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야기 [팡세] -파스칼-

출처:Yahoo

팡세영문

p-001~059

p-060~073

p-074~098

p-099~139

p-140~183

p-184~194

p-195~241

p-242~290

p-291~338

p-339~378

p-379~424

p-425~434

p-435~464

p-465~498

p-499~536

p-537~555

p-556~588

p-589~615

p-616~641

p-642~672

p-673~692

p-693~721

p-722~736

p-737~768

p-769~802

p-803~839

p-840~856

p-857~889

p-890~924

<팡세>는미완성작……

파스칼은아우구스티누스와함께위대한기독교사상가로서세월이흐를수록그광채를더해가고있다.파스칼이죽은지어느덧300여년의세월이흘렀지만<팡세>는시대를초월하여오늘날에도인간의문제를진지하게추구하는많은사람들에게애독되고있다.파스칼은신학자가아니며체계적인철학자도아니었다.그는과학적인천재인동시에위대한모랄리스트요뛰어난문장가였으며,<팡세>는그의정신적인위대한유산이라고할수도있다.그러나<팡세>는완성된저술이아니라저술을위한메모를모아책으로엮은것이다.생트뵈브의말대로<팡세>는돌을차곡차곡쌓아올렸으나시멘트를그사이사이에넣지않은미완성탑이다.파스칼은놀라운기억력을갖고있었으므로,필요한것은모두기억의서랍속에차곡차곡챙겨두었다.만일날로더해가는신병으로그의기억력이흐려지지않았더라면,그는아마도이런노트를적어둘필요성을느끼지않았을것이다.파스칼의생질인에티엔느페리는<팡세>의포르르와얄판서문첫머리에이렇게쓰고있다.

파스칼은수학·물리학연구에서커다란진전을보였지만,젊어서그것을그만두고30세때부터보다더중요하고고귀한문제에관심을갖기시작하여,건강이허락하는한성서와기독교도덕의연구에전념했다.
……만일하나님이그가여생을바쳐대성하려던종교상의저술을완성하는데충분한시간을주셨더라면,그저술은그가할수있었던다른어떤업적보다도훨씬우수했을것이다.왜냐하면이문제에대해그가가지고있던견해는다른학문에대한그의견해를크게앞지르고있기때문이다.

