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도종환

몸과마음의불균형으로생긴병으로교단을떠나산속에들어간지3년,시인도종환이새시집으로돌아왔다.텃밭에서잡초뽑고산짐승과어울려살며시인은어느덧풍경의일부가되어버렸다.머리까지맑아지는속리산자락,시인의집을찾았다.

글_신규섭기자사진_조준원기자

벌써21년이흘렀다.결혼3년만에암으로세상을떠난아내를그리며‘접시꽃당신’을노래하던때가.‘이어둠이다하고새로운새벽이오는순간까지/나는당신의손을잡고당신곁에영원히있습니다’라는노래를마음으로부르며시인의슬픔을함께울었다.
그후에도시인은평탄하지만은않은세월을살아냈다.전교조활동으로해직된후잠깐대학강단에섰던시인은어렵사리복직해다섯해를아이들과함께보냈다.그러던그가꿈에그리던교단을등지고황혼처럼산골로스며들었다.
산골에들며시인은‘심신에병이들어쫓기듯해인을찾아간다’고했다.정확히밝히지는않았지만시인은교감신경쪽에이상이생겨온몸의기능이급격히악화되는병을앓았다.감기같은가벼운병도쉬낫지를않았다.병원을찾아가고주사를맞아도별효과가없었다.시인은‘몸과마음의균형이깨져서생긴병’으로스스로진단했다.

‘완치’선언과함께시작한문학나눔사업
그렇게세상과작별한시인이신작시집‘해인으로가는길(문학동네)’과함께홀연히나타났다.신작을내고시인은조심스레바깥활동을시작했다.서울에서출판기념회를열고,문학나눔사업추진위원회사업의일환으로‘도종환의시배달’도시작했다.
스스로‘완치’를선언하고활동을재개한그를만나러가는길.네번째봄을보내고있는충북보은‘구구산방’을찾아가는길은깊었다.‘구구산방’으로가는차안에서신작시집을읽는다.

이른봄에내곁에와피는
봄꽃만축복이아니다
내게오는건다축복이었다
고통도아픔도축복이었다
뼈저리게외롭고가난하던어린날도
내발을붙들고떨어지지않던
스무살무렵의진흙덩이같던절망도생각해보니축복이었다
그절망아니었으면내뼈가튼튼하지않았으리라
…(중략)
육신에병이조금들었다고어이불행이라말하랴
내게오는건통증조차도축복이다
죽음도통곡도축복으로바꾸며오지않았는가
이봄어이매화꽃만축복이랴
내게오는건시련도비명도다축복이다
-축복중에서

시인의되찾은평화가느껴졌다.그평화를깨고싶지않았다.예상대로서울에서3시간여를달려도착한‘구구산방’은평화로웠다.홈페이지를관리해주는후배들과함께일행을맞은시인은찻잔부터건넸다.멀리서온손님을배려해후배들이어수선하게자리를뜬후시인과마주앉았다.그제야실내가눈에들어왔다.황토로지은집에는구석구석황토를이겨붙인그림들이들어차있었다.
“원래집주인이미술선생이었어요.암에걸린동생을위해지은집이이집입니다.그걸제가몇해전에넘겨받았어요.여기서네번째봄을맞네요.그간몸은좋아졌어요.”

명상으로시작해책읽고텃밭매다보면하루해가짧아
통유리로된창을통해한폭의산수화가펼쳐졌다.“신선놀음이따로없네요”했더니겨울을한번지내보라고답한다.산속이라평균5도는낮다.조금만추우면보일러가터져물도불도안들어올때가많다며산속생활의불편함을토로한다.
무심하게느껴질만큼말수가적은시인에게“적적하지않느냐?”고했더니“적적하려고들어온건데요”라고짧은답이돌아왔다.얼마전판화로유명한이철수씨가어디서구했는지처마에풍경을걸어두기전에는더적적했다.하루종일새소리,물소리외에는아무소리도들리지않았다.처음에는혼자있다는생각이많이들었다.사람사는동네하고도멀리떨어진산속외딴집은적막하고무서웠다.밤에는혼자서도문을꼭걸어잠그고잤다.적막하고낯선산중에유배된삶이측은하기도했다.
고요함에익숙해지면서시인은아침명상을시작했다.틈틈이시간을내서텃밭의풀을뽑고나무를하러다녔다.약때문에점점육식에서멀어지고하루두끼채식위주의식사를하게됐다.그러다보니몸이좋아졌다.재작년하반기부터는직접느낄수있을정도로좋아졌다.다시시를손에잡았다.그러나욕심내지않았다.‘해인으로가는길’은그렇게쓰여진시다.
“불교에는시적상징이집약된말들이많습니다.‘海印(해인)’도그중하나입니다.풍랑이가라앉은후고요하고맑은상태를해인이라합니다.몇년을산속에있었더니고요해지더군요.그걸불교적상징으로표현한겁니다.”
전교조활동을하며좌파,평등,어울림등을꿈꾸던시기는화엄의세상이다.시인은화엄의세상을꿈꾸다몸과마음에병을얻었다.그병을치료하기위해해인을찾았다.그러나화엄과해인은둘이아니다.화엄으로되돌아가기이전이해인인것이다.
“살면서성찰의시간이필요합니다.성찰의시간을통해다시실천으로나가는거죠.‘해인으로가는길’은산골에찾아든상태,그리고현재제상태를표현한겁니다.그런데사람들이어렵대요.해인사가는길도아니고….(웃음)제가해인에이르렀다고말할수는없습니다.앞으로어떻게할까고민하는중입니다.”

