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사 흐름
한장으로요약한한국현대사흐름

조국근대화(建國-護國-산업화-민주화)-자유통일-조국先進化로나아가야하는道程에있다

趙甲濟 월간조선


한국은1948년건국이후근대화를성공시켜산업화와민주화를이룩했으나1998년이후守舊좌파정권이등장함으로써자유통일을넘어서일류국가건설로가야하는길목에서주춤거리고있다.내년에좌파를종식시키지못한다면잃어버린10년이아니라잃어버린50년이될지모른다.아르헨티나등많은中進國이선진국문턱에걸려넘어져일류국가건설의꿈을접었다.한국도그런반열에들것인가?그질문에대한답은,우리가좌파와싸울용기가있는가에대한답이라야한다.

일류국가는반역,守舊세력과싸워서쟁취하는것이지누가선물하는것이아니다.일류국가는국민들이생명을걸고체제를지키려할때만들어지는존재이다.배부른돼지가일류국가를만드는것이아니고투지만만한야윈늑대가양떼를지휘해야일류국가를세울수있다.한국인에게부족한것은지능지수도아니고國富도아니다.용기이다.

오늘의한국인들이일제때의독립운동가,6.25전쟁때의학도의용군,산업전사들,민주투사들과같은집단적용기를발휘하여권력을사기적숫법으로차지한좌파守舊정권을정리할수있다면일류국가로가는길은넓게열릴것이다.그런용기가없다면국민들은악랄한좌파의밥이되어자유도재산도미래도빼앗기고말것이다.우리가여기까지오는데어떤고생을했고어떤고난을극복했는지뒤돌아보는이유는선배들의惡戰苦鬪(악전고투)를돠새기면서거기서투지를뽑아내기위한것이다.선배들이직면했던어려움에비교하면지금좌파의도전은아무것도아니다.거짓과위선으로화장한그들은본질적으로사이비이기때문이다.무장한좌파를물리친우리가사이비좌파를두려워할이유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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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현대사의흐름

*발전방향:조국근대화(建國-護國-산업화-민주화)-자유통일-조국先進化로나아가야하는道程에있다.
*대한민국의4대재발견:해양정신,기업가정신,尙武정신,自主정신
*4대기여집단:장교단,기업인,기독교,과학기술자
*국력의양적규모로는세계12위권,삶의질로서는세계40-50위권
*선진국으로의진입을다투는세나라한국,대만,이스라엘은모두안보상의문제를안고있다.
*지나간현대사의중간결산은통일을어떻게이루느냐에있다.門前까지는잘왔지만···
*기성세대·대한민국의위대한업적과유산을자랑하고옹호하는챔피언이등장하여현대사의추억을다음세대로이어주어야조국선진화도이뤄질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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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史:신라통일이있었기에대한민국건국이가능했다.신라는對唐결전으로써唐軍을한반도에몰아냄으로써한반도를한민족의생존공간으로확보했다.삼국시대엔민족의식이없었다.韓民族은신라통일로써만들어진同族의식을딛고장구한공동체생활을통해서만들어진존재이다.대한민국은민족사의정통이며金正日정권은이단이다.대한민국의정통론은신라통일에서비롯된다.신라통일의정당성을부정하면대한민국의정통성이설자리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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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45년광복과분단의의미

·해양화:지정학적으로한국은사실상섬이되었다.생존을위해서해양세력과손잡고해외지향의산업을발전시키지않으면안되게되었다.미국일본서구등해양문명권의일원이되었고이선진문화권의유산들-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과학과합리정신을배울수있게되었다.
·봉건적전통과의결별:한반도분단은자유對독재의이념형분단으로서자유선진진영에줄을선한국은後進的대륙세력및朝鮮朝的인봉건적전통과결별하고근대화로나아가려는데있어서의저항이약화되었다.
·한미동맹:해방군으로진주한미군에의해미국과동맹관계를맺는계기를맺었고미국을통해서선진문물을받아들였다.

