민심은 이들이 주인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며 충신으로 기렸습니다.

자신이 섬기는 이를 위해 사사로이 살인을 저지른 것도 충(忠)으로 떠받들면서, 국권 침탈의 원흉을 처단한 안 의사의 정당한 의거를 어떻게 테러라고 매도할 수 있습니까. 그들의 이중 잣대가 불쾌합니다.

주신구라는 여러 판본으로 가지를 쳤습니다. 그중엔 사무라이들이 복수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아내를 유곽에 팔아넘기는 극적인 요소를 더한 것도 있습니다. 여성을 수단으로 삼는 후진적 인간관입니다. 위안부를 강제 동원하고, 2차대전 후 일본에 진주한 미군을 위해 공창(公娼)을 설치하고, 국영방송 NHK 회장이 “전쟁 때는 다 그런 것 아니냐”는 헛소리를 한 것과 같은 맥락으로도 읽힙니다.

주군의 원수를 갚은 아사노의 가신들은 도쿄의 대사찰 센가쿠지에 묻혀 있습니다. 반면 일제(日帝)가 처형 후 유기한 안 의사의 시신은 지금껏 행방을 모릅니다. 이것은 범죄입니다.

주신구라를 읽으면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주인이 지은 죄에 공동 책임을 느끼고 사죄하기보다 맹목적인 의리를 앞세워 복수하고 그것을 충으로 미화하기 때문입니다. 일제가 저지른 범죄를 부인하는 아베 내각의 정신세계와 참 닮은꼴입니다.

<2014.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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