5월이면염치없게도소풍이가고싶은시인
현실에만매달리다심신이지친시인은성찰의시간이필요했다.시인은이제성찰을통해얻은깨달음을세상에나가검증받을때라고부연했다.그쯤에서말을멈춘시인은“인터뷰는그만하고밭이나좀매달라”며부추밭으로향했다.시인은‘구구산방’에달린밭이작아보이지만한번손을대면하루해가부족하다고했다.잡초를솎아내며시인은드문드문이야기를이어갔다.
“염치없게도5월이면아이들하고소풍을가고싶어요.복직하고학교에서보낸5년은저에게는보람되고정말좋은경험이었습니다.”
‘밭모양은갖추어진것같다’는시인의말을신호로익숙하지않은밭일은끝이났다.땀을닦으며밭에서내려온시인은서툰노동의대가로막걸리와산도라지술을내놓았다.산도라지술은우편물을전해주는집배원이담가주었다.귀한술에걸맞게병입에작가는산도라지의고향과술을담근날,그리고‘늘건강하시길…’이란소망을적어두었다.
집앞작은계곡에서막따온두릅과얼마전다녀간주성대학문창과학생들이수강료로내놓은떡이상에올랐다.소박한술자리에는마침마실나온후배교사가합석했다.인근초등학교에서교사로재직한다는그는시간나면무시로들러밭일에서툰시인을돕는다고했다.시인의표현대로‘상일꾼’인그는산도라지술이잘됐다며어린시절아버지가담근뱀술이생각난다고했다.
“요밑에돌틈에도화사가한마리살아요.아침에일어나마루에나서는데그놈하고딱마주친거예요.저도놀랐죠.그다음순간‘내가이렇게놀랐는데이놈은또얼마나놀랐을까?’그런생각이들어요.한3~4년여기서살다보니까그런생각이들대요.지금도요밑에사는데며칠전에저쪽소나무숲으로지나가는걸보니까꽤굵어졌더라고요.”

도망가는시늉만할뿐무서워하지않는고라니
뱀뿐이아니다.다람쥐도함께산다.마루끝에놓인몇톨의밤은다람쥐를위한그의마음이다.지난해까지두내외가살던다람쥐는얼마전새끼두마리를낳아네식구가되었다.어제저녁에도네마리가마루맡에옹기종기앉아밤을까먹고갔다.
‘구구산방’인근은골이깊고숲이울울창창해또고라니가많이산다.지난해집앞더덕밭에서밭을매는데오줌이마려워밭한켠으로가서일을보고있었다.순간자신을향한시선이느껴져고개를들었더니고라니두마리가지켜보고있더란다.눈이마주치자그제야고라니란놈이도망을가더란다.
“도망을가면서흘끔흘끔뒤를쳐다보더라고요.뒤돌아보면서꼭‘저만봤나요.다람쥐도,뱀도다봤는걸요,뭐.’하는거같더라고요.처음여기왔을때는고라니가밤에만집근처로내려와서목을축이고갔거든요.요즘은아침에내가댓돌에내려설때까지그대로있어요.문열고나가도몇발짝뒤로물러나도망가는시늉만해요.”
시인이문재가‘해인으로가는길’에들어가는문이라말한‘산경’이떠올랐다.

하루종일아무말도안했다
산도똑같이아무말도안했다
말없이산옆에있는게싫지않았다
산도내가있는걸싫어하지않았다
하늘은하루종일티없이맑았다.
가끔구름이떠오고새날아왔지만
잠시머물다곧지나가버렸다
내게온꽃잎과바람도잠시머물다갔다
골짜기물에호미를씻는동안
손에묻은흙은저절로씻겨내려갔다
앞산뒷산에큰도움은못되었지만
하늘아래허물없이하루가갔다
-‘산경’전문

술이아쉬울즈음내놓은술병이바닥을드러냈다.해가뉘엿뉘엿저물고있었다.그날허락된여유는거기까지라는신호였다.다음달있을시화전에서다시보자기약을하고차에올랐다.멀찍이서서손을흔들던그의모습이속리산자락에다시묻혔다.

-Queen6월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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