2.1948년대한민국건국의의미

·국민국가건설과정:주체적근대화(산업화,민주화)道程의시작이었다.
·국가이념:헌법의基調가자유민주주의와자본주의로설정됨으로써「脫대륙,脫후진적전통,脫주자학적전통이데올로기」의근대화혁명이발진하는틀이갖추어졌다.
·국가정통성:건국과정이유엔의공인하총선거로이뤄짐으로써한국은민족사적정통성과합법성을확보하였다.
·李承晩초대대통령의지도력:그의정치철학은반공기독교적민주주의였고통치행태는「對外개방적·실용적권위주의」였다.그는『공산주의는호열자와같다』는생각을가진사람이었다.한반도에수백년만에처음으로등장한실용적집권자였다.
·군대의등장:국민국가의생존조건이자국가목표인富國强兵을추구하는과정에서,또공산주의자들의위협속에서건국을달성하는과정에서朝鮮朝개국이후처음으로군대가중추세력으로등장했다.
·남북대치상황의본질:1민족1국가의정통론에입각하여대한민국헌법은북한의金日成정권을반란집단,북한땅을한국의영토,통일을미수복지구의수복으로설정했다.이에따라그뒤남북관계의본질은「민족사의정통과삶의양식과善惡을놓고다투는타협이불가능한총체적권력투쟁」으로굳혀진다.

3.李承晩과그의시대:건국과호국의구심점으로서근대화의礎石을놓았다

·李承晩이란축복:아인슈타인이이스라엘의대통령이된격.동서양의최고교양을아우르고민족적사명감과자존심으로무장한한국최초의박사.그의경력과경륜은,한국과미국의합작품이나한국인의주체성과혼을견지한자주자존의지도자였다.
·국군의창설:북한의위협적존재로해서강력한상비군을갖게되었다.이국군은6·25전쟁을치르면서더욱강력한집단으로성장하면서다음시대의근대화주도능력을키워갔다.강력한국군장교단의등장은朝鮮朝500년간잊혀졌던尙武정신과그에수반되는실용정신,효율성,과학과합리정신을우리역사에서되살림으로써우리민족이진취적이고실용적이며효율적인민족성과기풍을재발견하는계기가되었다.
·농지개혁:기득권층으로서의지주계급을없앰으로써그뒤산업화와민주화의장애물을제거하고사회갈등의소지를축소시켰다.농지개혁으로한국赤化가저지되었다는주장이있다.
·일제시대관료의활용:친일경찰과헌병들까지이용한부작용도있었으나근대국가운영에참여했던경험자가대한민국건설과정에동원되었다.
·6·25전쟁지도:그의카리스마는후퇴하는국군에게저항과반격의의지를심어준구심ㅂ점이었다.
·6·25전쟁의의미:한국은자유세계의선봉으로서국제공산주의의팽창을저지함으로써일본과독일의부흥,대만의수호에기여했고미국이對蘇봉쇄작전을본격적으로추진하는계기가되었으며냉전의실질적인시작이었다.동서냉전은한국에서시작되었으며공산주의의붕괴도한국에서시작되었다.한국은또국내좌익세력을약화시킴으로써체제수호와근대화의큰걸림돌을제거했다.전쟁을통하여거대한군사집단이생겼고이는근대화주도세력의잠재력을키워간다.
·한미상호방위조약체결:휴전협상에서소외된李承晩대통령은단독北進,반공포로석방을카드로미국정부를압박하여한미상호방위조약을끌어냈다.안보의틀을한미동맹으로굳힘으로써산업화시기국방비의증액을최소화하면서국가자원을경제개발에집중할수있도록했다.
·민주교육의강화:1950년대에양성되고온존된젊은인력이60년대근대화의인력으로쓰여졌고4·19혁명의주도층이되었다.그는언론자유와야당의활동을근본적으로제약할생각은하지않았다.그의시대에양성된민주세력이자유당정권의타도의선봉이되었다.李承晩도모든성공한지도자처럼「자기성공의실패자」였다.
·애국적기업인의등장:유교적실용주의,한국적상업정신(개성상인),기독교적직업윤리,그리고애국심으로무장한창업주群이자본주의의전도사내지개척자역할을하기시작했고李承晩은좋은후원자였다.
·헌법과현실의갈등:그의시대는,민주주의의경험이전무한후진국이선진민주주의헌법체제를어떻게운용할것인가,현실과법과의괴리를어떻게메울것인가,선진자유민주주의의기준으로후진조국의현실을재단할때의부정적자학적평가를어떻게할것인가의문제를제기하였다.
·李承晩정권의붕괴:자유와복지를다같이갈망하는국민들,특히젊은군인들과학생들의커지는에너지를충족시켜주기에는너무노쇠하고경직된자유당정권의정치행태가무리한부정선거를촉발시켰다.李承晩대통령의하야결단이최소한의유혈로정권이양을가능하게했다.

