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주자학자들인기대승,김장생,송시열,등은한국유학의원류을밝히면서한결같이그를비조로꼽았다.그러나보다더주목할만한것은외교적인면에서그가이룩한업적이다.고려말에는중국의명조와일본등과의외교관계가더욱복잡다단해졌다.고려의조정에서는그를여러차례외교사절로파견하여이들나라와교섭을벌였던바,그는명과일본두나라를드나들며이들나라와우호적인관계를맺는데외교수완을발휘하였다.그수완이워낙뛰어나국내외의정계에서그를우러러볼정도였으며,고려말기국지의정치활동가로서자타가공인할정도가되었다.
1376년정몽주는배명친원(排明親元)의외교방침을반대하다언양에유배되었으나이듬해풀려나왔다.사신으로규우슈우의지방장관에게가서왜구의단속을청하여응낙을얻어냈을뿐아니라왜구에서잡혀간고려백성수백명을귀국시켰다.1380년이성계의휘하에서외구토벌에참전하였고명나라에서가서는세공(歲貢)의삭감과함께5년간미납한세공을면제받아국의를회복하는데큰공을세웠다.그러나고려의부패는극도에이르러대세는이미기울어져있었다.공양왕4년왕세자석(奭)이명나라를다녀온다는소식을들은수문하시중이성계는국가의원훈으로서황주에까지마중을나갔다.다음날이면왕세자일행과황주에서서로마주치는날이니,하루의시간적공백이있었다.이성계일파는실로오랜만에사냥으로써장부의호연지기를풀기회를얻은것이다.그리고예로부터범이많기로유명한봉산은인적이닿지않는곳으로서숲이우거질대로우거져그야말로원시림을이루고있었다.백발백중명궁중의명궁이성계의활시위소리에다라꿩과노루등이허공에솟구쳤다가힘없이아래로떨어진다.그러나이성계는말이이리저리달리는순간쓰러진고목나무에말발굽이걸려바위아래로떨어지고말았다.얼굴과팔뚝은보기에도흉하리만큼벗겨져유혈이낭자하였고,몸은전혀움직이지를못했다.허리를단단히다친모양이었다.부하들이급히모여들어지혈을하는한편,황주로옮겨치료를받도록하였다.
이성계가사냥하다가낙마하였다는소문은곧바로송도에퍼졌다."이시중도별수없이늙었군.전같으면그런일이없었을텐데."하며이성계의용태를주의깊게지켜보려는눈치들이었다.상황이이러하니이성계일파의걱정은태산같았다.이칼날처럼위태로운처지에서호연지기를풀기위한하루의사냥이큰화근이될줄이야누가짐작이나했겠는가?이지란,남은정도전등이혼수상태에서헤어나오지못하는이성계를지켜보고있었다.그는겨우신음소리만낼뿐,생사조차예측할수없을만큼중태였다.
이무렵아홉공신의한사람으로친명파의거두이자대학자로서덕망이일세를풍미한정몽주는오랜전부터권신들이발호하여권세를휘두르는것에대해비위가상해있었다.우와때부터권세를잡았던이인임,최영등이없어지자이성계일파가득세하여정권을농락하기에이르렀으니악순환이끊이지않고있는셈이었다.더구나정도전처럼학문의길을닦았던사람마저이성계에게동조하여새로운세상을꿈꾸고있는데대해정몽주는못마땅해했다.그리하여그는아주이기회에이성계일파는제거하려했다.그러나이를눈치챈방원이이성계를그날밤중개성으로돌아오게함으로써실패하고말았다.
그러나이성계가낙마하여병환중에있다하니,문병을아니갈수도없었다.정세를살피기도할겸정몽주는그의사저로가기로하였다.상황이상황인지라이성계의아들방원은조영규를데리고아비옆을떠나지않고지켰다.조영구가이성계더러들으라고한마디하였다.
"정몽주대감의병문안은곁으로의명분일뿐그속셈은다른데에있을것입니다.조심하여야하옵니다."
"당치않은소리,정대감과나는오랜친구사이인데그럴가있나?"
그러자방원이답답하다는듯,침상에손을짚으면서말했다
"아닙다.아버님!"
마침내정몽주가문병을마치고방원과대좌하게되었다.먼저방원이말문을열었다.
"포은선생,술이나한잔드시며여러가지종은말씀이나해주시오."
"내가무슨대학자라고좋은말이있겠소?"
"대감께서는당대의대학자이신데성리학에대해좋은말씀을좀해주시오."
"성리학이라면심신의수양이으뜸이지요."
학문에대한이야기는잠시일뿐,화제는바뀌어고려조의정치이야기가나왔다.이방원은좋은기회라생각하고정몽주의속마음을떠보기위하여시조한수를유려하게뽑아내려갔다.
