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잘쓰는 법

이순신의名文은漢字에서나왔다

한문을외국어라고배척하는사람들은名文의예를들기가그리간단치않을것이다

徐基源 월간조선
名文이라할만한문장을쓰지못한처지여서名文에관한얘기를한다는것이어쩐지쑥스럽긴하지만,평소의생각을두서없이적을까한다.

나는상당히오래前부터漢文章(한문장)과한글문장의차이같은것을막연히느끼고있었고지금도그렇다文筆(문필)에종사하면서글을많이읽지못한엷은知見(지견)으로그런문제를거론한다는것은만용에속할것이다.

名文도워낙종류가많기에무작정뭉뚱그려말할수는없다.
가령漢文이라면詞(사),策(책),論(논)등으로대충구분할수있을것이다.
조선왕조시대의科擧(과거)시험에선대개詞와策두가지를출제했으나때에따라어느한쪽만요구하는수도있었다.

중종때趙光祖(조광조)같은이는“근래의과거시험이詞에치우쳐선비들이身邊雜事(신변잡사)나吟風弄月(음풍농월)을일삼고있다.”고개탄했다.그의가치기준으로말하면그런문장은名文의범주에넣지않는것이었다.지금도名文혹은명문장이라하면策과論혹은그에가까운문장을일컫는경향이농후하다.요새문학의개념으론서정시와서사시의차이를뜻하면서後者(후자)의경우로테두리를좁힌것이라고할까.

가령陶淵明(도연명)의‘歸去來辭(귀거래사,넓게는詞에속할수도있지만)’,諸葛亮(제갈량)의‘出師表(출사표)’등을들수있다.

조선도한문에의존한나라였으므로숱한名文이나왔음은당연한일이다.
밑천이짧은데다이런경우다소편협한나로서굳이들자면,李舜臣(이순신)의장계,閔泳煥(민영환)의유서등이나의가슴숙한모서리를차지하고있다.가슴을울리고인생과운명을생각케한다.

임진란에李舜臣은모함을받아서울에붙들려와국문(고문)을당한끝에白衣從軍(백의종군)으로남해안에내려간다.그사이李舜臣의직책을대신한元均(원균)이일본수군에게대패하여겨우패잔선12척만남았다.
다시三道(삼도)수군통제사로복귀한이순신에게“조선의수군은이제없는것과같다.패잔병들을추스려서육군으로편입하여전투를계속하라.”는명령이내렸다.

이에대해이순신은장계에서“지금신에겐아직도12척의戰船(전선)이있습니다.죽음을다하여나가싸우면사세를돌이킬수있는여지가있습니다.수군을없애,왜군이전라도로침입하고수도서울을공격하는것을신은두려워합니다.비록아군의戰船은몇안되지만변변치못한신이죽지않는한왜군은우리나라를감히없신여기지못할것입니다.”라고말했다.

‘今臣戰船尙有十二(금신전선상유12)’

나의가슴을친구절이다.괜한大言壯語(대언장어)가아니다.鳴粱(명량)해전에서의기적적인대승이한자도틀림없이증명하고있다.

심금을울리는글을접하지못하는이유

閔泳煥은일제에게나라를빼앗기자배를갈라자결했다.죽기前‘한국인민동포에게경고하노라’라는유서를남겼다.

‘…명심하라.살려고하는자는반드시죽고,죽고자하는자는반드시사는법이다.…영환이한번죽어황은에보답하고우리2000만동포에게깊이사죄하노라,영환은죽어도죽지않는다.기어이九天地下(구천지하)에서동포여러분을도울것이다.

安重根의사와함께그나마亡國(망국)의치욕을조금이라도달래준문장이었다.
近代(근대)에들어와서는역시3·1독립선언서일것이다.길기때문에인용은피한다.첫마디부터격조높은大宣言(대선언)이다.

쓰다보니한문얘기만한것같다.한글문장,이를테면되도록한자어를피하고우리말에충실한글(기실순우리말만으론불가능하지만)과대조하며우열을가리자는것이아니다.名文의개념을알수있을것도같다.

물론한글전영의글가운데특히詩나소설에名文이수두룩한것이사실이다.하지만,나의감수성이낡았는지몰라도심금을울리고삶에충격을주는글을그다지많이접하지못했다.한문을외국어라고배척하는사람들은名文의예를들기가그리간단치않을것이다.

그것은한문과우리말의언어적속성과성격이다른데서나왔을것이지만이것까지건드리는것은나의주제넘는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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