4.張勉정부:善意의실패

·붕당정치再現:李承晩의카리스마가사라진정치풍토에서내각제를실험하자한국의전통적인붕당정치행태가再演되었다.민주당의新舊派분당사태는정치지도력의약화를가져와4·19로촉발된국민들의욕구를감당할수없었고이틈을탄좌익세력의등장은반공정신과개혁의지에불타던장교단에게심각한체제불안의식을심어주었다.그때는6·25가끝난지불과7년이흐른때였다.
·민심과軍心의이반:張勉정부는우파정권이었으나좌익을제대로통제할수없었고,이에따라군장교단의불안과불신을불식시킬수없었다.일반국민들도민주화에따른사회불안에진절머리를냈으며군인들의등장을요청하는목소리도커갔다.민심과함께물려돌아가는軍心도張勉정부에등을돌려5·16주체세력들은거의공공연히쿠데타모의를할수있었다.
·善意의실패:張勉정부는그러나경제개발계획작성등나름대로의국가발전계획을세우는노력을하였으나민주당분열에기인한지도력의약화로이를실천에옮길수없었다.그의실패로내각제는허약한정치체제라는인상을국민들에게강하게주었고대통령중심제의리더십이정착하는계기가되었다.

5.5·16일군사혁명-700년만의군인主導국가개조

·왜혁명인가.근대화라는가장큰규모의국가개조를가능하게한주체세력이있었고,지도자朴正熙의뚜렷한목표와이념과전략이있었다.1963년에그가제시한비전은초과달성되었다.국민의지지가60%이상이었다.
·군사문화의확산:13세기고려무신정권이후최초의군사정권.군사문화가가진실용성,효율성,과학과합리주의,자주성,富國强兵의철학등긍정적인면이획일성등부정적인면을압도하고국가개조에긍정적기여를했다.그뒤30년간한국사회를지배한군사문화는민족사의주요요소가될것이다.
·장교단의개혁성:당시의군장교단은한국의최강이자최선진개혁집단이었다.10%가미국유학경험자로서외무부직원보다도높았다.
·商工農士로의신분혁명:그는士農工商의후진적신분서열을商工農士로바꾸어야한다고생각했다.학자,언론인,정치인의영향력을약화시키고,기업인군인관료과학기술자들의영향력을증대시킨점에그의근대화혁명적이념의핵심이있다.기업인과군인들이사회의주류층을형성한것은우리민족사상처음이다.이들근대화혁명의주체세력이득세하면서한국사회는생산성과효율성을중시하는實事求是的인분위기로바뀌어갔다.
·朴正熙의혁명적역사관과자주적민주주의觀:朝鮮朝의주자학적이데올로기를무능,위선,守舊로비판했던그는미국식민주주의를우상숭배하는야당과지식인들을사대주의로인식했다.그의주체적생각은민족적민주주의,한국적민주주의로표현되었다.자신의생각을한국식민주주의로확산,정착시키지는못한것이한계였다.그의한국적민주주의론은후발開途國의개발전략을뒷받침하는국가지도이념의한모델이되었다.
·빵다음에자유:朴正熙는민주주의자체를부정하지는않았으나민주주의는경제발전과물질적인토대를딛고설때만가능할것이라고판단했다.
·문민세력에대한경멸:그는5·16을일으킨데대해서죄의식이없었다.그는민주당과자유당을똑같은위선적정치집단또는守舊세력으로보았다.
<4·19학생혁명은표면상의자유당정권을타도하였지만5.16혁명은민주당이란가면을쓰고망동하려는내면상의자유당정권을뒤엎은것이다>
<정의로운애국군대는인내란虛名을내세워부패한정권과공모하고있을수는도저히없었다.말하자면5·16혁명은이공모를거부하고,內敵의소탕을위하여출동한작전상이동에불과하다>

