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속의 한국발레

[특집]세계속의한국발레


뜨는한국발레,세계를춤추게한다
김주원·박세은김·김유진등잇달아국제대회입상…
외국심사위원들“표현력뛰어나”찬사
신체조건좋아지고연습량많아…외국인강사에배울기회가늘어나고외교력도강해져

▲2006년’브누아드라당스’에서최고여성무용수상을수상한김주원씨.

한국의발레무용수가세계대회를휩쓸고있다.특히여성무용수인발레리나의활약이눈부시다.2006년의성적표만살펴봐도이를확실히알수있다.

4월에국립발레단수석무용수김주원(30)씨가‘무용계의아카데미상’으로불리는제14회‘브누아드라당스’에서최고여성무용수상을수상했다.브누아드라당스는조르주노베르(1727~1810)를기리기위해1991년국제무용협회러시아본부에서제정한상으로한해동안세계정상급단체의공연을심사해선정하는상이다.

또한국예술종합학교에재학중인박세은(18)양은지난해7월에세계4대콩쿠르의하나인미국잭슨콩쿠르주니어부문에서금상없는은상을받았다.4년마다열리는잭슨콩쿠르는1982년창설됐고모스크바(러시아)·바르나(불가리아)·로잔(스위스)과함께세계4대발레대회의하나로꼽힌다.

1998년김지영(현네덜란드국립발레단원)씨가시니어부문에서동상을받았고,2002년한상이(현모나코왕립몬테카를로발레단원)씨가주니어부문에서동상을수상했다.박세은양은잭슨콩쿠르쾌거에이어석달후인10월에는중국베이징국제발레경연대회에서2위에입상했다.

▲2005년로잔콩쿠르에서그랑프리를수상한김유진양(왼쪽).2006년로잔콩쿠르에서3위를차지한홍향기양.(오른쪽)

역시세계4대대회인로잔국제발레콩쿠르에서는2005년에한국예술종합학교무용원예비학교에다니던김유진(18)양이그랑프리를차지했다.김양은스위스취리히드라마발레스쿨,독일슈투트가르트발레단을거쳐현재미국진출을고려중이다.김양과함께한서혜(18)양이3위를했다.

이로잔콩쿠르에서는지난해에도한국인발레리나의입상이이어졌다.1월엔한국예술종합학교무용원예비학교에재학중이던홍향기(18)양이3위에입상했다.심사위원으로참석한강수진(독일슈투트가르트발레단수석무용수)씨는“어린나이지만성인못지않은기량과힘을갖췄고특히팔의움직임이뛰어났다”고평가했다.홍양은현재러시아국립바가노바발레학교에서훈련을받고있다.

이들을모두가르친한국예술종합학교김선희교수는“김유진의예술성,한서혜의잠재력,홍향기의성실함은국제적인발레스타가될디딤돌”이라고말했다.

이밖에한국인무용수의활약은계속됐다.지난해5월에는재미무용가옹경일(35)씨가제20회이사도라던컨상을수상했다.6월에는세계최고의발레학교인러시아바가노바발레아카데미가주최한제6회국제발레경연대회에서한국예술종합학교무용원2학년에재학중이던신승원(20)씨와윤전일(20)씨가최우수2인무상(베스트커플상)을받았다.7월에는세계무용경연대회중최고(最古)의전통을자랑하는불가리아바르나국제발레콩쿠르에서한국예술종합학교에재학중인이영도(21),박슬기(21)씨등한국인5명이입상했다.브루스마크스(미국),문훈숙(한국)등각국의심사위원은박슬기씨에대해“발레무용수로서최적의몸매와얼굴을가졌고성숙한표현력과흡인력있는카리스마가놀랍다”고밝혔다.

한국인발레무용수로세계스타반열에오른이로는독일슈투트가르트발레단의강수진(40)씨가있다.강수진은모나코왕립발레학교를나와1985년동양인최초로로잔국제발레콩쿠르에서1위를차지했다.1993년부터슈투트가르트발레단의주역무용수로활동했고,1999년브누아드라당스에서최우수여성무용수상을받았다.