파스칼이이저술의복안을세운것은그가죽기몇해전의일이었다.그는질병과싸우면서4년동안에,<팡세>에수록될<단장>들을메모했던것이다.그는다만자기자신을위해그것을썼으므로,피곤하지않도록간단히메모했으며,또그것도머리에떠오르는상념을상기하는데필요한것만기록했던것이다.그러므로그속에불완전한것이나너무간단한것이나설명이불충분한것이나상당히엉성하고설익은말이나표현이있다고해도결코놀라운일이못된다.그렇지만때로는펜을손에잡으면,건강했을때보다는못해도자기의상상을조리있게전개한대목도없지않다.
그러나<팡세>는역시미완성작품이다.때때로머리에떠오르는상념을놓치지않기위해자기개인을위해썼고,그후에다시한번읽어보지도못하고수정할엄두도내지못한채초고를남겼으니말이다.파스칼은,이초고를하나의저술로완성하려면건강한몸으로온갖힘을기울여도10년은걸려야한다고생전에가끔말했다고한다.만일파스칼이건강을회복하여마지막추고까지할수있었더라면그의저술이얼마나놀라운역작이되었을지상상하기란결코어렵지는않다.
이제그처럼지적인신앙인파스칼의정신적인과정을잠시더듬어보자.파스칼이포르르와얄수도원에서자신의대적으로삼은사람은몽테뉴였다.파스칼뿐만아니라포르르와얄수도사들에게는몽테뉴의회의론(懷疑論)이야말로신앙을위해가장못마땅한괴물이었다.파스칼은몽테뉴를분쇄하기위해그를연구했다.그리하여<팡세>에는몽테뉴에게서거의그대로따온문장도가끔볼수있다.몽테뉴의위대한점은그가모든인간이가지고있는회의에가치를부여한데있다.파스칼의말대로’생각하는갈대’로서의인간은반드시회의를갖게마련이다.회의는신앙과도불가분의관계에있다.회의를초월할때이상에이르게된다.그러나회의자체는신앙의대적이다.파스칼은신앙으로이회의라는이름의악마와끝까지싸워이겼다.신앙이란막연한의지(依持)나기대같은것이아니다.그것은성서와체험에의한반석같은신념이다.
파스칼은금욕주의자중의속인(俗人)이고,속인중의금욕주의자였다.그에게는이두가지가융합되어하나의인격을이루고있다.인류의대부분은정신이나태하며,탐구심이없고공허한일에곧잘빠져들어가며그감정은극히미온적이다.그러므로깊은회의도심오한신앙심도그들과는거리가멀다.이것은인간을속박하는굴레이다.이에대해파스칼은큰환멸을느끼고신앙으로극복한다.
다음에파스칼이받은장세니즘의영향에대해언급하지않을수없다.장세니즘은네덜란드의얀센이창시한교리로아우구스티누스의주장을받들어은총·자유의지·예정론에대한엄격한견해를표방하여,포르르와얄파등이신봉했으나1713년로마교황에의해금지되었다.파스칼은장세니즘의교리못지않게포르르와얄의수도원생활에구현된장세니즘의성과에마음이이끌렸던것같다.안이한기독교의신앙을배격한경건하고금욕적인포르르와얄교단은파스칼과같은정열적이고철두철미한성격의인간에게큰호감을사게되었다.<팡세>에나오는인간의온갖관심사에관한명철한분석은이교리에서적지않은도움을받았던것이다.
<팡세>는앞에서도말한바와같이매우단편적이다.그러나조금만조심스럽게읽어보면이책전체의밑바닥을흐르고있는사상은그렇지않다는것을알게될것이다.그의사상은서로떼어놓고단편만가지고논할성질의것이못된다.
다음에<팡세>의원전에대해몇마디언급하고자한다.근래에와서인간파스칼에대한연구못지않게<팡세>의원전에대한연구가크게진전을보여,파스칼의자필초고의해독이나어구의교정이거의완벽에가까울만큼이루어지고있다.그리하여지금까지파스칼을연구한사람들을괴롭혀온<팡세>의편찬방법의문제에대해서도많은것이밝혀졌다.
파스칼이죽은직후에발견된초고가단편적이었기때문에이것을한권의책으로출판하기위한방법에대해처음으로<팡세>를출판한포르르와얄판간행위원회에서많은논의를거듭했지만,결국위원회가채택한것은,많은초고중에서비교적명료하고완성된것을골라같은주제에관한것을동일한제목아래정리하고,그밖의별로명료하지못하거나지나치게미비한것은모두삭제하는방법이었다.
그리하여이포르르와얄판은1670년파리에서간행된후1761년마지막판에이르기까지거의개정되지않았다.18세기말옆에와서포르르와얄판의분류를무시한새로운<팡세>가몇가지나왔으나편찬방법에는다른면모를보이지못했다.그후반세기가지나지금까지간행된<팡세>와파스칼의자필초고사에에어구상차이가있는것을지적하고,원전비평의필요성을느끼게된후로,파스칼의연구가들은직접초고원문의충실한재현에힘써,1844년부터1897년사이에다섯종류의<팡세>가출판되었다.또한이책첫머리에도언급한바와같이1904년에는브랑슈비크가19세기에있었던운전비평의성과를토대로새로운<팡세>를내놓았는데,그는초고원본과사본에있는<팡세>의단장을모두수록했다.그는출처가분명한단장을내용에따라14개의주제아래정리하여편찬하는방법을채용했다.이<팡세>에는내용적으로연관성이있는단장들이서로한군데로몰려있기때문에,20세기전반에널리유포되어오늘날<팡세>의장구를인용할때의번호는일반적으로브랑슈비크판을따르고있다.
그러나그후에도1925년부터1947년사이에각각특색있는몇가지새로운<팡세>가출판되었는데,주로제1일사본의분류에따라<팡세>의신판을편찬하고,파스칼자필의초고에서지워버린곳이나다시쓴것,또는가필한곳을활자로구별하고있다.그리하여초고의해독이정확하고교정이엄정한점에서<팡세>의원전연구에획기적인기여를했다.
<팡세>의초고원본은파리의국립도서관에소장되어있다.여기포함되어있는초고의대부분은물론파스칼자신이직접쓴것이지만,다른사람의필적이약간섞여있고,후에파스칼자신이부분적으로가필한것처럼보이는것도포함되어있다.
그리고제1사본도1795년에파리의국립도서관에소장되었다.이제1사본과초고원본을비교해보면구성의순서가다르고또수록한단장도모두일치하는것이아니다.이제1사본이외에제2사본도파리의국립도서관에소장되어있는데,이것은제1사본이작성된후얼마되지않아서초고에서배낀것으로보인다.구성순서는제1사본과다르지만,단장의수는후에다른사람이추가한것을제외하면제1사본과거의같다.
그리하여근래에와서는가장완벽에가까운<팡세>를편찬하기위해세가지원전을모두동원하고있다.즉초고원본을가능한한정확하게판독한것을토대로하여제1사본의순서대로단장을배열하고,제1사본에빠진초고원본중의단장을거기에추가하고,다시제2사본에따라단장을보충하는방법이그것이다.
끝으로인간파스칼의단면을알아보기위해에티엔느페리의<팡세>서무느일부를여기인용하고자한다.

……인생을통해거의간단없이그를괴롭혀오던병고와쇠약속에서그와같이인내심을나타내고,그자신에대해그와같이가열하고도준엄한금욕을행하여,자신의감각에알맞는것을모두금했을뿐만아니라필요하다면음식이건약품이건불쾌한것을고통으로알거나싫어하지않고오히려반가히섭취하고,옷이건먹을것이건도구이건그밖의어떤것이건간에절대로필요하다고생각되는것이외에는모조리배척하고,가난에대해매우열렬한사랑을품고가난이항상머리에서떠나지않도록했다.또무엇을계획하든지빈곤을실천할수있는가의여부를생각하고가난한사람들에대한자비의온정을가지고,여유가전혀없을때에도결코시여를거부하지않고가끔상당한액수의시여도하였다.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