6.朴正熙와그의시대-조국근대화의騎手

·朴正熙리더십의본질:한국인으로서의자존심과사명감과서민성을바탕으로깔고서일본적인武士道정신과국가주의및미국식합리적조직경영법을종합한韓日美의합작품.
·朴正熙전략의핵심:(정신적)自助-(경제적)自立-(국방과정치의)自主의3단계발전론.그는국가주도에경쟁개념을도입했다.새마을사업의원칙은잘하는마을을집중지원하고못하는마을은방치하여차등과경쟁을유도하는것이었다.
·朴正熙의비전:민족중흥,조국근대화,자주국방,한국적민주주의.
·동양적실용정신:朴正熙는管仲-명치유신지도자-鄧小平-李光耀로이어지는동양의실용적정치지도자型에속한다.
·결정적선택-수출입국:좁은민족주의가선택하기쉬운수입대체전략을폐기하고수출입국전략으로의방향전환을통해서우리기업은처음부터국제경쟁력이있는상품을만들기시작했다.
·先경제,後민주:先경제,後자주국방건설,先건설,後통일의전략에서보듯이朴正熙정권은『恒産이있어야恒心이있다』(孟子)는동양적실용주의노선을실천했다.
·남북한逆轉:1960년대에남한은경제제일노선,북한은군사제일노선추구.1970년대에남한은견실한경제를바탕으로하여자주국방을추진했으나,북한은과도한군사비지출의누적으로경제파탄에직면하여남북한국력의逆轉이일어났다.
·결정적선택-朴正熙식세계화전략:수출입국정책,한일국교정상화,월남파병,중동건설시장진출은한국인의활동무대를세계로확대시켰다.
·민족사세번째의국제화:신라통일前後,몽골지배하,대한민국건국이후에한민족은세계사의중심부에서활동공간을확보했다.이는唐,몽골,미국등당대최대강국과친선및동맹관계를유지한덕분이다.
·維新시대의功過:1972년부터7년간은국력의조직화,효율의극대화에성공한권위정부에의한중화학및자주국방건설기였다.이기간에언론및정치의자유는제한되었으나경제의고도성장으로석유위기를돌파하고필리핀,타이,말레이시아,북한등을추월하여질적으로다른국가로승격했다.정치의코스트가최소화되면서공직자부패도최소화되었던시기였다.
·결정적선택:1973년석유쇼크와중화학공업전략밀고나가기:유신체제였기때문에가능했을것이고,1974년부터본격화되는중동건설시장진출은월남진출의경험을딛고가능했다.
·근대국민국가의기본시스템을구축:군의현대화,방위산업진흥,직업공무원조직의확립,법령정비,의료보험제도,고속도로건설등사회간접자본축적,국책연구기관의창설,특히KIST와원자력연구소등과학기술진흥.

