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oveIsJustADream(사랑은꿈과같은것)-조수미꿈이었나너를떠나온날지금까지후회하고있어기억조차하기힘든지금사랑이란이미끝났다오그대와의사랑의추억은차가운옛날의노래일뿐무성한들녘의외로움에내서늘한옷깃을여미네사랑이란끝없는그리움사랑이란꿈과같은것너무나도사랑했던널후회해도이젠소용이없네또다시한번그대품에서또다시한번널사랑할수있다면…
세계적인소프라노조수미가국제무대데뷔20주년을맞아한국에서뜻깊은시간을보내고있다.클래식공연을보기힘든지방도시를돌며순회독창회를열고있는것.많은‘어린조수미’들에게꿈과희망을심어주고싶다는그녀를만나보자.
1983년이탈리아로마의한공항.낯선동양인여성이텅빈의자에홀로앉아비를맞으며일기장을꺼내들었다.‘어떤고난이닥쳐도이겨내고울지않을것,약하거나외로운모습을보이지않으며늘도도하고자신만만할것,어학과노래에온통치중할것,항상깨끗하고자신에게만족한몸가짐을지닐것,말과행동을분명하게할것.’그녀는자신의마음에글귀를새기듯한자한자힘주어일기를써내려갔다.
올해로국제무대데뷔20주년을맞은세계적인소프라노조수미가이탈리아로유학을떠나던당시의일화다.이후이탈리아산타체칠리아음악원에입학한그녀는수많은콩쿠르를석권하며유학2년반만인1986년이탈리아트리에스테베르디극장에서오페라‘리골레토’의‘질다’역으로처음데뷔한다.
아버지임종지키지못한게가장가슴아픈기억
“이제와서솔직하게고백하자면서울대성악과1등이던제가어느순간52등인꼴찌로떨어졌어요.결국더이상학교를다닐수없게돼떠밀리듯이탈리아로유학을가게된거죠.로마레오나르도다빈치공항에새벽3시반에도착했는데혼자인데다갈데도없고배도몹시고팠던기억이나네요(웃음).”
타고난재능에어려서부터성악,무용,피아노,가야금등을익히며음악적감성을키워온조수미는선화예고를졸업한뒤서울대성악과가생긴이래최고의성적으로입학했다.그녀는어릴적부터항상자신이세상에서노래를가장잘한다고생각했고늘칭찬만들으면서자랐다고한다.하지만그때까지만해도성악가가되려는생각은하지않았다.이탈리아유학도떠밀리듯가게되었고,공부를마치고한국으로돌아와평범한여자로살아갈생각이었다고.
이런생각이바뀐것은같은유학생이던일본인여학생때문이었다.그녀의아름다운노래를듣게된조수미는난생처음으로‘시기와질투’라는감정을알게되었다.‘나만큼노래를잘하는사람은없다’는자신만만한믿음이깨지면서오로지연습에만매달리기시작했다.그녀는“바보처럼열심히공부한덕분에오늘의조수미가있을수있었다”며밝게웃었다.
데뷔후20년,그녀에게는참많은일이있었다.뉴욕의메트로폴리탄,런던의코벤트가든등세계5대오페라극장을정복하며세계적인소프라노로인정을받았다.전설적인명지휘자카라얀을만났고,플라시도도밍고와같은세계적인아티스트와듀엣공연을펼치기도했다.하지만그무엇보다고국인우리나라와관련된기억이더깊이남아있다는그녀.몇년전북한에서노래를부르며눈물을흘리던장면,2002년한·일월드컵때응원가인‘챔피언’을부르며목이터져라응원했던기억은영원히잊을수없을것같단다.
그동안행복하고즐거운일만있었던것은아니다.전세계를떠돌며공연하느라20년동안부모님생신한번제대로챙겨드린적이없고,동생들결혼식에도한번도참석하지못했다.그리고지난4월,세상을떠난아버지의마지막모습조차뵙지못했다.프랑스에서공연을하던중부음을들었지만“만인의사랑을받아야하는음악가가팬들을실망시켜서는안된다”는어머니의만류에귀국행비행기를포기하고무대에올랐다.그녀는본공연을모두소화한뒤네번째앙코르곡‘오!사랑하는나의아버지’를부르기직전그제야관객들에게아버지의부음소식을전했다.객석에서는탄식과뜨거운박수가동시에터져나왔다.
“지난4월4일파리독창회공연중아버지께서돌아가셨다는소식을들었어요.저를성악가로키워주신분인데임종도지키지못했죠.제인생에서가장힘든순간이었을거예요.장례식도참석하지못한채예정된음악스케줄을소화할수밖에없었죠.그날‘오!사랑하는나의아버지’라는곡을부르면서울었어요.이날공연실황을담은DVD가9월말에나올예정이에요.제목은‘ToMyFather’.딸로서는불효녀지만음악가로서아버지께드리는선물이라고생각해요.”
국제무대데뷔20주년을맞아그녀는9월한달간춘천,거제도등소도시를주로찾아다니는전국투어독창회를열고있다.그리고9월27일서울공연을끝으로국내투어를마치고곧유럽투어에나선다.11월베를린을시작으로파리,런던공연이예정되어있고호주투어도기다리고있다.이모든것이올해안에마쳐야하는계획이다.
인터뷰내내조수미는‘조국’을강조했다.그녀는“예술가는자기가태어나고음악적영감을준조국을잊을수없다”며“한국에대한애착이점점더커지고있다”고했다.실제로많은아티스트들이해외에서활동하기쉽도록국적을바꾸는것과달리그녀는여전히자랑스런한국인이다.외국공항에서입국심사를할때도자랑스럽게대한민국여권을내밀며씩하고웃어준단다.데뷔초기,유럽에한국이잘알려지지않아공항입국심사에서걸릴때마다“어서강해지자,내가강해지면조국도강해진다”며있는힘껏노래를했다고한다.
“예술가로서는성공했지만제개인적으로는아직성장이더필요해요.제가생각하기에나잇값을잘못하는것같아요.현실을잘모르고예술가라서순수한거라생각할수도있지만이제는저자신에게시간을주고경험을통해깊어지고싶어요.개인적으로더성장해서이를통해더원숙한노래를불러야해요.그리고10년뒤인30주년에는한국인들이가장사랑하고자랑스럽게생각하는아티스트가되고싶어요.만약그런아티스트에게주는상이생긴다면,그상을받고‘감사합니다’라고인사할수있는데뷔30주년이됐으면좋겠어요”
“쌍춘년인올해주변사람들이유난히많이결혼을했는데,저는올해음악과결혼했어요.쌍춘년에하는결혼못지않게미국과캐나다투어를성공적으로마쳤고,한국투어도잘진행되고있는데다20주년을맞아발표한음반‘위드러브(WithLove)’도음반차트를석권하는중이거든요.결혼을못하는집시처럼이렇게세상을떠도는것도제운명이고팔자인것같아요.하나님이그렇게살기를바라시나봐요(웃음).”
또그녀는한국에서청소년음악교육을시작할예정이라고밝혔다.자신이받은큰사랑과도움을이제청소년음악교육을통해사회에환원하고싶어서다.재능있는‘어린조수미’들이국제무대에설수있도록돕고,음악을통해순수하고깨끗한사회를만드는것이그녀의바람이다.
자료출처:Queen
음악출처:언제나이영혜님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