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서비스사실은]152.
20세기최고의지휘자였던카라얀(HerbertvonKarajan)…그의죽음으로클래식계는하나의거성(巨星)을잃었지만,그가남긴유산은21세기가시작된지금까지음악계에영향을끼치고있다.
지금이야MP3라는디지털기술의총아에의해그빛을많이잃었지만,아직까지도음악디지털화의선봉장이자개척자로대접받고있는CD가바로그가남긴유산인것이다.살아생전에“앞으로는CD의시대다!”라며CD보급에앞장섰고,CD의표준규격인지름12㎝를만드는데결정적인이유를제공한카라얀…오늘의주제는바로카라얀이남긴유산에관한이야기이다.
“어이카라얀…내가너그렇게안봤는데,이색희말야…음악좀한다고봐줬더니만낼름나치에가입해?이색희이거콩밥좀먹어봐야해!”
1945년독일의패망과함께카라얀은오스트리아로송환된다(그의고향은오스트리아잘츠부르크였다).그리고시작된전범재판…카라얀은빼도박도못하는상황이었다.
“카라얀,1933년4월8일나치당입당…이색희이거완전히기회주의자구만?나치가정권잡자마자입당을해?”
“아니그건…먹고살기위해어쩔수없었습니다.그당시실업자상태로있어서…”
“이색희이거,지금생계형친일파라고떠드는거야?안되겠어,이색희이거집어쳐넣어!”
나치의패망과함께나치에가담했던카라얀은인생이쫑나는것처럼보였다.그러나인생사새옹지마라했던가?나치집권시절유태인음악가들을도왔던이력이그를돕게된다.그의도움을받았던유태인음악가들의탄원덕분에그는1947년1월복권이되었다.그러나아무도그에게오케스트라를맡기지않았다.
“저색희저거나치한테붙어먹었던놈아냐?”
이런손가락질과수군거림속에카라얀은쓸쓸히재능을썩혀야했다.이때그를구원한한사람이있었으니,EMI의월터레그였다.
“야!너갈때없지?나한테와라.”
“뭔소리여?”
“앞으로의세계는음반이지배하는시대야!오케스트라?그거아무리해봐라.동시에몇명이나듣나?아무리잘해봐야5.000명?1만명?그걸루뭐되겠어?그리고음악한번듣겠다고화장하고,옷챙겨입고,차끌고나와오페라하우스까지가는거…이거비생산적이거든?너나랑같이음반작업이나하자.”
전화위복이었다.월터레그와만난카라얀은앞으로의시대는음악의대중화만이살길이라는그의생각에푹빠져들게된다(이때이일이아니었으면카라얀이살길도없었다).그리고대박을터트리게된다.명작들을LP로옮기는작업…카라얀의음반은대박에대박에또대박을터트렸던것이다.그렇게시간은흘러콤팩트디스크(compactdisk)라는새로운기술이등장하게된다.
“야야,이건말야…음악계에,아니인류역사를진보시키는획기적인발명이거든?이제까지LP나카세트봐봐라전부에디슨식축음기모델을베이스로발전한거거든?한마디로아날로그란소리지…근데이건아냐!디지털기술로음악을재현한다는거라고!”
“야…축하한다.근데왜날부른거냐?”
“그게말야…이거사이즈를어떻게해야겠냐?아무래도이게마케팅을위해서는카세트를생각안할수가없거든?”
“그래서?”
“그래서…내생각에는11.6㎝가적당할거같아.이게딱카세트테이프대각선길이거든…마케팅하기에도좋고,어떠냐?”
CD의첫등장!이당시CD개발자들은CD의사이즈를두고고민을하게됐다.그리고그당시음반시장의대세인카세트테이프를염두에두고11.6㎝로가닥을잡아가는데…
“근데…그건좀그렇지않냐?”
“그게뭔소리여?”
“그게…새로운시대에새로운시스템이잖아?그러면남들못하는걸해내야하지않을까?그게좀의미있지않겠냐?”
“예를들면?”
“팝송이나뽕짝은길어야4,5분이잖아.재즈도길어봐야20분정도고…근데교향곡같은건기본50분넘어가지않냐?”
“글치…”
“보통보면LP로두세장씩쪼게서담고그러잖아.그걸한장에다넣는다면…끝내주지않겠냐?”
“지금제일유명한교향곡이뭐냐?”
“당근카라얀이녹음뜬베토벤9번합창이잖아.또카라얀형님이우리CD에대한과도한애정을보여주시는걸루도유명하지…”
“그게몇분짜리지?”
“74분40초.”
“11.6㎝로하면…60분밖에녹음못하는데…”
“75분정도녹음뜨려면몇㎝여야하냐?”
“12㎝는되야지?”
이리하여CD의사이즈는12㎝로확정되게된다.카라얀이지휘녹음한베토벤9번교향곡때문에CD의사이즈가결정되었고,덕분에오늘날우리가쓰고있는CD,컴퓨터CD라이터,DVD등등의사이즈가모두통일되게된것이다.20세기최고의명지휘자는의도하지않았지만이세계에하나의기준을만들고떠난것이다.
-스포츠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