·한국적민주주의에대한민주화세력의저항과미국의압력:민주주의를하느님처럼모시려는세력에대한朴正熙의경멸과代案모색은다수지식인과국민들이판단의기준을선진민주주의로삼고있는대세속에서실패했다.한국적민주주의를신념화한이념집단을만드는데실패한이유는지식인층의반발로근대화의산물인중산층을의식화시키는데실패하였기때문이다.
·카터집권후韓美갈등:카터의인권외교와주한미군철수공약.
·중산층이반-釜馬사태의충격:근대화성공의산물인도시중산층이학생야당과손잡고정권에대항했다는점에서정권에충격을주었다.金載圭도그영향을받았다.그뒤한국정치변동의결정적역할이도시중산층의손으로넘어간다.
·釜馬사태의원인:장기집권에대한불만,민주화운동,제2차오일쇼크로인한물가고와부가가치세징수,金泳三의원직제명.
·10.26사건의의미:「朴正熙는봉건적잔재및사대주의와싸우다가戰死했다」는시각이있는가하면그의죽음은適期에피로한旗手를교체하여한국을다시뛰게만들었다는해석도가능하다.
·인간朴正熙:인정과눈물이많은鐵人·哲人·超人.『난괜찮아』

7.신군부의재집권과정-돌아갈수없는다리를건너서···

·12·12군사변란의성격:하나회를중심으로한朴正熙친위세력의군내헤게모니장악기도가유혈사태를촉발하여돌아갈수없는다리를건너집권으로매진하게했다.공화당과유정회는朴正熙의지도이념을신념화하지않은권력기생체질이강해朴正熙가사라지자지리멸렬하여주도권을상실했다.
·중산층의중립-군부재집권:1980년봄정치자유화를계기로야당은분열하고사북사태등혼란이발생했으며제2차석유위기의여파로경제는不況국면이었다.중산층의불안이증대했고학생시위에대해냉담한중립자세를취하게되었다.이틈을탄신군부의집권시도는광주에서국지적저항에직면하였으나다수국민들의非호의적묵인하에성공했다.10·26사건의한동기가되었던,부마사태때의중산층과학생들의합세는이때에는이뤄지지않아야당,학생등민주화운동세력은고립되었다.
·미국의중립:미국은정권교체기에있었고카터는이란인질사건에매달려신군부의집권을저지할의지도능력도없었다.

8.全斗煥정권-유혈집권,경제의안정적발전,單任실천

·3低시대의경제약진:박정희시대말기의중화학공업과잉투자부작용을정리.국제석유가안정에힘입어엘리트경제관료들의일관된정책수행을대통령이뒷받침하여물가를잡고무역흑자를기록하는등견실한성장세지속.경제호조가민주화의충격과혼란을흡수함으로써평화적민주화과정이가능해졌다.
·정보통신과전자산업의전략적추진:1990년대의IT붐을예약하였다.
·한미관계의안정:레이건행정부가對蘇압박정책을쓰면서일본의나카소네,영국의대처,한국의全斗煥정권을필요하게되어朴正熙후반기와같은큰갈등이사라졌다.
·서울올림픽의전략적추진:한국사회선진화,對北우위확보,對공산권접근,한국의국제이미지提高라는당초목표달성.동시에국내민주화운동에대한정부측의강력대응은올림픽반납을각오해야하는등민주화과정의한안전판이되기도했다.
·서울올림픽을저지하기위한북한정권과의대결에서승리:아웅산테러,대한항공폭파사건등을일으킨북한은국제적고립을자초했고대응카드로써먹은평양세계청년축전개최는예산낭비를가져와경제위기의단초가되었다.

·학생운동권에친북좌익이념확산:민주화운동의흐름속에서북한세력과연계되거나자생적인좌익이념이확산되기시작했다.이들은민주화운동으로위장하여당국의단속을탄압으로몰아갔고언론과여론도호의적이었다.여론과야당에밀린정부도적실한대응을하지못함으로써좌익이념의젊은층침투는大勢가되었다.
·1985년2·12총선과민주화운동의대세화:이흐름은1987년6월대시위로폭발했고全斗煥-盧泰愚세력은6·29민주화선언으로대응하여정면충돌위기를평화적인민주화과정으로전환시켰으며兩金의분열로盧泰愚대통령이직선대통령에당선되었다.
*全斗煥정권은유혈사태를통해서집권했으나7년간대내외적으로적극적인개방정책을실시하여한국사회를긴장과갈등과성장이교차하는역동적사회로만드는데성공하였다.

