義妓(의기) 계월향 초상화 발견

義妓(의기)계월향초상화발견

신형준기자hjshin@chosun.com
한문해석=이정섭문화재전문위원
입력:2007.02.0223:42/수정:2007.02.0305:53

  • 왜장을죽이는데공을세워논개와더불어임진왜란때‘2대의기(義妓)’로꼽히는평양기생계월향(桂月香·?~1592)의초상화가발견됐다.“1815년그린것으로,그를기리는사당(장향각·藏香閣)에걸고1년에한번씩제사를지냈다”고그림에는적혀있다.그림을감정한안휘준문화재위원장(미술사)은“전형적인19세기조선미인도”라며“기생을기리는초상화가발견된것은처음”이라고했다.훗날우의정에추증된김경서(1564~1624)장군의애첩이던계월향은,왜군선봉장고니시유키나가(小西行長)의부장(副將)으로평양성함락(1592년)때‘용장(勇將)’으로꼽힌고니시히(小西飛)를참수하는데결정적역할을한여인.적장이죽은직후인이듬해1월초,평양성은탈환됐다.

    고미술품수집가안병례(46)씨가본지에공개한이그림은가로70㎝,세로105㎝정도다.일본교토에서최근입수됐는데,한지에그린채색화다.

  • ▲임진왜란때적장의목을베는데결정적역할을한뒤죽어논개와함께‘임진왜란2대의기(義妓)’로꼽히는계월향초상화.1815년작품으로,기생을기린초상화로는처음발견된것이다.논개의초상화는현재전하는게없다./이태경객원기자ecaro@chosun.com

  • 옥비녀를한계월향은반달같은눈매에이중으로된옅은눈썹,도톰하면서도오뚝한코등전형적인조선미인이다.안위원장은“저고리길이가짧고소매폭도좁은등몸에착달라붙는상의로당대의패션감각을반영한‘섹시한’느낌을주면서도,손을‘X자로곱게교차한뒤가슴에찬노리개에는‘齋戒(재계·몸과마음을깨끗이함)’라고적어그를현창한다는의미를더했다”고평했다.얼굴과옷주름에음영을잘대비시키는등당시조선화단에서는첨단기법이던서구의명암법도적극수용해그렸다.

    그림상단에는‘義妓桂月香(의기계월향)’이라는제목으로그를높이는글을한자로빼곡히적었다.이글은계월향의업적을이렇게적고있다.

    ‘고니시히라는뛰어난장수가(1592년)평양성에먼저올라우리진을함락시키니,고니시유키나가가그를중히여겨위임을했다.평양부기생계월향은고니시히에게잡힌뒤귀여움을지극히받았지만성을빠져나가고자했다.그는무관이던김경서장군을친오빠라고속여평양성안으로불러들였다.어느날밤,왜장이깊이잠들자김장군을장막으로몰래들어오게했다.양허리에찬칼을손에쥔채의자에앉아두눈을부릅뜨고잠을자던왜장의목을김장군이벴다.목이땅에곤두박질쳤는데도왜장이쌍칼을던지니하나는벽에,다른하나는기둥에꽂혔다.두사람모두성을빠져나가고자했으나,둘다무사하지못할것을알게되자(계월향의청으로)김장군이칼을뽑아계월향을죽이고성을빠져나갔다.이튿날적군은왜장의죽음을알고기가꺾이고형세가크게위축됐다.’

    계월향은그뒤‘남논개,북계월향’으로추앙받았다.만해한용운선생은‘계월향에게’라는시에서‘대동강에서낚시질하는사람은그대의노래를듣고모란봉에서밤놀이하는사람은그대의얼굴을봅니다.(중략)그대의붉은한은현란한저녁놀이되어서하늘길을가로막고황량한떨어지는날을돌이키고자합니다’라고노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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