"이런들어떠하며저런들어떠하료
만수산드렁칡이얽혀진들어떠하리
우리도이같이얽혀져백년까지누리고저"
저후세에널리알려진’하여가’였다.다썩어져가는고려왕실만붙들기위해고집을부리지말고,칡덩굴처럼얽혀서사이좋게사는것이어떻겠는가하는내용이다.정몽주는노래를다듣고나서좋은시라고칭찬한다음,"젊은사람의노래만듣고그대로있을수야없지,화답하는것이내인사이니내노래도들어보게"하였다
"이몸이죽고죽어일백번고쳐죽어
백골이진토되어넋이라도있고없고
임향한일편단심이야가실줄이있으랴."
만고의충절포은은’단심가’를통하여고려조에대한충성을거듭피력한것이다.방원에게는시조가아니라자기를나무라는호령처럼들렸다.이로써두사람은서로의뜻을알고헤어졌다.
이방원과헤어진정몽주는돌아오는길에전부터자주드나들던술집에들었다.초여름의싱그러운신록이송도를곱게물들이는가운데,숲사이에서는이름모를새들이노래하고있었다
"대감마님,오랜만에오십니다.오늘은마침좋은생선을지져놓았으니많이잡수시고가시지요."
"고맙네,한잔먹고가야겠네."
그리고는주막마루에걸터앉았다.눈앞에는얕은울타리에꽃이만발하여나비가날아들고있었다.낯선사람들이여기저기서수근거리고잇는것이눈에띄었다.
"주모,술을까져오게."
한참후에야술상이나왔다.뿌연막걸리에생선지짐이가구미를돋구었다.대작하는사람은없었지만연거푸석잔을마신후,지는해를바라보며혼자울고있었다.도시일어서려는기색이없자보기에딱했든지녹사가곁으로다가섰다.
"대감,해가선산에지고있습니다.그만진정하십시오"
어느덧만수산의서늘한산그림자가짙게드리워져그는할수없이말에올라야만했다.
무심한말은정몽주를싣고선죽교돌다리를향해걸어갔다.말이선죽교에다다르자
"멈추어라!"하는외침이들려왔다.저녁노을이지기시작한선죽교의돌다리위에는판위위시사조영규가가로막아서있었다.
"누구요,누가우리대감마님행차를가로막는게오?정몽주대감의행차임을모르시오?"
겁에질린녹사가조영규의앞을가로막으며외쳤다
"조영규가여기서기다린지오래였느니라.비키지못하겠느냐?철편의맛을보아야하겠느냐?"
녹사가울면서조영규의몸을안으려고뛰어덤벼들자몸이닿기전에조영규의철편이녹사를힘껏갈겼다.녹사는비명을지르며쓰러져버린다.
"자,대감.이미천명이다하였으니말에서내려철편을받으시오."
정몽주가태연한자세로말에서내리는것을본녹사가
"시중대감,어서도망가십시오!역적조영규는소인이막겠습니다."
피를쏟으면서땅에쓰러졌던녹사가조영규의두다리를잡고덤볐으나조영규의철편은여지없이녹사를정통으로맞추었고녹사는그만시체처럼나뒹굴고말았다.이때말에서내린정몽주가태연히조영규에게다가서면말을던진다.추호도당황하는빛이없는정몽주의얼굴에서는오히려미소마저감돌고있는듯했다.
"이시중대감이시킨것이아니라,이나라삼천리의명령이오.어찌할수가없습니다."
이를악문조영규가철편을바짝나꾸어공격의자세를취하자
"이놈,천하에죽일놈"
이성계의분부가아니라는말을들은정몽주가천둥같은호령을한다.
"쥐새끼만도못한네놈이감히천명을사칭하다니…고려조정의녹을먹는신자(臣子)의할짓이고작이거더냐?"
그러나조영규의손에들린철편은이미원을그리고있었다.
"컥…."
우뚝선자세로조영규를노려보던정몽주의입,코,눈에서는피가쏟아져나왔다.
철편이정몽주의머리를친것이다.
"에익!"
다시한번뼈부서지는무서운소리가어둠의장막이드리워진주위에울려퍼졌다.
"이놈,역적놈들…"
겨우한마디꾸짖는소리가쓰러지는정몽주의입밖에서새어나왔을때,조영규의철편은세번째의원을그렸다.만고의충신정몽주가선죽교돌다리위에서털썩쓰러졌다.
다리밑에숨어이광경을지켜보던방원이우르르달려나와넋을잃고서있는조영규와나란히서서장엄한충신의최후를지켜보고있었다.날짜는공양왕4년4월4일이었다.
그는죽임을당할줄알면서도모친이씨의’정의를위해죽으라.’는말을따랐다.만고의충절은새로운왕조를새우려는쿠데타세력에의해피살되므로써고려와운명을함께하였던것이다.그후조선에서는두임금을섬기지않은그의충절을기려서그에게문충(文忠)이라는시호를내리고그를문묘에봉사하였다.
그러나실제그는정도전의급진적인토지개혁에반대하고불교에대해서도절충적인태도를취한는등가감한주자학적이념의실천에는다소적극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