9.盧泰愚에서盧武鉉까지:민주화의진통과文民좌파정권등장

·대중조직의시대:1988년이후민주화과정에서언론집회시위의자유가확대되는가운데각종대중운동조직이강력한조직력과활동력을바탕으로정부의공권력과기성세력에도전하게되었다.이들조직중에서는친북적인성격을가진단체도많아체제불안요인이되었다.
·노사문제의결정적중요성:과거권위주의정부시절에기업이정권의보호아래노조운동을누르고생산과판매에만전념할수있었던시대는지나고노조의경영에대한영향력이증대함에따라노사문제가경제발전의가장중요한결정요인이되었다.
·위선적문민정치의폐해:1993년소위문민정부의재등장은한국정치가예외의시대(군인주도시대)가끝나고正常의시대(문민우위)로복귀했다는의미였다.한국정치의정상복귀란조선조정치생리의재현으로서정치인,언론인,학자,법조인,사회단체가주도하는위선적명분론의부패한파당정치이며경제와안보및국제정세에대한無知와무능으로나타난다.
·사회의좌경화-좌파권력의등장:1980년대에좌경화되었던운동권세력이사회중심부로진입함에따라한국사회의권력구조도좌경화되고이런바탕에서金大中,盧武鉉좌파정권이등장하게되었다.
·세계화속에서좌초:국내의권력투쟁에함몰하여전통적으로세계대세에무지,무관심한문민정부는세계화에한국경제를제대로적응시키지못해1997-98년의외환위기를초래했다.그뒤에도개혁은제대로이뤄지지않아정경유착,전투적노조등문제점들은계속이어지고있다.
·정치부패의深化:정치권력의부패는민주화에따른잇단선거로해서오히려더악화되었고이는심각한정치불신을야기하여정치리더십의약화를초래했다.
·북한의大飢饉과北核문제:흡수통일에따른책임과부담을두려워한한국정부는북한의급변사태를통일의기회로활용하지못하였다.1998년이후좌파정권이등장하여굴욕적對北지원으로金正日정권을강화시켜주는한편한미동맹을약화시키고국론분열을주도한것은,통일의결정적찬스를놓치고분단고착을불러북한동포의고통을연장한민족사적범죄가될가능성이있다.
·국론분열:金大中좌파정권이추진한햇볕정책은위기에빠진金正日체제의강화를가져왔으며이는남한내친북좌익세력의강화로이어져체제불안이가중되고있는한편북한의내부개혁은요원한실정이다.이정책을둘러싼살벌한대립은대한민국의존립기반을뒤흔들수있는위험요인이되고있다.
·남북한친북반미연합전선의형성:남북한에걸쳐대한민국의핵심가치관에반감을가진親北反美연합전선이형성되고있고일부정권내외의인사들이여기에가담하고있다.親북한정권세력은「북한공작원+근대화과정에서소외된세력+대한민국의공권력으로부터제재를당한경험에서생긴복수심과적개심으로무장한세력+前근대화후진세력의집합체」로되어있다.
·근대와前近代의대결:한반도에선지금前근대봉건세력이金正日정권을핵으로하여남북한에통일전선을형성중이며이에대해대한민국이지난55년간키워온근대국민국가로서의시스템(기업,법치,언론자유,선거의자유등등)과중산층이저항하고있는형국이다.
·중산층의위기와선동정치:1970년대이후한국사회변동기때결정적역할을했던중산층이외환위기를계기로자신감을잃어사회의중심균형자역할을제대로못하고있는사이좌파선동정치가들이20,30대를움직여정치변동의원동력으로사용하려는움직임이먹혀들고있는현실이다.
·한국정통주류세력의위기:1997년및2002년선거에서우파세력이분열하여좌파정권의등장을허용하였다.두차례선거에서국가와역사와과거의챔피언이어야할우파지도층은대한민국55년의위대한성취를옹호하지못하고좌파선동에변명수세로대응하여국민들의존경과신뢰를상실했다.우파지도부는,한반도상황을이념적으로인식하지못함으로써戰略부재의무기력을보여주었다.한반도에서는여전히이념과역사관이가장큰전략이다.
·反美와親中:남북한의좌파전선이反美운동을확산시키고있는사이중국에대해서는호의적이고때로는굴종적인자세가굳어지고있다.중국의거대한경제적팽창은한국에경제적,정치적,문화적영향을끼치고있고,과거사대주의적사고방식의再現이우려되고있다.
·해양문화권에서대륙문화권으로복귀가능성:1945년이후지속되었던한국의해양화,세계화추세는1993년金泳三정권의등장을계기로하여미국일본과는불화하고중국러시아북한쪽으로기우는성향을띠기시작했다.한국내두흐름-해양화와대륙화-의대결은舊韓末의재판이되어국가의안전을위협할가능성도있다.