또김용걸(파리오페라발레솔리스트),배주윤(볼쇼이발레단),유지연(키로프발레단),김세연(취리히발레단),원지연(네덜란드댄스시어터),김나이(미국미하일바리시니코프댄스파운데이션)등이세계적인발레단에서활동중이다.

서양에서출발한발레분야에서한국이어떻게발레강국으로떠오를수있었을까?먼저한국인무용수의신체조건이확실히좋아졌다는점을꼽을수있다.최근부상하고있는한국의무용수는서양인과비교해조금도뒤지지않은몸을가지고있다.한국청소년의발육상태가좋아진탓이다.

▲2006년잭슨콩쿠르주니어부문에서금상없는은상을받은박세은양.

한국인무용수는연습량이많은것으로도정평이나있다.한국발레계에는‘연습을하루안하면자신이알고,이틀을안하면선생님이알고,사흘을안하면관객이안다’는말이있을정도다.또무용수의감정표현이과거보다대담해지면서국제무대에서호평을받고있다.특히한(恨)이라는정서를알고있는한국인출신은슬픔을표현할때서정적이고감동적이라는평가를받고있다.여기에외국인강사가한국에많이들어오는것도한국발레수준을높이는영양분이됐다.러시아,프랑스,미국,영국등발레강국의발레학교에서배우는외국인학생과비슷한수준의교육을받게된것이다.

한국인발레무용수의활약이두드러지면서한국의발레외교력도강해졌다.김선희한국예술종합학교교수,최태지정동극장장,문훈숙UBC단장등국내발레계지도자가국제무대에서발레외교력을발휘하고있다.여기에다한국관객의호응이뒷받침해주고있다.매니아층이두터워지면서캐스팅별로여러번보고토론도한다.발레스타가등장하고팬클럽까지결성된것이다.

물론아직까지발레무용수에대한대우는넉넉하지않은편이다.외국의경우발레스타의연봉이억대에이르지만우리나라발레스타의연봉은3000만원대이다.이는토슈즈값으로거의사용된다.한켤레에10만원정도하는토슈즈는프로무용수의경우1년에200켤레가까이신는다.

우리나라에발레가처음들어온것은1931년3월서울YMCA강당에서열린러시아무용수슈하로프의공연이다.발레독립단체로는해방후인1946년처음으로‘서울발레단’이만들어졌다.일본에서발레를배운한동인씨는서울발레단을열정적으로이끌면서‘라실피드’‘장미의정령’이라는서양의명작발레를우리나라관객에게선보였다.하지만한동인씨가준비했던‘인어공주’는1950년한국전쟁때문에하루공연을끝으로막을내렸고그는북으로넘어갔다.

그뒤에임성남씨가나타났다.1929년서울에서태어난임성남씨는당시우리나라사람중최초로발레를제대로공부한사람이었다.전주사범학교를거쳐일본음악학교피아노과에서피아노를익히고,일본의발레연구소에서발레를배웠다.1954년도쿄청년발레단을창단하여활약하다가이듬해귀국하여‘임성남발레연구소’를설립했다.그는1962년국립무용단의단장을맡게됐다.1974년국립극장이명동에서장충동으로옮길때‘국립발레단’이라는이름을갖고무용단에서독립해나왔다.국립발레단은1974년부터우리나라관객에게‘백조의호수’‘호두까기인형’‘지젤’등세계의명작발레를소개하기시작했다.1대임성남단장에이어1993년당시미국에서활동중이던김혜식씨가2대단장으로부임했다.그는서양발레단의운영방식을많이적용시켰다.

3대최태지단장은우리무용계에서처음으로‘발레스타시대’를열었다.그는이원국,김용걸,김주원,김지영을발레스타로키웠다.국립발레단은이때부터우리나라무용계최초의팬클럽조직인‘국립발레단동호회-정익은마을’까지탄생시켰다.

서일호주간조선기자ihse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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