10.대한민국의내일:자유통일을넘어서조국선진화로

*한국의국력지표:국내총생산은세계12위(인구10억인인도와비슷하다).수출은세계12위,수입은14위.에너지총소비량은세계10위,1인당소비량은16위.粗鋼생산량은세계5위.선박건조량은1위.자동차생산량은세계6위.전자제품생산량은3위.인터넷이용자수는세계3위.개인컴퓨터보유율은7위.인구는세계26위.

*국력은선진국이될만한모든조건을갖추고있다.국력에걸맞는지도층의교양과능력,국민들의애국심과자신감,반란집단인북한정권에대한엄정한자세와북한동포들에대한동정심이갖추어지면자유통일도,조국선진화도가능하다.물질적근대화이후에정신적근대화(합리화,과학화)를이루어야하는데김정일정권의선동과방해가작동하고있어선진화가늦추어지고있다.조국선진화는김정일집단이란방해물을치우지않고는달성될수없다.우리민족사의발전방향은인간의존엄성과자유복지안전이향상되는방향으로,그리고國政에참여하는계층이확대되는방향으로발전하여왔다.북한의오늘날생활수준은조선조500년에서도최악이었던철종고종시절보다못하다.민족사의발전원리는,역사발전과국민국가건설과정에서소외되어있는2천만북한동포들을구출하고이들을역사만들기에동참시키도록요구하고있다.

*우리가꿈꾸는대한민국의모습

히틀러는국가주의자,처칠은애국자라고구별한글을읽은적이있다.국가주의자는국가의적을증오하는마음이기본이다.애국자는조국을사랑하는마음이우선이다.正義를독점하는위선자들에게서사명감(왜곡된)은느낄수있지만사랑은느낄수없다.한국인으로태어난다는것은자본주의시스템속에서경쟁하고,남북대치상황에서투쟁해야한다는숙명을갖고나온셈이다.이경쟁과투쟁이사랑을바탕으로이뤄져야경쟁과투쟁에승리한이후의비전을그릴수있을것이다.

생명에대한존중,인간에대한관심,북한동포에대한동정심과김정일에대한분노,모든존재하는것에대한따뜻한마음,그런마음들이모인국가.이와같은국가가존재해본적이없었을지모르지만가장비슷한국가를우리민족사에서찾는다면삼국통일기의신라일것이다.唐將蘇定方이신라와함께백제를멸한다음귀국하여唐帝고종에게귀국신고를하니고종은이렇게물었다.

"왜내친김에신라마저정벌하지않았는가."
蘇定方은이렇게답했다고삼국사기는기록하고있다.

"신라는그임금이어질어백성을사랑하고,그신하는충의로써나라를받들고,아랫사람들은윗사람을父兄과같이섬기므로비록나라는작더라도감히도모하기어려워정벌하지못하였습니다."

신하,즉국가엘리트들이충의의대상으로삼고있는것은왕이아니라나라(즉헌법)인점에주목할필요가있다.
어짐,사랑,忠義,받듬,섬김-위의짧은문장속에등장하는이런키워드가충만한신라였기때문에삼국통일과對唐결전으로써한반도를지켜내어민족의보금자리를가꿀수있었던것이다.우리가만들어가려고하는대한민국의모습도이런것이아닐까.

사진은,지리산일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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